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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Vorstelltung'에 해당되는 글 228건

  1. 2010.03.22 토요일 밤의 긴 여로
  2. 2010.03.07 뛰는 아이들
  3. 2010.02.17 터미널
  4. 2010.01.30 마태 수난곡을 처음 듣던 날 2
  5. 2010.01.11 족벌의 트러스트

토요일 밤의 긴 여로

단상 Vorstelltung 2010. 3. 22. 18:14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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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에 사무실 확장 공사로 자리 정리를 위해 나와야 했다. 장충동 거리는 그래도 어느 정도 사무실이 모여있는 곳이라서 직장인들이 빠져나간 주말에는 산속의 절간 같다. 낮에는 결혼식 때문에 대구에 가는 가족을 서울역까지 바래다 주었다가 장을 보고, 집에 들렀다 바로 사무실로 나갔다. 북부간선을 타고 광화문을 거쳐 서울역, 옥수동, 구리, 남양주, 그리고 장충동까지. 모처럼 홀가분한 주말이라 일을 끝내고 선배를 만나려고 했는데, 약속이 취소되어 동네 친구들과 약속을 잡았다. 오후 5시부터 사무실 정리에 들어 갔는데 주도하는 몇몇 사람은 8시가 넘도록 집에 갈 생각을 안한다. 내가 나서서 서둘러 종료하는 분위기를 만들고 나서 빠져 나왔다. 용마산 역 쪽으로 이사를 한 친구의 가게 앞 유황오리 집에서 오랜만에 만난 이들과 단맛의 소주를 마셨다. 유진 오닐의 『밤으로의 긴 여로』에서 메리는 남편 티론에게 집에 있기 보다는 밖에서 친구들과 술마시는 걸 좋아한다고 불평한다. 불평할 사람이 없는 밤에 마시는 술은 마치 밀주같다. 자정으로 넘어가는 시간에 버스를 타고 도심 밖으로 넘어갔다.   

이날 만난 친구 중 하나는 중학교, 고등학교 동기인데, 한창 술마시더니 나 때문에 내신등급이 깍였다고 얘기했다. 같은 반이었던 고 3 때 나는 출석체크 담당이었는데, 농땡이 치기를 즐기던 이 녀석의 출석을 칼같이 체크했기 때문이란다. 그때 이 친구 보다 더 심하게 학교에 나오지 않던, 막나가던  동급생이 있었는데,  차마 이 친구에게는 출석 체크를 엄격하게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졸업을 못할 수도 있어서. 놀려면 이렇게 놀아야지, 드문 드문 학교를 빼먹어서는 육질의 평가마냥 등급의 줄세우기로 아직까지 술안주를 삼는다. 그래도 미안한 생각이 들어서인지 술값은 내가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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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는 아이들

단상 Vorstelltung 2010. 3. 7. 14:46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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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품앗이 육아를 하는 이웃집 아이들과 함께 서종면에 다녀왔다. 운전하는 차에서 아이들이 지르는 괴성에 괜히 나왔다 싶었는데, 추운 날씨 속에서도 텅빈 운동장에서 맘껏 소리를 지르며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보자 순간적으로 기쁨을 느꼈다.  요즘 보고 있는 한트케의 책은 한편의 진중한 육아일기다. 육아는 마치 들뤼즈가 말하는 리좀처럼, 관계망을 넓혀 가면서 전혀 새로운 개체를 만들어내는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아이는, 오래된 나무의 맨끝 생장점에서 뿌리까지 연결된 개체라기 보다는, 이 생장점에서 전혀 새로운 개체로 건너뛸 준비를 하고 있는, 그래서 초인의 비유로 나타나는 종족이 아닐까?



"아이는 놀고 그 남자는 작업을 하면서도 전처럼 힘닿는 대로 자리를 함께해 서로의 대화상대가 될 것인가? 그러면서도 <아이>는 아이답게 굴고 <어른>은 수준을 낮추지 않아도 될까? 그게 아니라면 <아이들>이란 우선 같은 또래들 사이에서 지내는 것이 옳고, 그래야만 고통과 부당함을 겪으면서 자의식을 갖게 되고 무엇인가가 될 수 있는 아주 특별한 종족이었던가? 그래야만 비로서 그 <동족들>은 나름대로 동아리를 형성하고 어른은 잘해 봐야 단순한 보호자가 되는게 아니었을까?...한때는 자신도 단체 생활에 속할 능력도, 의지도 없이 개인 플레이를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바로 자기 같은 사람도 세월이 지남에 따라 완전히 자의에 의해, 작으나마 자신의 공동체를 만들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페터 한트케, <아이 이야기>Kindergeschichte in 『소망없는 불행 Wunschloses Unglück 윤용호 역(민음사, 2008), p.126.

