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상 : 사실과 서사의 간격

단상 Vorstelltung 2024. 1. 23. 23:34 Posted by 산사람
반응형


출애굽에서 바빌론 유수까지 경과 시간은 역대상에 나오는 야곱(이스라엘)의 족보를 근거로 추정해 보면 아무리 길게 잡아도 1000 년 안팍으로 보인다.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고 야곱의 12 아들들이 이집트에서 번성하다 출애굽하는데 까지는 불과 3 세대 밖에 걸리지 않는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의 수가 60만 이상이라면, 야곱의 아들들로만 이런 인구가 될 수 없고, 야곱을 따라 오거나 이후에 이집트로 추가유입된 상당한 인구가 있었다고 봐야할 것이다. 바빌론 유수(기원전 5세기)가 역사적 사실인 점을 볼 때, 이로부터 고고학적 증거가 희박한 그 이전의 구약 서사까지의 시간간격이 그리 멀지 않은 것이다.

솔로몬 이후 분열된 유다왕국과 이스라엘왕국의 존재는 어느 정도 역사적 실체를 갖고 있을 것이다. 마치 우리가 단군의 고조선을 보는 시각처럼 말이다. 바빌론 유수기 잡혀간 이스라엘 랍비들이 조로아스터교의 일신교로부터 강력한 영향을 받았다는 추정은 그렇다치더라도 규범과 서사를 통합시킨 경전을 태초의 세계와 그 묵시론적 종말의 선상에서 산출한 것은 일대 사건이다. 물론 신약이 없었다면, 그 문체가 이와 너무도 상이한 구약만으로는 제한된 영햔력만을 가졌을 것이다.

어느 민족이 이처럼 장대하고 파급력 깊은, 서사와 규범을 통합한 경전을 만들 수 있었을까? 그리고 그것이 그들 만의 것이 아닌 보편성에서도. 서경, 시경, 불경은 막스 베버가 보기엔 기독교가 도달한 보편주의에 못미치는 경전이다. 과연 그런가?

반응형

사울과 다윗

서술 Beschreibung 2024. 1. 19. 07:03 Posted by 산사람
반응형

또다른 고대왕국의 탄생

역사서 사무엘 상하는 유대왕국의 성립과정을 보여준다. 출애굽 후 모세와 여호수아의 인도를 받으며 광야에서 40년간 방랑하던 이스라엘의 12지파 백성들은 약속의 젓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갖은 전쟁 이후 분산 정착하게 된다. 출애굽 세대와 모세도 밟아보지 못할 땅에 후손들이 들어선 것이다. 이후 제사장 겸 영도자인 사사들의 통치를 받던 이스라엘인들은 다른 민족들의 왕국처럼 자신들도 왕이 필요하다고 제사장 사무엘에게 요청함에 따라, 그는 야훼께 이를 물어보고 승낙을 받는다. 야훼는 그들의 요구에 자신의 전지전능함을 불신하는 실망감을 감추지 않지만 마치 필요악처럼 왕을 세워줄 것을 약속한다. 그들은 이제 야훼와 제사장들에게 뿐만 아니라 왕과 그의 궁전, 궁신들에게도 공납의 의무를 져야 한다.

사무엘에게 기름부음 받아 이스라엘 최초의 왕이 된 사울은 초기에 이민족들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며 존앙받는 군주로 등극했지만 야훼는 그의 후계자로 그의 적통이 아닌 다른 지파의 목동 다윗을 지명한다. 왕의 두통을 하프연주로 달래도록 궁전에 불려갔던 소년 다윗이 무릿매로 골리앗을 쓰러 뜨리고 이후 수많은 전장에서 전쟁영웅으로 백성의 인기를 휩쓸자 사울은 시기심으로 다윗을 죽이고자 했다. 사울은 그가 자신의 후계자로 낙점된 사실을 알면서도 이를 부정하고자 했던 것이다.

사울의 추격을 피해 자신을 따르는 600 여명의 무리와 함께 도망을 거듭하던 다윗은 심지어 이스라엘의 주적이다시피한 블래셋 족속에게까지 가서 신세를 지게 되며, 이스라엘과의 전쟁에 까지 동원될 뻔 했다. 이후 계속되는 사울의 추격을 따돌리던 다윗은 두번이나 사울을 죽일 기회가 있었으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가 기름부음받은 왕이기에, 아무리 자신이 그 왕위를 이어받는다 해도 그럴 수 없었다.

