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사태와 헌법의 위기

논문 Abhandlung 2025. 2. 17. 20:01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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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선포의 헌법상 근거와 정치신학

12.3 계엄사태에서 비롯된 내란국면은 법적 공방을 둘러싸고 여론분열의 양상까지 보이고 있다. 법적일 뿐만 아니라 일반 상식의 차원에서 2시간 35분간 지속된 계엄은 이미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는 순간, 아니 계엄 자체를 이미 모의하는 순간 헌법을 위반한 것이다. 어느 누구나 대통령이 정치적인 이유로 계엄령을 시행했다는 것을 알고 있고, 대통령 스스로도 계엄선포 대국민 방송에서 그리고 헌재에서 야당의 횡포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이런 말이 정치적인 이유로 계엄을 한 것이라고 실토한 것임을 대통령은 알지 못하더라도 대다수 국민들은 알고 있다. '전시나 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 비상사태에서 질서유지를 위해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계엄을 선포할 수 있다'는 헌법 77조 규정에 '정치적인 이유'는 끼어들 여지가 없다. 하지만 비상사태에 대한 규정을 두고 해석의 여지를 확보하려는 것이 대통령 탄핵에 반대하는 진영에서 준비하는 방어논리의 주요 근거를 위해 요구된다면, 바로 여기서 카를 슈미트의 정치신학(1922)이 주목될 수 있다.

슈미트에게 비상사태 또는 예외상황은 법의 기능이 정지된 상태다. 그가 예외상황에 주목하는 것은 법의 원천, 기원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 실존 철학자 키에르케고르가 '보편 윤리의 목적론적 중단이 가능한가?' (주1)라고 제기하여 1920년대 유행하던 예외개념은 슈미트에게 법의 타당성을 설명하기 위한 방법론적 개념으로 변용된다. 즉 슈미트에게 예외는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사실의 차원이 아니라 가설적인 차원에서 법의 기원을 설명하기 위해 전용된 것이다. 정치신학에서 예외는 마치 참다운 현실인식, 본질을 직관할 수 있는 인식의 계기를 제공해주는 현상처럼 묘사되지만, 어디까지나 방법론적 도구에 다름 아니다. 물론 예외는 마치 프로이트의 무의식이 빙산의 일각에 불과한 의식을 떠받치고 있는 것으로 그려지듯이, 정상성을 사방에서 위협하는 근본적 사태로 비춰지긴 하지만 슈미트의 의도는 예외개념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로부터 주권개념을 끌어내는데 있다.

법의 작동이 정지된 예외상황에서 슈미트는 주권자가 나타난다고 본다. 왜냐하면 법의 작동이 멈취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정치신학 1장의 첫문장 '주권자는 예외상황을 결정한다'는 명제는 이와 관련해 두 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첫째, 예외상황에서 비로서 주권이 실체화되는데, 주권은 예외상황의 아노미를 억제시키는 권력을 행사함으로써 법의 기능중지를 중지시킨다. 이것이 바로 결정이다. 두번째, 주권자는 어떤 사태가 예외상황인지, 즉 비상사태가 발생하기 전에 미리 그런 무정부상태를 방지하기 위해 예외상황을 결정한다. 정치신학 1장에서 '주권자는 극도의 위급이 실제 일어나는지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이를 제거하기 위해 무엇이 일어나야 하는지에 관해서도 결정한다'(주2)는 문장은 주권자에게 예외상황에 대한 판단 권한을 부여하는 것으로 비춰진다.  이 두번째 해석이 유효하다면, 주권자는 계엄선포의 요건도 결정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과연 그런가?

이에 대해서는 정치신학에서 근본구도로 상정된 예외개념으로 법의 기원과 정당성을 설명하는 것이 과연 성공적일 수 있는지, 그리고 여기에 뒤따르는 주권자로 슈미트가 지시하는 대상이 무엇이며 그것이 유효할 수 있는지 살펴 봄으로써 대답할 수 있다.


