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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Vorstelltung'에 해당되는 글 230건

  1. 2010.05.10 바다에 빠진 날
  2. 2010.05.01 80년대 독자
  3. 2010.04.16 생활의 폭압
  4. 2010.04.04 바벨트
  5. 2010.03.30 옥계의 잠수함

바다에 빠진 날

단상 Vorstelltung 2010. 5. 10. 22:30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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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저녁에 가족과 동해에 도착했다. 오후 7시가 넘었지만 초여름의 초저녁은 얼마나 발랄한가. 11시부터 무려 8시간을 운전했다. 서울시내의 얼마 안되는 거리에 있는 결혼식장에 가려던 것을 극심한 정체로 포기하고  기수를 동쪽으로 선회해 국도로 가려고 했지만, 이미 팔당 인근부터 밀리는 것을 보고,  춘천-서울간 고속도로로 갔다.
 
저녁을 먹고 방파제까지 걸어갔다. 이미 날은 어두워 지고, 작은 부두에 걷어 올려져 차근차근 말아 올려 쌓아올린 백색의 그물망은 마치 노파의 머리처럼 새어버린 은물결이다. 방파제 너머 움푹 들어간 만 사이로 파도가 잔잔히 밀려가고 저 멀리에는 불빛들이 반짝인다. 마치 큰 배를 타고 부두 저멀리 정박해 있는 뱃머리에서 그리운 육지를 바라보는 심정이 이런걸까. 

방파제를 나와 모래사장으로 걸어간다. 바다 앞에서 서서 밀려오는 파도를 보다가 눈을 감아본다. 눈을 감고 듣는 파도소리에는 약간의 공포감도 밀려온다. 눈을 떠 보면 부드러운 파도가 어둠에 섞여 집채 만한 크기로 내 앞에 닥쳐 온다. 다시 눈을 감는다. 바다로 점점 떠 빠져들기 전에 해변가를 벗어난다.    

그륀리히와 결과적으로 사기 결혼을 하고 만 토니는 아버지의 사업가적 판단과 보살핌으로 친정에 딸 에리카를 데리고 와 살게 되며 남편과는 이혼한다. 그륀리히는 계획적으로 작당을 하고 8만 마르크의 지참금을 들고 온 토니와, 아니 명망있는 부덴브로크 가와 엮어짐으로써 몰락하던 사업의 파산을 에리카의 나이만큼 연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가문의 위용을 위해 토니는 신망있게 보이도록 연출된 사업가와 결혼한 것이지만, 그녀의 직관이 처음부터 옮았음을 브덴브로크 영사는 뒤늦게 그륀리히의 돌려막기식 장부를 살펴 보며 깨달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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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독자

단상 Vorstelltung 2010. 5. 1. 06:49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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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직장에서 책 벼룩시장이 있었는데, 가격은 정가의 10%였습니다. 리프킨의 『엔트로피와 수운의 『동경대전을 구입했는데, 『엔트로피의 정가는 2,800원 이더군요. 이 정도 가격은 80년대 초반의 가격대인데, 과연 출판년도를 보니 83년이군요. 세월에 바랜 누런 책장을 보니 마치 독자도 80년대로 돌아간 느낌이 듭니다. 에니어그램은 반복해서 할 때마다 조금식 변화하는 부분이 있어 흥미롭다고 하더군요. 변하고 싶지 않지만 변하는 부분도 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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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의 폭압

단상 Vorstelltung 2010. 4. 16. 23:22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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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하고 후배와 전철을 타고 집에 가면서 뜻밖의 얘기를 들었다. 과시용으로 보일만큼 직장에서 열성적으로 일하는 이 친구가 지금 다니는 직장을 평생 직장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니, 생각하지 않기 보다는 과연 그곳에서 오래 동안 살아 남을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연수가 쌓일 수록 숨이 턱턱 막히듯이 조여져 가는 건 일반적인 직장생활에서 피할 수 없는 현상인지 모른다. 연수가 올라갈 수록 어떤 뚜렷한 성과를 보이지 않으면 치이고 만다는 듯이 인간을 불안과 공포로 몰아가면서 사회는 인간을 계발시킨다. 

"나이가 들면서 필립은 백부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었다. 필립은 솔직하고 고지식한 편이었다. 그래서 한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실천할 수 없는 것도 성직자의 입장으로서는 열심히 설교할 수 있다는 법을 이해하지 못했다."