사울이 블래셋과의 전쟁에서 치명상을 입고 도주하는 중 그의 심복은 이미 생명이 경각에 달한 사울이 자신을 치라고 명했다면서 그를 죽인 후 다윗의 진영에 이를 알리러 갔다. 새로 왕이 될 다윗에게 공로를 인정받을 것으로 예상하고 갔던 그를 다윗은 죽인다. 이후 기름부음 받은 왕으로서 다윗은 이스라엘과 유다 통합왕국을 세우는 과정에서, 사울의 잔당들이 그의 살아남은 자식들과 함께 다윗에 항거하는 중 한 잔당에서 내부 반란이 일어난다. 사울의 아들을 죽이고 역시 공로를 위해 다윗에게 간 반란자 역시 처단된다.

고대 왕국의 형성과정을 보여주는 중요 사건인데, 다윗이 사울과 그 아들들에 대해 보이는 태도는 이중적인 면이 있다. 명분상 다윗이 그들을 직접 처리하지 못하더라도 고대 왕국의 안정적 왕권을 위해 그들은 정리되어야할 걸림돌이다. 하지만 다윗은 그들을 배척하지 않는다는 진정성을 반역자 처단으로 보여줌으로써 그에 대한 백성들의 신망을 더욱 두텁게 했다. 통합의 정치력을 보여준 것이다. 그 아무리 야훼의 뜻에 따랐다 해도.

반응형
반응형

한국사회에서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되는 것들 중 대표적인 사안은 서울(수도권)집중화와 대학 서열화다. 서울집중화는 참여정부의 사례처럼 정치적인 힘으로도 해소할 수 없는 문제지만 대학 서열화는 서서히 균열의 조짐이 일어나고 있다. SKY 수시 합격생들, 특히 이공계에서 대거 미등록 사태가 벌어지는 현상은 단지 의약대로 그 합격생들이 이탈하는 것으로만 해석될 수 없는 변화의 시작일 수 있다.

일단 대학 서열화가 지속되기 힘든 일차 요인은 인구소멸에 있다. 나는 인구소멸의 중요요인을 계속 출생률 저하의 탓으로 돌리는 일반적 해석은 배제한다. 인구소멸이나 출생률 저하는 사회변동의 원인이 아니라 그 결과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학령세대의 급격한 축소로 서열의 지층이 무너짐에 따라 일부 대학과 비인기 학과가 사라지는 현상은 대학 서열의 붕괴 못지 않게 연구역량의 기반도 침하시킨다.

대학서열화의 지속불가능성에 관한 이차 요인은 서열화가 더이상 경제적 실효성에서 뿐만 아니라 상징적 지위의 역할에서도 힘을 잃고 있는 현상에 있다. 평생직장 개념이 사라지고 30대 명퇴론이 나도는 한국에서 보다 안정적인 직업을 찾고자 하는 열망이 의약대에 대한 전통적인 인기를 더욱 격상시킨다. 하지만 의약대도 마지막 보루일 수 있다. 한편, 상징적 지위의 상실은 단적으로 현정권이 보여준다. 대학 서열의 최정점에 있는 집단들이 벌이는 실정만으로도 충분하다.

세째, 단기적 학력측정을 통해서는 더이상 현재와 미래의 산적한 문제에 대처할 수 없다는 데 있다. 물론 학력측정은 서열화를 위한 주요수단임은 말할 나위도 없다.  시험을 잘 보는 이가 과연 인재인가? 시험은 유일한 측정수단이 아니라 측정의 한 수단일 뿐이다.

대학 서열화는 정책적 역량으로 해소할 수도 있겠으나  오히려 그 전에 자연적으로 보일 만큼의 사회변화로 그렇게 될 소지가 크다. 힘들일 필요없이 무너질 수 있는 구조물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어느 대학을 나왔냐는 것으로 어떤 사람을 평가하는 우선적 순위로 삼는 것은 구시대적이다. 해병대 출신처럼 단지 순간의 경외심 외에는.

반응형

건설 노동의 공기

단상 Vorstelltung 2023. 12. 26. 05:26 Posted by 산사람
반응형

오늘 예전에 건설현장에서 함께 일한 동료와 짧게 안부를 주고 받았다. 오래 갈 줄 알았던 평택현장이 올해 초반부터 일감이 줄어들다 최근에 다시 회복되는 것으로 보였는데 그렇지 않은가 보다. 사실 한 현장이 3년 이상 지속되기는 힘들다. 3년이 뭔가? 3개월, 3일도 안되서 현장일이 끊길 수도 있는 것이 건설현장이다. 그래도 반도체공장 건설은 공기가 다른 현장에 비해 안정적인 편이다. 심지어 발전소 보다도.