예외를 통한 법의 정당화와 주권의 문제

마리아노 크로체와 안드레아 살바토레는 정치신학에 대한 법학적 독해를 하면서 예외는 정치적 질서의 무근거성을 예찬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법학자(특히 슈미트)의 '구원적' 힘을 지시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면서 정치신학은 법적 정상성의 문제를 해명하는데 실패한 것이라고 말한다. 슈미트 자신도 예외적 결정은 법의 본질을 포착할 수 없다고 결론지었는데, 1922년에 그는 예외를 '정상화'시키고 이를 법과 국가의 주요한 특징으로 만들려고 했으나 그 이후 여기서 손을 뗐다는 것이다. 이는 "예외가 일상생활에 아무런 안정된 근거를 제공할 수 없는, 부정기적인 극도의 상황임을 인지했던 것이고 따라서 그는 예외의 역할과 범위를 수정해야 했는데, 이는 질서와 안정보다는 무질서와 혼돈을 일으키는 잠재적 위험사태를 피하려는 것이었다."(주3)

즉 시론적으로 슈미트는 예외라는 실존철학적 개념을 끌어들이면서 역시 예외를 통해 주권이론을 펼친 장 보댕의 국가이론을 결합시켜 법이론의 근거를 마련하려는 시도에 그치고 말았던 것이다. 따라서  예외를 통해 주권이 발생한다는 명제는 가설적이고 실험적인 설명일 수 있으나 예외 개념 자체의 불확정성과 모호함 때문에 설득력을 상실한다. 더군다나, 예외를 통한 결정주의로 법의 기원을 설명하려는 슈미트의 시도는 그의 비판대상인 한스 켈젠의 법실증주의를 답습하고 있다. 마리아노 크로체와 안드레아 살바토레는 방법론적으로 달랐지만 놀랍게도 일치하는 점을 이 두 학자에게서 발견한다. 그것은 법질서의 동일성을 결정짓는 것이 무엇인지에 관해 그들이 매우 유사한 결론에 도달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법 정초와 관련해 내재적이거나 외재적인 법의 본성에 대해서, 그리고 이런 것이 법학의 영역에 해당하는지에 관해서나 불일치했다. 켈젠에게 규율(order)의 근원적 정초는 판사가 고려할 일이 아니다. 규율은 가정적인 근본 규범의 견지에서 고유한 동일성과 통일성, 완결성을 획득한다. 하지만 슈미트의 이론적 체계에서 결정에 의해 수행된 역할은 근본 규범에 의해 수행된 역할을 상기시킨다. 왜냐하면 결정은 누가 주권자인지, 이런 관점에서 무엇이 타당한 법 질서인지 확정하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법은 적극적(positive) 본성을 지녔고 어떠한 내용도 가질 수 있다. 그들은 법(law)의 타당성이 법 외부에서 획득될 수 있다는 것을 부정하고 법적(legal) 타당성은 법적 기계의 논리로부터 기원한다는데 동의한다.ㅣ 슈미트와 달리 켈젠에게 이 기계는 법 수립의 계기를 포함하지 않는다."(주4)

정치신학에서 켈젠의 무근거적인 법적 정당화 작업을 비판하면서 예외를 통해 법의 원천을 드러내려는 슈미트의 시도는 다시 켈젠으로 회귀하고 있다는 것인데, 비록 슈미트는 우회로를 거치지만 결국은 켈젠과 마찬가지로 법의 기계적 체계 앞에서 멈춰 선다. 다만 슈미트는 켈젠과 달리 이 법적 기계에 법 정초를 위한 결정의 역할도 부여함으로써 더욱 더 능동적인 법 기계로 치닫는데, 그것은 바로 예외상황을 결정하는 주권자다. 정치신학에서 슈미트가 주권이론의 전형으로 인용하는 장 보댕은 잘 알려져있다시피 루이 14세로 대표되는 프랑스의 절대주의 왕권을 옹호하며 왕권신수설을 주장한 이론가다. 비록 그에게 주권자란 군주에게만 한정되지 않는 영속적이고 불가분적인 절대 존재자이지만, 어디까지나 강력한 입헌 군주를 지향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따라서 슈미트가 염두하는 주권자는 오늘날 민주주의 헌법체계의 서두를 여는 국민주권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더군다나 정치신학을 발표하고 그 다음 해에 발표한 글 오늘날 의회주의의 정신사적 상황 Die geistesgeschichtliche Lage des heutigen Parlamentarismus(1923)에서 슈미트는 의회주의와 전쟁선포를 하면서 당대 이탈리아에서 승리한 파시스트 정권에 경도됐다(주5). 결국 그에게 끝없이 논쟁만 이어가는 의회주의에 포위된 것으로 보였던 바이마르 공화국의 '혼돈과 무질서'에 마침표를 찍고 결단하는 독재자를 긍정하는 길로 슈미트는 들어서고 말았던 것이다.