"혼자 있거나 우연히 두어 명의 다른 아이들과 함께 있는 아이가 아니라 이제는 정해진, 보다 큰 집단 속에 있는 아이를 보게 되자 의문이 생겼던 것이다. 아이들이 많은 집단에 속하게 되자 아이는 즉각 조용한 아이에서 날이 갈수록 점점 더 공포에 떠는, 어느 누구보다도 더 가엾은 아이로 변해갔다...ㅣ 게다가 많은 아이들이, 가장 어린 꼬마까지도 서로서로 맞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악한 아이>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모든 아이가 다 <순진무구한 건> 아니었다"

상동, 129-130.

"아이는 혼자 있었던 때보다 눈에 띄게 생기를 얻었고 다른 아이들 사이에서 의도적으로 몸의 관절과 머리칼을 움직였고 울리는 목소리를 냈다. 책임자인 그는 아이를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그저 <원래대로 내버려두어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그것은 그가 아이를 (그리고 다른 아이들을) 위해 <늘 곁에 있는 사람>으로 함께 있을 때 그들 모두를 끌어모으는 힘으로서, 이상적으로 투입된 에너지로서 효과를 냈다."

상동, 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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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미널

단상 Vorstelltung 2010. 2. 17. 09:00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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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시골에서 돌아 오는 가족을 맞이하기 위해 저녁에 동서울 터미널에 나갔다. 명절 연휴 다음날이지만 아직도 터미널은 증편된 버스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돌아오는 사람들이 주로 보이는데 비해, 이제야 고향으로 떠나는 사람들의 설레임이 터미널에 있다. 터미널은 오는 사람들의 귀착감과 가는 사람들의 설레임이 뒤섞인 곳이다. 변함없는 노점상의 뜨근한 국수를 먹고 기다린다. 기다린다..

터미널에 대한 또 한가지 기억이 난다. 20대 후반, 종로의 소격동에서 자취하며 살 때가 있었는데, 추석명절이었다. 처음으로 혼자 보내는 명절이었는데 견디기 힘들었던 것 같다. 큰누나 집에 가기 위해 전철을 타고 수원에 가서 버스 터미널을 찾았다. 오래된 터미널이었으며 오래된 버스를 타야 했다. 

이 때 터미널에서 붐비던 인파에 어떤 위협감도 들었다. 명절에 자연스러운 사람들의 움직임에 이제 갓 사회에 진출한 청년은 불안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 나이 또래의 젊은이들이 움츠려 있는 모습은 터미널에서 간혹 볼 수 있다. 이번주 동해의 터미널에서 서울행 버스를 기다릴 때, 고향의 터미널에서 오랜만에 만난듯한 두 청년이 취업에 관한 불안한 정보를 교류하고 있었다. 서울에서 대학 졸업을 미루면서 자격증 취득 등으로 취업준비를 하는 모양이다. 앞날에 대한 불안이 오랜만의 만남도 어색하게 만드는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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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 수난곡을 처음 듣던 날

단상 Vorstelltung 2010. 1. 30. 01:41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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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대 초반에 춘천의 자취방에서 LP를 돌렸다. 군대를 다녀오고 짬내도 벗어난 시기였다. 그때는 한창 춘천의 명동에 있는 음반가게에서 주인의 조언을 들으며 LP를 모으는 시기였는데 주로 클래식을 수집했다. 그때는 인터넷이란게 태생기였으므로, 도서관에 가지 않는 한 내가 잘 알지 못하는 클래식에 관한 조언을 음반가게 주인에게 듣는게 나름 요령이었다. 클래식이란 말이 나오니 하는 말인데, 음악에도 클래식이 있듯이 글에도 클래식이 있다. 그런데 마태 수난곡을 만난 날은, 이 주인과 동떨어져서는 뭔가 안되는듯 하다.. 

중세에 그려진 듯한, 음울한 구세주의 수난사를 그린 그림으로 장식된 LP음반을 들고 주인에게 갔더니 이 양반이 감탄을 한다. 그런데 그 음반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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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벌의 트러스트

단상 Vorstelltung 2010. 1. 11. 17:54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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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로부터 구원을 받은 이건희가 라스베가스에서 한국민에게 "각 분야가 정신을 차려야 한다"고 말했다 한다. 마피아 두목이 만찬회에서 몽둥이를 쓰다듬으며 하는 말 같다. 국민경제를 좌우하는 거대기업의 수장으로서 이 정도 만용도 못부릴 것은 없다는 투다. 물려 받은 가업, 정권의 보호 아래 끈끈한 네트워크를 형성한 족벌 트러스트의 정점에 있는 사람이 '정신을 차려야 한다'고 하는 말에는 어떤 섬뜩한 기분이 든다. 블러드크러시를 중심으로 플루토크러시와 테크노크러시의 삼자동맹에서 저런 황당한 말이 나왔을 것이다. 삼성이 방구뀌면 너희들 어떻게 되는줄 알아? 라는 협박같기도 하고. 아무튼 이건희의 저 발언은 한국, 아니 한반도를 규정하는 주류집단의 심급은 족벌 트러스트임을 확인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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