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 문학상

단상 Vorstelltung 2024. 10. 15. 06:34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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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 문학상 소식을 접하고 책을 구매해 읽어 본 경우는 오에 겐자부로와 토니 모리슨이 수상했을 때가 전부였다. 노벨상이 아니었다면 이름도 모를 작가로 남았을 것이다. 물론 노벨상이 아니었어도 인상깊게 접한 작가들도 있다. 즐겨 읽던 작가들 중엔 수상자도 있고 비수상자도 있다. '테스'의  토마스 하디는 유력한 수상후보였으나 끝내 받지 못했다. 그의 '이름없는 쥬드'의 결말에서 보이는 바와 같은 불온한 세계관에 노벨상위원회가 못마땅해 했다는 후문도 있으나 별 설득력은 없다. 인간에게 보내는 희망의 메시지는 비극을 통해서도 충분히 전달될 수 있기 때문이고 이것이 더 세련된 방식이기도 하다. 한편 노벨문학상 수상자 중에는 철학자도  있는데, 그들은 버트란드 러셀, 앙리 베르크손, 장 폴 사르트로, 엘리아스 카네티다. 20세기 이후의 철학자 중에는 이들과 순위경쟁을 하기엔 어색하면서도 중요한 철학자들을 꼽을 수 있다. 발터 벤야민, 자끄 데리다, 위르겐 하버마스는 어떤가?

분명 노벨 문학상 수상자들은 충분히 상을 수여받을 자격이 있겠지만, 비수상자들 중에도 수상 자격이 있는 작가들이 있다. 이런 점에서 수상자는 일종의 대리수상자인 셈이기도 하다. 사정은 다른 부문의 노벨상에 대해서도 비슷하지 않을까?

한국 작가의 노벨상 수상은 당연히 기뻐할 일이지만, 마치 월드컵에서 우승한 것인 마냥, 치열한 경쟁에서 승리라도 한 것 처럼 떠들석하게 축포를 쏘며 책이 없어서 못 팔 정도로 난리가 나는 현상은 철저히 노벨상이라는 권위로 낚인 일시적인 일이다. 진정한 작가, 위대한 시인을 발굴하는 일은 위대한 독자의 엄연한 몫이도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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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파의 시대

단상 Vorstelltung 2024. 10. 10. 09:07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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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회는 날이 갈수록 전파에 깊이 의존하는 양상으로 나간다. 일례로 스마트폰은 전파가 없다면 통신이 안되므로 SNS나 유트브를 이용할 수 없다. 무선통신에 사용되는 전파는 고주파로서 방송파 보다 높은 주파수 대역에 있다. 방사능이나 감마선은 이보다 더 높은 주파수 대역에 있다. 고에너지인 고주파의 전파일수록 이에 피폭되면 인간에게 위험하다. 도시의 벌들이 무선통신의 전파에 피폭되어 개체수가 줄어가듯이. 스마트폰 중독의 위험 못지 않게 전파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것의 위험을 피하려면 수시로 와이파이나 데이터를 꺼놓는 습관도 필요하다.

전파를 통한 정보전달은 아날로그나 디지털 방식으로 데이터를 변조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마치 가시광선과 같은 빛을 통해서 인간이 사물을 지각할 수 있는 것 처럼 정보의 전달을 위해서 전파가 매체로 이용되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의 신체에 전파를 통한 정보수용과 복조를 위한 미세한 수용체를 이식한다면, 증강현실과 같은 체험을 위한 헤드기어 없이 인간은 새로운 진화의 단계에 들어설 것이다. 더군다나 저출산의 대안으로 인간배양기술이 시행된다면 태어나면서부터 그러한 칩을 이식받도록 할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의 신체가 기계가 아닌 이상 직접적으로 그러한 전파들을 감당할 수 있을까? 아니 오히려 인간은 이미 빛과 같은 저주파장으로부터 지각을 하는 것으로 진화되어온 것으로 봤을 때 전파와 떼어질 수 없는 공생의 운명일까?

분명한 것은 그러한 새로운 기술이 인간신체에 침입했을 때 그것의 위험성에 대한 논란은 현재의 스마트폰에 대한 논란과 유사하면서도 지배를 위한 강력한 통제수단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 엔비디아나 구글에 몰리는 천문학적 투자는 그러한 기대의 반영이란 것은 새삼 말할 필요도 없다. 돈이 된다면 내일 어떤 일이 일어나도  물불 안가리고 달려드는 이상 피할 수 없고 감당해야 하는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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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ll Israel Krieg?