따라서 카를 슈미트의 예외를 통한 법의 정당화 작업과 마찬가지로 그가 염두한 주권자는 현대 민주주의
헌법체계에 부합하기에는 설득력이 없을 뿐더러 시대착오적인 한계를 내포하고 있으므로, 주권자가 비상사태를 결정할 수 있다는 그의 핵심명제는 정치현실에 적용될 수 있는 타당성과 개연성을 상실한다.


헌법위반의 중대성과 파시즘의 발흥

헌재의 대통령 탄핵심판의 핵심쟁점은 계엄선포 후 현재까지 명확히 드러난 헌법위반 사실과 함께 대통령의 헌법위반에 중대성이 있느냐에 있다. 헌법 위반이라는 사실만으로는 탄핵사유가 성립될 수 없다는 판례(노무현 대통령 탄핵 심판) 때문에 헌법위반의 중대성을 놓고 헌재에서 청구인측과 피청구인측이 서로 상반된 주장을 펼쳤다.  이미 정치적인 이유로 계엄을 선포한 것 자체만으로도 헌법을 중대하게 위반한 것으로 해석될 소지가 높을 뿐더러, 내란죄 보다 상대적으로 헌법침해의 정도가 낮은 국정농단으로 박근혜의 대통령 파면이 이뤄진 전례를 볼 때, 도대체 어떻게 헌법을 위반해야 내란죄 보다 더 중대하게 헌법을 위반할 죄가 있을지 의구심을 들게한다. 더군다나 현재까지 진행된 상황을 볼 때 대통령은 자신의 결백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헌재의 대통령 탄핵이 기각되면 헌재는 대통령이 2차 계엄도 시도할 수 있는 면죄부를 주는 셈이다. 잠시 지금까지 내란정국의 주요 국면을 살펴 보면 다음과 같다.

계엄선포 2024.12.03
국회 계엄해제 의결 2024.12.04
탄핵(1,2차) 2024.12.16
공조본청구, 서부지법의 체포영장 발부 12.31
공수처,국수본의 체포집행(1,2차) 2025.01.15
중앙지법의 체포적부심 기각 2025.01.16
서부지법의 구속영장 발부 2025.01.18
(탄핵반대진영의 서부지법 소요사태 발생)
검찰청구, 중앙지법의 구속기간연장 기각 01.24
검찰 기소 2025.01.27
헌재 10차 변론 종결,형사재판개시 2025.02.20

국회의 대통령 탄핵소추가 헌재에서 인용되지 않으면 3달 가까이 진행된 이 모든 과정이 도미노처럼 무너질 개연성이 높다. 지난 주 형사재판 준비기일에 중앙지법 해당 형사부에 청구된 대통령측의 구속적부심은 헌재의 결론을 바라보고 있다. 사법부가 최고 권력자의 입김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는 의혹은 이제 사법부가 여론으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처지에 놓이게 했다. 탄핵찬성만큼 과반 이상의 지지를 받지 못하지만 무시할 수 없는 탄핵반대 여론은 마치 양당제로 갈린 총선과 대선의 지지율 양상으로 그려지며, 이것은 헌법재판관 8명중 3명은 탄핵에 반대할 수 있다는 해괴한 셈법으로 이어진다. 대통령 탄핵인용을 위한 헌재의 의결정족수는 6명 이상이다(주6).

세계사의 혼돈 국면에 그래도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정치와 경제 체계에 있는 것으로 보이던 국가에서 이런 위험한 도박같은 일이 벌어지는 것은 어쩌면 그 사회의 실상을 보여주는 일이기도 하다. 그것은 바로 일상에 만연된 파시즘이다. 미셸 푸코는 자신의 주적으로 간주한 파시즘에서 세가지 얼굴을 본다. '히틀러나 무솔리니와 같은 역사적 파시즘, 파시즘에 관한 언설과 행위 또는 열망에서 보이는 개인적 파시즘, 서구의 사고에서 권력의 형식이자 실재로의 접근로로 성역화한 '법, 한계, 거세, 빈틈'과 같은 범주의 우울한 공격성의 파시즘'(주7)이 바로 메두사의 머리같은 파시즘의 모습이다. 한국 사회의 내면에 두번째, 세번째 얼굴로 대표되는 파시즘의 경향이 만연되어 있다면, 헌재의 결정은 첫번째 얼굴로 대표되는 파시즘에 합법의 길을 터주느냐의 문제로 귀결된다.


