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헌재 5차 변론에 증인출석한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과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의 진술 중 마지만 인물의 한 발언과 모습이 유독 눈길을 끈다. 피청구인측 변호인이 전 수방사령관에게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계엄절차에 맞게 군을 출동시켰던 것인데 이렇게 내란죄 피고인이 된 것이 억울하지 않냐고 묻자 이진우는 고개를 잠시 숙인 채 짧은 한숨을 쉰 후 거기에 대해 대답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피청구인측 요청으로 생중계되는 대통령 탄핵 심판 법정에서, 이미 다른 관련 장성들과 함께 구속되어 검찰의 수사와 기소에 넘겨진 입장에서 증인은 전 방첩사령관과 마찬가지로 많은 질문에 '대답할 수 없다'거나 '답변이 제한된다'는 말을 주로 하지만 '대답하고 싶지 않다'는 감정적 발언은 그 자신의 내면상태를 그대로 반영한다.

변호인 바로 옆에서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사념에 잠긴 듯한 대통령을 분명 이진우는 그 질문을 받았을 때 보았을 것이다. 대통령이 이 5차 변론에서도 내놓은 여러 거짓과 궤변 중 압권은 '계엄으로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이다. 12월 3일 대통령의 계엄포고 방송을 보면서도 이것이 불법적인 내란행위임을 직감하지 못한 채 군의 이동을 지시했던 전 수방사령관은 이날 헌재 법정에서 내내 지친 표정이 역력했으며 '대답하고 싶지 않다'는 답변으로 폭발 일보 직전에 도달했다. 그의 인생에 큰 일이 난 것이다.

분명 사전에 김용현의 주선으로 여인형 등과 함께 대통령과 만난 자리에서 이진우는 계엄에 대한 언급과 계획을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계엄 포고 직후 국회로 출동은 했지만 준비가 부족해 보이는 계엄군의 상황으로 보나 이날의 헌재 증언으로 볼 때, 실제 정치적 목적의 계엄령이 일어나리라고는 이진우는 예상을 못한 것 같다. 이런 추측은 변호인의 조언을 받고 있는 이진우가 자신의 방어권을 강화해 감형을 받으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일 수도 있지만, 이것은 보수언론이 한때 관저에 갇힌 대통령에게 이미 구속된 장성들이 책임을 돌리고 있다는 논조에 부합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대통령이 책임을 돌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의 치명적인 적은 바로 자신과 그의 부인인데도 말이다.

반응형

카를 슈미트 입문서

책들 Bücher 2025. 2. 3. 19:20 Posted by 산사람
반응형

Reinhard Mehring, Carl Schmitt zur Einführung(Hamburg : Junius, 2017)

자유에 대한 철학적 자기 정당화는 '나'라는 전망에서 나온다. 이에 반해 슈미트는 법체계에로의 집단적 참여라는 '우리'라는 전망에서 논의한다. 철두철미하게 그는 반개인주의적이고 반자유적으로 선택했다…이렇게 해서 그는 1935년 뉘른베르크의 인종차별법 입법을 '자유의 헌법'이라는 이름으로 긍정했다.

S.11

그의 작업은 20세기 독일 국가사의 위기국면에 대한  반영이다.

상동 13

반응형

노무현의 유산

단상 Vorstelltung 2025. 2. 1. 06:49 Posted by 산사람
반응형

노무현이 대통령으로 취임했을 때 정치권에서는 생소했지만 부산에서는 널리 알려진 변호사 문재인이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그는 3년 후 비서실장을 맡으며 참여정부와 끝까지 함께 했고, 결국 이명박과 박근혜로 이어지는 지난한 세월을 거쳐 노무현 정권의 계승자가 됐다.

보수언론과 이에 야합하는 정치인들의 악의적 맹폭에 시달리면서 흔들리던 정권을 방어하고, 노무현 사후에는 정치일선에서 위기의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전위에 섰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문재인의 정치적 역할은 여기서 멈췄어야 했다.

김어준의 집권플랜에 휘둘려 급조되다시피한 대선후보 등극과 이후 박근혜 국정농단은 문재인에 대한 두번째 묻지마 올인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애시당초 문재인의 정치적 성격은 관리형 리더에 가깝지 산적한 현안을 교활하고 용맹하게 돌파해 나갈 원시적 권력의지가 없었다. 국정홍보에는 주력했지만 뚜렷한 정책적 성과없이 정권을 유지보수하는 차원에 머물렀고, 가시적 명망에 눈 먼 인사들이 정권에 올라타면서 윤석열도 정권 중반에 부름을 받아 가담했던 것인데, 적어도 검찰총장 윤석열에게도 내부총질을 감행케 할 정권 내부의 문제점이 보였다고 윤석열 스스로 대선후보시절 말하기도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총구는 결국 5년 후 국민에게까지 겨눠졌다.

문재인이 권력의 밀실에 들어서게 된 것은 노무현의 인간적 약점, 신뢰하는 친구를  가까이 두고 싶은 어쩔 수 없는 심로였겠지만, 그만큼 사방에 깔린 내부의 강력한 적에 포획된 불안의 반영이기도 했다. 지금의 추미애, 김민석이 보여주는 정치력은 그때 당시에 대한 반성의 산물이기도 하다.

점쟁이를 자처했던 김어준도 이제 한물 간 세대다. 권력비판의 날은 여전히 유효할지 모르나 어설픈 킹메이커 역할은 이제 날샜다.