현실이 이렇다 보니 팀단위로 움직이는 이들은 수시로 현장을 옮겨 다녀야 한다. 개별적으로 한다 해도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팀을 따라 움딕이는 것이 여러모로 덜 피곤한 일이지만, 동물도 서식처가 바뀌면 힘든 것 처럼 새로운 현장은 낯설은 것이다. 개인적으로 움직이며 팀 뿐만 아니라 현장도 옮기는 일에 이골이 난 사람도 있지만, 그런 이들은 극소수에 불과할 뿐, 나이들고 이 현장 저 현장 돌아다니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런 일에 적합하고 민첩한 사람은 사실 팀장급의 사업주 외엔 드물 것이, 어차피 같은 노임을 받는다면 안정적인 공기의 동일현장이 임노동자에게 더 낫기 때문이다. 당장 눈앞의 돈에 흔들리는 사업자에겐 이런 일은 부수적일 뿐이다.

공기는 건설비용과 직결된 사안이기 때문에 당사자 모두에게 민감한 일이지만, 옛날처럼 무리하게 공기를 단축하려다 사고가 나면 더 큰 문제이기에 건축주 입장에서는 더욱 신중할 수 밖에 없다. 물론 이런 일은 반도체나 발전소, 대규모 아파트같은 대형 현장에 한한다. 한없이 늘어질 수 없는 것이 건설공기지만, 한 현장이 마무리될 때 까지 일하고 유동적으로 움직이는 팀을 만나는 것도 운이다. 좀더 능력이 된다면 그런 팀을 만드는 것은 운을 만드는 일이겠다.


반응형

혼돈의 성탄

단상 Vorstelltung 2023. 12. 25. 05:18 Posted by 산사람
반응형

누가복음 2장에는 예수가 태어난 당시의 시대적 배경이 짧게 언급되어 있다. 정적 안토니우스를 누르고 황제권을 확립한 아우구스투스의 칙령 아래 모든 로마 식민지에 호적이 강제됨에 따라 이스라엘에서도 타향에 있던 모든 이스라엘인들은 호적등재를 위해 고향으로 회귀해야 했다. 나사렛에 있던 요셉은 만삭의 아내 마리아와 함께 150 km 떨어진 조상의 고향 베들레헴으로 가야했고, 결국 어렵게 도착한 그곳의 어느 사관에서 마리아는 아이를 출산했다. 베들레헴은 현재 팔레스타인의 도시로서 2만명 이상이 숨진 가지지구에서 70km 거리에 있다. 이 지역에서 비참과 혼돈의 강도가 2023년 전 보다 현재가 더 세지만 아무튼 예수는 혼돈의 시대, 혼돈의 장소에서 태어났다. 크리스마스 성극에서 '빈방 있습니다' 라는 토로로 유명한 여관 주인역을 맡은 한 아이의 상반된, 하지만 진실한 대사는 비참과 혼돈의 시대에 던지는 희망의 메시지다.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네 차이퉁은 크리스마스 이브 사설에서 종교가 폭력적인 세계사에 기여하는 것에 관해 비관적으로 말한다. https://m.faz.net/aktuell/politik/inland/kommentar-zur-weihnacht-gott-mit-uns-19403899.html 신의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갈등과 살상이 벌어지는 일은 현재 진행형이기도 하다. 쾰른 대성당에는 이슬람테러 주의경보로 경찰의 통제 하에 신자들이 입장하고 있다. 저마다 자신의 신들의 이름으로 이교도를 탄압하는 것은 종교의 구시대성과 야만성을 보여주지만, 사실 종교를 그런 식으로 이용하는 것은 권력에 책임이 있다. 하마스 지도부와 네탄야후 처럼 말이다. 물론 종교가 이런 권력에 부역하는 일은 나치에 동원된 카톨릭처럼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종교로부터 세속화된 세계에서 어떤 주장이나 명제를 종교를 근거로 정당화하는 것은 더이상 설득력을 갖기 힘들다. 물론 상식적인 윤리를 종교로부터 뒷받침 받는 것에 관해서는 굳이 비판을 할 필요는 없을 것이나 그 윤리라는 것은 종교로부터 계속적인 정당성을 끌어낼 수는 없다. 윤리의 기원이 종교일지는 모르지만, 종교로부터 멀어지는 것은 태양계로부터 벗어난 보이저호의 유영과 유사한 숙명이다. 왜? 영구불변한 진리라는 것은 그 말 자체가 허구적인 것이고, 그런 말 자체는 특정시대와 특정장소와 결부되어 있기 때문이다. 진리는 알프스 산맥을 넘지 못한다.

세속화를 넘어 정교분리가 상식적인 헌법질서인 사회에서 종교의 이름으로 권력을 사용하는 것은 야만을 넘어 불법이기도 하다. 종교의 이름으로, 혹은 유사종굥의 이름으로도.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