각주
1. 이 문제제기는 1843년 키에르케고르가 코펜하겐에서 익명으로 출판한 공포와 전율 : 요하네스 드 실렌티오의 변증 시 Frygt og Baeven : Dialektisk Lyrik af Johannes de Silentio 에서 제시된 세가지 문제유형 중 첫번째다. 이 책의 이례적인 성공은 작가로서 자신의 이름에 불멸성을 가져다주기에 충분하다고 일기에 기록할 정도로 키에르케고르를 고무시켰다. Konrad Paul Liessmann, Sören Kierkegaard zur Einführung(Hamburg:Junius, 1993), S.57-58 참조. 한편, 이 첫번째 문제제기는 공포와 전율에서 다음과 같이 표현된다 : "아브라함이 자기 자신 보다 더 사랑해야할 그 아들 이삭에 대한 윤리적 의무를 정지시키는 것이 보편 윤리의 목적에서 벗어나지 않으면서 가능한가?" S. Kierkegaard, Furcht und Zittern, in Gesammelte Werke 4.Abteilung, h.v., E. Hirsch & H. Gerdes(Gütersloher Verlagshaus Gerd Mohn, 1982), S.61.
2. Carl Schmitt, Politische Theologie : Vier Kapitel zur Lehre von der Souveränität, neunte Auflage(Berlin:Duncker&Humblot, 2009), S.14.
3. Mariano Croce & Andrea Salvatore, Carl Schmitt‘s Institutional Theory : The Political Power of Normality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23), p.12.
4. 상동 22-23.
5. Reinhard Mehring, Carl Schmitt zur Einführung(Hamburg:Junius, 2017), S.35-37.
6. 헌법 제113조 및 헌법재판소법 제23조(ChatGPT)
7. Michel Foucault and Theology : The Politics of Religious Experience, ed.J.Bernauer&J.Carrette(Routledge, 2014), 4장. 미셸 푸코의 종교철학 : 반파시스트적 삶을 위한 서론  James Bernauer p.78.

*작성 : 2월 17, 19, 24일

https://youtu.be/-7ccwARbers?si=Cp1fAcqg_A71BQL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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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 권력자의 인터뷰 : 박정희

단상 Vorstelltung 2025. 2. 11. 05:19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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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트브에서 1977년 11월 29일에 있었던 박정희와 일본 언론인과의 대담영상을 봤다. 아마도 당시 국내의 방송에선 시도할 수 없었던 대담형식으로 보일 정도로 일본 기자의 질의는 교묘하게 정곡을 찌르는 방식으로 대통령을 몰아 세웠다. 첫번째 질문은 당시 김일성에서 김정일로 권력승계가 이뤄지고 있다는 북한에 대한 것이었다. 시종일관 비굴하다싶을 정도로 웃음기를 띤 기자의 이 질문을 받으면서 박정희는 편안한 표정으로 이 황당한 사회주의 국가의 권력이동에 관해 논평했지만, 두번째 그리고 세번째 질문에선 그의 표정이 굳어졌고 답변도 의례적이었다. 그것은 유신체제에서 한국의 대통령 선출방식에 관한 것과 김대중에 대한 것이었다. 박정희는 마치 일본기자가 걸어놓은 덫에 걸린 것으로 보였다. 기자는 이런 의도를 가지고 질문을 했던 것이 아닐까?

'너는 북한의 부자권력승계를 비판하겠지만 헌법을 뜯어고쳐 종신집권을 시행하는 것도 모잘라, 이런 독재에 방해가 되는 정적을 너가 좋아하는 이웃나라에서 처리하려고 했지만 잘 안되서 감옥에 보내지 않았어?'