다음은 조선일보 강천석 칼럼 중 일부(입력 2025.02.01. 00:05 업데이트 2025.02.01. 00:21)

"현 헌법에서 윤 대통령은 8번째 대통령이다. 전임자 3명은 감옥에 갔다. 1명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명은 탄핵 소추됐고, 1명은 파면됐다. 전임자 2명은 재임(在任) 중 자식들을 감옥에 보냈다. 무사한 것은 문재인 대통령 하나다. 사실은 이 ‘무사(無事)’가 수수께끼다. 청와대 비서실이 총출동해 울산 시장 선거에 개입한 사건이 ‘누가 당선되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대통령 말로부터 시작됐기 때문이다. 관련자들은 유죄 선고를 받았다. 윤 대통령이 찬밥 먹던 자신을 서울중앙검사장·검찰총장으로 연속 발탁해 준 구은(舊恩)을 갚은 게 아니냐는 말이 나돈다.

윤 대통령도 파면과 감옥의 작두 날 위에 서 있다. 87년 헌법 조종석에 탄 대통령 모두가 ‘추락’했다. 항공 산업이라면 이런 기종(機種)은 벌써 퇴출당했을 것이다. 만일 윤 대통령이 파면돼 누군가 이 헌법에서 다음 대통령이 된다 해도 본인·배우자·자식이 감옥에 가거나 그보다 더한 불행을 당할 확률이 100%다. 대통령이 되고 싶은 사람,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큰 사람이 개헌에 앞장을 서야 할 이유다. ‘나는 다르다’던 전임자 전원이 불행을 피하지 못했다."

https://youtu.be/KtwGUCkFe-M?si=epO6EvChrto9uAK1


반응형

도시열전 :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1

여행 Reise 2025. 1. 30. 03:57 Posted by 산사람
반응형

프랑크푸르트 중앙역 주변은 암스테르담에 못지않은 유럽의 대표적인 섹스관광지로 알려져 있는데, 이와 더불어 또다른 악명은 독일 여느 대도시 중앙역 주변처럼 마약에 빠진 노숙인들의 온상지라는 것이다. 프랑크푸르트 중앙역 정문에서 나와 도로를 건너면 좀비처럼 걷고 쓰러져 있는 노숙인들 사이로 마리화나 냄새가 진동하고, 도로 양측에 즐비한 아시아계 음식점을 따라 좀더 깊숙이 들어가면 환락가가 펼쳐지는데 여기선 또다른 냄새가 난다. 그것은 분뇨와 마약제 냄새마져 밀쳐내는 똥냄새다.

사실 중앙역을 빼고 보면 헤센주의 프랑크푸르트란 도시는 그렇게 큰 도시라고 볼 수는 없다. 서울이나 도쿄에 비하면 도시 규모도 크다고 할 수 없고 인구는 100만도 되지 않는다. 하지만 도시 주변권 인구가 600만에 달할 정도로 헤센의 블랙홀같은 중심도시이면서 독일 금융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이 도시의 역사는 도시의 규모치고는 그리 오래 됐다고 할 수 없는데, 주요 배경은 마인강에 있었다고 한다. 전쟁중에 있던 황제가 마인강가에서 군사들의 도하에 용이한 좁고 얕은 수심의 강줄기를 찾고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현재의 프랑크푸르트 중심지였다는 것이다. 중앙역 인근의 강이라고 해봐야 서울의 중랑천 보다 조금 폭이 넓을 정도이고 보면, 제1 한강대교가 강폭이 제일 좁은 용산과 노량진 사이에 세워진 것과 유사하다. 그러고 보면 서울역의 입지도 프랑크푸르트역과 비슷하다.





반응형

내란에서 대선으로

주장 Behauptung 2025. 1. 27. 08:29 Posted by 산사람
반응형

계엄이 발생한지 54일 지나서야 주모자에 대한 구속기소가 이뤄짐에 따라 내란사태는 형사법정에서 종식의 수순을 밟아가게 됐고, 속도가 붙을 헌재의 탄핵심판절차와 함께 본격적인 조기 대선 레이스에 시동이 걸리고 있다. 무도한 폭도들의 정변시도에 위협받고 정지될 뻔 했던 민주주의 체제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데 두 달에 가까운 시간이 걸린 것이다. 계엄사태 당시와 주모자의 2차 체포 당시에 불상사가 벌어지지 않은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었으나, 그 사이에 내란사태와 별개로 무안국제공항에서 여객기 대형참사가 있었다.

대통령 한 사람이 바뀐다고 세상이 달라진다고 할 수는 없지만, 국민적 삶의 기반에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어떤 다른 사회적 요인보다 더 강력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권력을 집행하는 일인을 선출하는 한국의 대선은 총선과 함께 중대한 정치 일정이다.

대통령 때문에 한 국가가, 한 사회가 몰락할 수 있거나 번영할 수 있다는 것은 유권자의 책임영역을 떠나 그렇게 안정적인 민주적 작동이라고 보기 어렵다. 국민의 삶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는 정책의 실현을 위해 자신의 책임과 권한을 헌법적 틀에서 행사할 수 있도록 대통령을 견제하고 감시하는 일은 비단 국회와 언론, 사법부 뿐만 아니라 주권자의 의무이기도 하다. 윤이 남긴 뼈아픈 교훈은 바로 이런 사소한 상식일 수도 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