『인간의 굴레에서』1, p.135.

다음은 더 나은 사회를 향한 인간의 의지적 실천에 관해 모옴이 어떤 입장을 지녔는지 살짝 보여주는 구절이다. 뒤끄로는 소설에서 필립의 프랑스어 노선생.

"인간 평등과  인권 옹호 사상을 열정적으로 신봉했던 무슈 뒤끄로는 토론도 하고, 논쟁도 하고, 파리의 바리케이트 뒤에서 싸우기도 하다가, 오스트리아 기병이 밀라노를 공격하기 전에 탈출하며, 여기서는 투옥되고, 저기서는 추방당하는데, 그러면서도 마법과도 같은 그 말, 자유라는 말에 늘 희망을 걸고 다시 기운을 차렸다. 그러다 마침내, 병과 굶주림에 몸이 망가지고, 나이가 들어 이제는 어쩌다 얻어걸리는 가난한 학생들의 개인교습밖에는 입에 풀칠할 재간이 없는 신세로 전락하여, 이 아담한 소읍[하이델베르크]에서 유럽의 어떤 폭정보다 더 잔인한 생활의 폭압에 신음하고 있다."

상동, p.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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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트

단상 Vorstelltung 2010. 4. 4. 18:46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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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붕괴의 징후가 조금씩 나타나고 있습니다. 어떤 대기업 건설사의 광고는 주력 건축상품이 아파트에서 소형주택으로 옮겨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생활세계-교육,주거,직업-가 자본의 상품관계 내에 있음은 변화가 없지만, 갖가지 상품명의 철근 콘크리트로 뒤덮힌 수도권이 추동력을 상실한 자본의 바벨탑이었음이 드러날 징후가 조심스레 도시의 외부를 공전하고 있는 시점같군요.    

*네이버로 트랙백이 안된다. 다음 글을 읽고 쓴 글이다. http://blog.naver.com/piaomh/201033813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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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계의 잠수함

단상 Vorstelltung 2010. 3. 30. 13:36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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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어느 블로그에서 천안함에 대한 짧은 인상을 읽고 올린 댓글을 여기로 옮겼는데, 더 연장해서 써본다.  96년에 옥계에 침투(침투가 아니라 제주도 연안까지 조사활동을 갔다가 복귀를 하는 중이었다는 얘기도 있다)했던 잠수함을 내가 처음 본 것은 지난 2003년 12월 24일이다. 결혼을 앞두고 동해의 처가에 처음 인사를 간 시기였다. 이런 일이 아니고서는 결코 동해에 갈 일이 없었을 것이다. 아무튼, 무사히(?) 처가 어른들과 첫 만남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가는데, 지금은 돌아가신 장인어른이 차로 강릉 터미널까지 우리를 배웅해 주시면서, 중간에 들른 곳이 강릉 남쪽에 있는 해군 전시 시설이었는데, 여기엔 퇴역한 대형 미군함과 옥계에 침투했던 북한 잠수정이 있었다. 미군함은 2차대전까지 쓰던 것으로, 철덩어리로 된 그 복잡한 내부 구조의 통로와 공간은 천안함과 마찬가지로 매우 비좁게 보였지만, 마치 바다속 마을처럼 군함에는 별의별 시설이 다 있었다. 이에 비하면 북한의 잠수정은 승무원을 위한 공간이란 개념 자체가 없을 정도로 내장된 시설과 장비가 공간을 점령하고 있어, 여기에 어떻게 열명 이상의 병사들이 탑승해 왔는지 의아할 정도였다. 96년에 이들이 침투했던 때는 내가 예비역으로 학교를 다닐 때였다. 그때 자취방에서 예비역들끼리 술을 마시면서 이와 관련된 뉴스를 보고 있었는데, 5공수를 나온 선배가 북한군의 사격으로 전사한 부사관이 아는 얼굴이라고 했었다. 묘한 시차감이 감돈다. 가끔 나는 옥계의 잠수정이 생각날 때면, 이에 관한 이야기를 만들고 싶다는 강한 욕구가 일었다. 침투한 북한병사의 관점에서.
   
                                           2003년 당시 사양의 카메라폰으로 찍은 북한 잠수정의 후미

*이미 이 사건에 관한 연극도 있었다 :  http://www.newstage.co.kr/new/news/view.html?section=9&category=90&item=&no=4786&osort=gn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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