아마도 박정희는 그날 밤 이 기자를 안주삼아 측근들과 술잔을 돌렸을 것이다. 물 웅덩이에 고인 달빛을 보며 윤은 이런 권력가의 로망에 심취했던 것인가? 부하의 총에 맞아 죽는 한이 있어도 어차피 가는 인생인데 한방 폼나게 살아봐야 하지 않냐고? 서울법대를 나와 9수 끝에 사시를 통과하고 검찰 특수부를 거쳐 서울중앙지검장, 검찰총장, 대통령 그리고 계엄령으로 할 건 다했다. 총에 맞아 죽을 일은 없을 것 같지만 이제 살아온 날들 보다 참회의 날들이 더 길게 느껴질 것이다.

https://youtu.be/GqUc_xte0DM?si=PW7qPXk0CHDhMAp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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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 5차 변론에 증인출석한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과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의 진술 중 마지만 인물의 한 발언과 모습이 유독 눈길을 끈다. 피청구인측 변호인이 전 수방사령관에게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계엄절차에 맞게 군을 출동시켰던 것인데 이렇게 내란죄 피고인이 된 것이 억울하지 않냐고 묻자 이진우는 고개를 잠시 숙인 채 짧은 한숨을 쉰 후 거기에 대해 대답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피청구인측 요청으로 생중계되는 대통령 탄핵 심판 법정에서, 이미 다른 관련 장성들과 함께 구속되어 검찰의 수사와 기소에 넘겨진 입장에서 증인은 전 방첩사령관과 마찬가지로 많은 질문에 '대답할 수 없다'거나 '답변이 제한된다'는 말을 주로 하지만 '대답하고 싶지 않다'는 감정적 발언은 그 자신의 내면상태를 그대로 반영한다.

변호인 바로 옆에서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사념에 잠긴 듯한 대통령을 분명 이진우는 그 질문을 받았을 때 보았을 것이다. 대통령이 이 5차 변론에서도 내놓은 여러 거짓과 궤변 중 압권은 '계엄으로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이다. 12월 3일 대통령의 계엄포고 방송을 보면서도 이것이 불법적인 내란행위임을 직감하지 못한 채 군의 이동을 지시했던 전 수방사령관은 이날 헌재 법정에서 내내 지친 표정이 역력했으며 '대답하고 싶지 않다'는 답변으로 폭발 일보 직전에 도달했다. 그의 인생에 큰 일이 난 것이다.

분명 사전에 김용현의 주선으로 여인형 등과 함께 대통령과 만난 자리에서 이진우는 계엄에 대한 언급과 계획을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계엄 포고 직후 국회로 출동은 했지만 준비가 부족해 보이는 계엄군의 상황으로 보나 이날의 헌재 증언으로 볼 때, 실제 정치적 목적의 계엄령이 일어나리라고는 이진우는 예상을 못한 것 같다. 이런 추측은 변호인의 조언을 받고 있는 이진우가 자신의 방어권을 강화해 감형을 받으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일 수도 있지만, 이것은 보수언론이 한때 관저에 갇힌 대통령에게 이미 구속된 장성들이 책임을 돌리고 있다는 논조에 부합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대통령이 책임을 돌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의 치명적인 적은 바로 자신과 그의 부인인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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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 슈미트 입문서

책들 Bücher 2025. 2. 3. 19:20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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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inhard Mehring, Carl Schmitt zur Einführung(Hamburg : Junius, 2017)

1장. 서론 : 집단적 정치적 자유의 법이론

자유에 대한 철학적 자기 정당화는 '나'라는 전망에서 나온다. 이에 반해 슈미트는 법체계에로의 집단적 참여라는 '우리'라는 전망에서 논의한다. 철두철미하게 그는 반개인주의적이고 반자유적으로 선택했다…이렇게 해서 그는 1935년 뉘른베르크의 인종차별법 입법을 '자유의 헌법'이라는 이름으로 긍정했다.

S.11

2장. 주권의 이념에 관해

그의 작업은 20세기 독일 국가사의 위기국면에 대한  반영이다.