단상 Vorstelltung 2024. 10. 7. 08:28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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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lleriefeuer oder Raketen mit Iron Dome zu verhindern, ist kein Krieg. Sofern der Konflikt nicht mit Atomwaffen endet, wird letztlich ein Bodenkrieg die endgültige Entscheidung sein. Werden Israels fortgeschrittene Verbündete im Krieg zwischen den beiden Parteien bei der Entsendung von Bodentruppen aktiver sein als ihre muslimischen Brüder? Während der Kampf gegen den Geiselterrorismus der Hamas durch Israels zivilen Terrorismus, der an ethnische Säuberung grenzt, verwässert wird, stellt sich die Frage, ob Israel den ermüdenden Kämpfen in der Ukraine entgehen kann, die durch fehlende Verhandlungen verursacht werd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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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클라스 루만 : 구별의 사회이론

서술 Beschreibung 2024. 9. 11. 01:57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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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중단했던 루만의 '사회의 사회'를 다시 읽는다. 문장과 문장의 연결이나 문단과 문단의 연결이 원할치 않은 단절을 이해하는 것은 여전히 여의치 않으나 내용으로나 방법으로나 이런 독특한 이론을 자기 방식으로 이해하려고 하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마치 '천 개의 고원'이나 '파사주 프로젝트'의 진입로와 퇴로가 온전히 독자에게 맡겨진 것과 마찬가지로 어떤 하나의 요약이나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니다. 분명 학문사적 맥락에서 루만의 이 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체계이론의 본론과 각론(사회체계이론과 부분 체계이론들)이 전제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것도 어디까지나 진입의 문제다. 특히 학문세계 밖에서라면 더욱더 그렇다.

한가지 분명해 보이는 것은 루만이 도덕을 하나의 커뮤니케이션의 문제로 보는 점이다. 덕이라는 것은 온전히 인간에게 소급되는 것으로서 인간이 동물과 구별되는 자질이지만 생득적인 것만은 아니다. 여기서 커뮤니케이션은 구별을 위한 활동으로 정의될 수 있다. 동식물세계에도 커뮤니케이션 활동이 있겠으나 인간의 사회를 이해하는데 있어 그런 활동은 19세기에 들어서야 활용될 수 있었기에 역사성이 빈약하다. 한편 왜 구별인가? 가히 주제의식이라고 할 만큼 루만이 구별에 집중하는 것은 무엇때문인가? 선과 악, 옳음과 틀림, 정의와 불의 등등의 이항대립적 이분은 끊임없이, 때로는 그 위치를 바꿔가며 진행하는 운동에 가깝다.

구별은 어떤 사태나 현상을 이해하는 주요한 방법이다. 정상상태로부터 비상사태, 즉 예외상황을 판별하는 것을 칼 슈미트가 주권자의 권리로 파악하는 것에서 볼 수 있는 것 처럼 구별의 활동은 도처에서 강도를 달리하며 행해지는 일이다. 인간이 인간인 것은 본래적으로 인간이기 때문이라는 것으로부터가 아니라 인간이 아님, 비인간으로부터 도출하는 것이 용이하면서도 주도적인 방식이었다. 마치 자유라는 것은 굴종으로부터 이해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구별은 하나의 권리인가, 인식인가? 권리라는 것은 구별의 권한이 상이하게 나눠질 수 있다는 것이고, 인식이라고 하는 것은 그 출발점인 관찰이 상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관찰의 지점에 따라 인식이 상이할 수 있다는 것으로 구별은 유효한가? 안이 밖이 되고 밖이 안이 되는 뫼비우스의 띠 것처럼, 구별되지만 언제든 구별이 무력해지는 것이 아닌가? 아마도 이에 대한 대표적인 사례는 양당제 교대 정권을 특징으로 하는 한국의 정치상황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정당들의 기원이 어찌 됐든 서로를 스스로 구별짓지만 교대로 국민의 선택을 받듯이 구별되면서도 구별되지 않는 역설이 일어난다. 어쩌면 민주주의는 구별이 더욱 섬세하고 다양할 수록 비로서 작동하는 원리일지도 모른다. 역설적 선택은 사실 강요에 가깝기 때문이다.



https://youtu.be/XW1fe20I5Z4?si=yeuV_gWWTZmNc1D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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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들의 난 : 의료붕괴

단상 Vorstelltung 2024. 8. 31. 20:14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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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이 계엄령을 준비중이라는 김민석 의원의 경고는 현재 응급의료현장에서 벌어지는 사태에 관해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보인 태연한 반응으로 볼 때 상당히 신빙성이 있어 보인다. 총선 결과가 어떻게 되든, 의료현장이 어떻게 되든, 민생경제가 어떻게 되든 자신이 보고 믿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최고 권력자가 뭐라도 뭣할까. 이런 대통령에 분노하지만 마치 부동산 대량 보유자가 원하는 값 이하에 집을 내놓느니 비워두는 것처럼 기득권에 매몰되 의료현장에 복귀하지 않는 의사들도 윤석열과 별반 다르게 안보인다. 그들에게 민심은 표나 돈으로 밖에 안보이기 때문인데, 설상가상으로 대통령은 이제 선거에 관심없고  의사들은 푼돈에 관심이 없으니 살릴 수 있는 인명이 죽어나가는 일은 그들에게 별일도 아니다. 똑같은 것들끼리 박터지게 싸워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모르지만 알아서 아프지 말거나 자가응급처치도 필요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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