상동 13

슈미트는 이미 1914년, 1916년 슈트라스부르크 제국대학에서 취득하게 될 교수자격을 위한 논문(Der Wert des Staates und die Bedeutung des Einzelnen)에서 ㅣ국가는 법을 실정법의 형식으로 세운다는 법실증주의적 동일성 명제를 지지하지 않고, 인륜적 심급(Instanz)으로서의 국가라는 헤겔의 구상을 따라, 국가는 자신의 의미와 과제, 정당성을 그것이 실현해야할 법이념으로서만 가진다고 주장…1919년 나온 이념사에 관한 연구서이자 논쟁적 에세이 Politische Romantik 은 시민적 낭만인 비합리주의와 미학주의, 주관주의를 평가절하함으로써 바이마르와의 전쟁에 돌입하는 서막이었다. ㅣ슈미트의 낭만주의 비판은 헤겔과 키에르케고르의 그것을 변주한 것이지만 시민적 낭만주의에 대항한 반혁명적 카톨릭 국가철학을 위해 도용한 것일 뿐, 피히테로 거슬러 올라가는 낭만주의의 철학적 핵심은 완전히 간과한 채 동시대인들을 낭만주의라는 시금석으로 판별함.

상동 20-22

국가주의자인 슈미트에게 카톨릭주의가 경합했던 것은 전쟁의 영향 때문. 교회는 국가의 대안으로 보였지만 베르사이유와 제노바의 강압적 평화는 국가주의를 활성화시킴. 1932년의 Begriffs des Politischen 은 슈미트의 전집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열쇠로서, 여기서 그가 국가로 이해한 것은, 종교적으로 중립된, 교회와 구별된 근대 국가로서, 이는 주권이론가인 장 보댕과 토마스 홉스가 제기한 것. ㅣ 슈미트에게 바이마르 공화국은 국가의 정치독점이 외부와 내부에서 위협받는 것으로 진단됨. 베르사이유와 제노바로부터 받은 기본조건과 바이마르 헌법의 자유주의적 요소는 질서수립을 위해 국가에 부여된 협상력을 위협하는 것으로 보았던 것.

상동 24-25

정치신학에서 홉스는 결정주의의 고전적 전형으로 인용되는데, 그는 정치적 결정의 구속성이 어떠한 지고의 진리로부터라기 보다는 주권자 자신의 권위로부터 도출된다고 봄. 법의 유효성은 진리와 관련된 것이 아니라, 법을 수립하는 심급의 승인에서 가능.

상동 27

다른 저서가 아닌 오직 정치신학에서만 슈미트는 결정주의와 인격주의(Personalismus), 유신론의 근거연관을 확증적으로 가정. 권위주의적 결정은 결정담지자로서의 인격에 대한 강력한 개념을 함축하는데, 이 개념은 오직 유신론적 ㅣ세계상에서 확보될 수 있다는 것이다. 기독교에서만 인간은 (인격화된 신과 그리스도를 통해서) 열정적 인격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군주는 인간의 이런 인격을 대표한다.

상동 27-28

신학과 법학의 체계적 유비관계 : '근대 국가이론의 모든 중요 개념은 세속화된 신학적 개념'(정치신학, 49). 켈젠도 유사한 주장을 하면서 국가체제와 세계관의 관계를 계속 언급. '형이상학적으로 절대화된 세계관은 귀족주의적 입장에, 비판적으로 상대화된 세계관은 민주주의적 입장에 해당'(H. Kelsen, Vom Wesen und Wert der Demokratie,  1929, S. 101) 많은 저서에서 켈젠은 플라톤적이고 기독교적인 자연법과 싸우는데, 이것은 국가법의 타당성을 상위의 정의와 진리의 조건 아래에서 상정. 슈미트는 켈젠의 이런 문제의식을 수용했지만 켈젠과 ㅣ자유주의적 민주주의에 대항해 반혁명의 노선에 가담(정치신학의 '반혁명의 국가철학을 위하여' 장). 이것은 또한 '독재와 무정부'의 투쟁(정치신학, 83)으로 묘사됨. 이런 반혁명의 대표자로 언급된 이들이 de Maistre, Bonald, Donoso Cortes.

상동 28-29

슈미트의 생각은, 주권은 유신론적 세계상의 틀에서 인격에 관한 강력한 개념을 필요로 하며, 기독교는 법과 국가 이론적 근거에서 가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신이 없다면 국가적 권위를 위해 신이 발견되어야 한다…칸트와 니체를 결합시킨 Hans Vaihinger의 허구주의 철학에 기대어…슈미트는 법이념을 정치적 허구이자 규율권력의 결의적 정초(dezisionäre Stiftung)로 이해 ㅣ 권력과 법의 동시발생에 대한 가정은 규율정초를 목적으로 함. 법이념의 '허구'는 법정초를 위한 메타 정치적 요구를 반영. 하나의 정치적 질서는 권력과 법의 차이를 법이념으로 조정함으로써 법질서로 강고화됨…더우기 권력과 법은 규율정초의 순간에 동시발생. 그러나 이때 법질서는 정치적 규율의 기능적 방식으로 독립. 규율권력은 법준수에 대한 의무를 자신에게 부과하면서 이렇게 안정화된 기능을 인정.

상동 29-30

3장. 근대 헌법에 관한 국가법적 해체

1926년 슈미트는 국제법 관련 소책자(Die Kernfrage des Völkerbundes)에서 제노바 국제연맹을 1차 세계대전의 승자가 만든 정치적 정의의 산물이라고 비판.

상동 33

하나의 법질서는 복잡한 계단구조물이다. 각 경우에 적용되는 법은 논란이 있지만 판례에서 비로서 확정된다.  하지만 법 체계에 대한 가정은 실제적으로 필요. 법 체계의 통일에 관한 슈미트의 강력한 재구성은 실정적인 정치적 근본결단을 통한 정당화, [즉] 정치와 법의 체계적 통합으로 나타나는데, 그는 헌법상에 스며든 이질적인 이념과 원리, 개념에서 비롯되는 내적 긴장과 역동성을 강조. 그는 이러한 법질서의 이질적 경향이 특정한 정치적 이념과 원리, 개념의 논리를 벗어나 내적으로 전개될 것으로 본다. 이렇듯 사변적인 고유논리적 합리화와 체계화는 상당히 문제. 개념은 자존할 수
없고 언어적 관행으로 가능. ㅣ 헤겔도 국가적 삶의 객관적 정신을 규정하는 것이 인간 개별자의 주관적 정신이라고 봄. 이미 초기 비판자들(루돌프 스멘트, 오토 키르하이머)은 개념실재주의를 반박했으며 슈미트가 특정개념의 고유한 생명을 종교적 또는 형이상학적으로 실체화하고 있다고 보았다.

상동 33-34

슈미트가 정치적 비판의 계획된 수단으로 강조한 법의 합리화경향은 의도된 해체구상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왜곡되고 논쟁적인 목적에서 극도의 추상성으로 법학적 방법을 구상하는 것으로, 이에 따르면 헌법의 전개는 내재적인 비일관성과 자기모순에서 비롯된 자기파괴적 분열로 가는 것으로 기술됨. 따라서 헌법은 자신의 구조적 결함으로 붕괴(각주 47 : 바이마르 헌법에 대한 이러한 부정적 시각은 초기 연방공화국에 만연되어 있었지만 이런 시각은 오늘날 대폭 수정된 것을 넘어 바이마르의 정치적 모범으로 강조됨). 내재적 비판과 해체로 나가는 법학적 방법은 슈미트의 모든 저작에서 발견됨. 그는 주권의 정의나 의회주의의 원리, 정치의 개념이나 헌법의 개념처럼 특정한 근본개념을 제시하고, 이후 새로운 상황과 개념에 따라 의미변동을 확정하는 경향이 있음.  그는 학계에서 그의 적수에게 그의 이념에 관해 역사적 모반을 함으로써 그를 무장해제시키는 것으로 나아갔다.

상동 34

슈미트가 그런 개념적 폭탄으로 효과적으로 불을 붙인 것은 의회주의와의 전쟁을 선포한 오늘날 의회주의의 정신사적 상황(1923). 슈미트에게 의회주의는, 공개적 토론이 다수에게 용이한 결정을 위한 상대적 진리를 끌어낸다는 믿음에 적합. 그는 '진리와 정의'를 찾는 이런 믿음을 의회에서의 공개적 토론으로 특징짓는다. 의회주의는 '영원한 대화'를 제도화한다. 그에게 의회는 비정치적인 시민적 자기반사의 장소로 나타나는데, 이것은 결코 결정에 이르지 못한다.

상동 35

이 저서에서 두가지 상호 적대적인 운동이 슈미트에게 영향을 끼쳤는데, 그것은 맑시즘의 계급투쟁에 기반한 혁명적 노동조합주의(Syndikalismus)와 이탈리아의 파시즘으로 승리한 국가주의. 국가주의의 편에 선 슈미트에게 '국가주의의 에너지는 계급투쟁신화의 그것보다 더 강력하다.'(Die geistesgeschichtliche Lage des heutigen Parlamentarismus, 88) 당시 슈미트는 열광적으로 이탈리아를 들여다 봤고 Robert Michels과 Erwin von Beckerath와 같은 이탈리아 파시즘 전문가들과의 대화를 찾아 나섰다. ㅣ당시 무솔리니는 독일 우익의 모범이다. 1923년 가을 뮌헨에서 히틀러의 얼치기 쿠테타시도가 뒤따랐다.


상동 3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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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의 유산

단상 Vorstelltung 2025. 2. 1. 06:49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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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이 대통령으로 취임했을 때 정치권에서는 생소했지만 부산에서는 널리 알려진 변호사 문재인이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그는 3년 후 비서실장을 맡으며 참여정부와 끝까지 함께 했고, 결국 이명박과 박근혜로 이어지는 지난한 세월을 거쳐 노무현 정권의 계승자가 됐다.

보수언론과 이에 야합하는 정치인들의 악의적 맹폭에 시달리면서 흔들리던 정권을 방어하고, 노무현 사후에는 정치일선에서 위기의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전위에 섰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문재인의 정치적 역할은 여기서 멈췄어야 했다.

김어준의 집권플랜에 휘둘려 급조되다시피한 대선후보 등극과 이후 박근혜 국정농단은 문재인에 대한 두번째 묻지마 올인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애시당초 문재인의 정치적 성격은 관리형 리더에 가깝지 산적한 현안을 교활하고 용맹하게 돌파해 나갈 원시적 권력의지가 없었다. 국정홍보에는 주력했지만 뚜렷한 정책적 성과없이 정권을 유지보수하는 차원에 머물렀고, 가시적 명망에 눈 먼 인사들이 정권에 올라타면서 윤석열도 정권 중반에 부름을 받아 가담했던 것인데, 적어도 검찰총장 윤석열에게도 내부총질을 감행케 할 정권 내부의 문제점이 보였다고 윤석열 스스로 대선후보시절 말하기도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총구는 결국 5년 후 국민에게까지 겨눠졌다.

문재인이 권력의 밀실에 들어서게 된 것은 노무현의 인간적 약점, 신뢰하는 친구를  가까이 두고 싶은 어쩔 수 없는 심로였겠지만, 그만큼 사방에 깔린 내부의 강력한 적에 포획된 불안의 반영이기도 했다. 지금의 추미애, 김민석이 보여주는 정치력은 그때 당시에 대한 반성의 산물이기도 하다.

점쟁이를 자처했던 김어준도 이제 한물 간 세대다. 권력비판의 날은 여전히 유효할지 모르나 어설픈 킹메이커 역할은 이제 날샜다.


다음은 조선일보 강천석 칼럼 중 일부(입력 2025.02.01. 00:05 업데이트 2025.02.01. 00:21)

"현 헌법에서 윤 대통령은 8번째 대통령이다. 전임자 3명은 감옥에 갔다. 1명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명은 탄핵 소추됐고, 1명은 파면됐다. 전임자 2명은 재임(在任) 중 자식들을 감옥에 보냈다. 무사한 것은 문재인 대통령 하나다. 사실은 이 ‘무사(無事)’가 수수께끼다. 청와대 비서실이 총출동해 울산 시장 선거에 개입한 사건이 ‘누가 당선되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대통령 말로부터 시작됐기 때문이다. 관련자들은 유죄 선고를 받았다. 윤 대통령이 찬밥 먹던 자신을 서울중앙검사장·검찰총장으로 연속 발탁해 준 구은(舊恩)을 갚은 게 아니냐는 말이 나돈다.

윤 대통령도 파면과 감옥의 작두 날 위에 서 있다. 87년 헌법 조종석에 탄 대통령 모두가 ‘추락’했다. 항공 산업이라면 이런 기종(機種)은 벌써 퇴출당했을 것이다. 만일 윤 대통령이 파면돼 누군가 이 헌법에서 다음 대통령이 된다 해도 본인·배우자·자식이 감옥에 가거나 그보다 더한 불행을 당할 확률이 100%다. 대통령이 되고 싶은 사람,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큰 사람이 개헌에 앞장을 서야 할 이유다. ‘나는 다르다’던 전임자 전원이 불행을 피하지 못했다."

https://youtu.be/KtwGUCkFe-M?si=epO6EvChrto9uAK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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