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 밤 독일 마그데부르크의 크리스마스 마켓에 차량이 돌진해 어린이 1명을 포함한 5명이 숨지고 200 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사고가 났다. 그날 밤 이 뉴스를 보았을 때 급발진 사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지만, 보도 상으로는 피의자가 사우디 아라비아 출신의 정신과 의사로서 독일에 온 지 20년이 됐으며, 반이슬람주의 성향에다 당국의 난민정책에 반감을 품고 있었다고 하며, 특이하게도 독일 극우정당 AfD의 지지자라고도 한다. 주변에선 거칠고 어수선한 성정으로 이미 사고 몇 달 전에 이민당국으로부터 위험인물로 지목되기도 했지만 아직까지 이 사건의 명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은 채, 정신상의 문제로 일어난 우발적 사건으로 추정되고 있다. 어떤 내막이 있는지 좀더 시간이 지나봐야 알겠지만, 결과적으로 엄청난 범행으로 귀결된 점에서 한국의 한 무모한 대통령을 다시 연상시킨다.
이번 계엄사태와 관련해 김용옥은 유트브에서 진행중인 주역강의에서 탈주술화에 관해 말했다. 자신은 원래 베버가 서구 근대의 합리성 요건으로 언급한 개념인 탈주술화를 서양 중심주의 근대관으로 봐서, 그러니까 조선시대에도 배불숭교 식의 합리성이 있어서 그런 개념이 못마땅했는데, 이번 계엄사태로 인정하게 됐다고 한다. 왜냐하면 무속은 물론 온갖 종교를 이용하는 김건희의 국정농단은 물론 계엄 계획에도 전직 성추행 사건 사령관 출신 무속인이 적극 개입됐다는 근거에서 주술정권이란 오명에서 현정권이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역이나 제도 종교에는 주술적 요소가 없는가? 문제의 본질은 주술의 개입이 아니라 인간의 문제가 아닐까? 주술은 얼마든지 개인적 취미로든 어떻게든 뭐라 할 수 없는 것이 종교의 자유와 같은 자유로운 활동이다. 하지만 공익을 벗어나는 것, 상식적으로 타인과의 호혜적 관계를 침해하는 종교적 활동은 자유주의적 질서에 위반된다. 더우기 인간관계의 인격성을 넘어 익명성도 보호해야하는 공직에서 특정 종교 내지 비교, 미신에 사로잡힌 정책이나 결단은 공공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적대행위다. 잘못된 종교, 비교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이런 것에 휩쓸리는 인간의 문제다.
성탄절에 용산 대통령 안가에서 성탄예배가 있었다고 한다. 그에게 어떤 참회의 기회도 주지 않는 종교에 무슨 책임이 있을까? 확신범에게 필요한 건 종교가 아니라 독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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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행사하는 권력은 자연이나 신으로부터 유래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자연으로부터 나온다면, 권력을 가진 자는 권력이 없는 자에게 양 앞의 늑대다. 즉 인간은 인간에게 늑대다(Homo homini lupus). 신으로부터 나온다면 인간은 인간에게 신이다(Homo homini Deus).
Carl Schmitt, Gespräch über die Macht und den Zugang zum Machthaber(Günther Neske Pfullingen, 1954), S.9-10.
인간이 인간에게 인간인 명제는 권력관계를 내포하며, 이 관계는 복종을 통해 성립된다. 복종은 자의적인 것이 아니라 동기화된 것이다. 권력에 대한 동의는 대개는 신뢰 외에 공포, 희망, 절망으로부터 생긴다…동의(Konsens)는 권력을 가동시키지만 권력도 동의를 가동시킨다. 모든 피권력자로부터 충분한 동의로 집행되는 권력은 모는 동의의 총계 이상의 잉여가치를 가진다. 현대의 권력자는 자신의 권력에 동의를 가동시킬 수 있는 수단을 칼 대제나 프리드리히 1세 보다 더 많이 가진다.
상동 11-12
권력의 고유한 용량 : 무시무시한 권력자라도 인간적 신체의 한계와 이성의 불충분성, 정신의 약함에 결부됨. 홉스의 국가론은 바로 이런 인간의 나약함에서 출발. 나약함은 위험을 낳고, 위험은 공포를, 공포는 안전을 필요로함에 따라 이러저런 기관을 갖춘 보호기구의 등장이 불가피해짐. 하지만 홉스에 의하면, 이런 모든 보호조치에도 불구하고 각인이 각인을 죽일 수 있음. 나약한 인간도 가장 강력한 인간을 없앨 수 있는 상황에 놓일 수 있음
상동 13-14
권력의 피할 수 없는 내적 변증법 : 모든 직접적인 권력은 조언이나 보고처럼 간접적인 영향들에 종속됨. 즉 권력의 밀실이 있음(ein Vorraum, ein Zugang zum Ohr, ein Korridor zur Seele des Machthabers). 어떤 이성적인 장치로도 이 밀실을 완전히 근절할 수 없음.
상동 15-16
직접적인 권력이 그의 개인적인 인맥에 집중될 수록 권력자는 더욱 고립된다. 회랑은 지면으로부터 그를 분리시켜 성층권까지 그를 부양시킨다. 여기서 그는 그를 간접적으로 지배하는 자들에게 도달하지만 자신의 권력의 행사 대상인 나머지 모든 사람들에게 더이상 도달하지 못하고 이들 역시 그에게 더이상 도달하지 못한다. 불가피한 권력기구에 의한 권력자의 격리.
상동 17
실제적 사례 : 1. 1890년 3월 제 1 제국의 창시자이자 제국 총리인 비스마르크와 31세의 젊은 황제 빌헬름 2세 사이에 있었던, 각료의 보고 방식에 관한 갈등 2. 쉴러의 서사시 돈 카를로스
상동 18-19
권력의 선악에 관해 : 내가 권력을 갖고 있으면 권력은 선이지만 나의 적이 갖고 있다면 악이다. 권력에 대한 자의적 해석…권력 자체는 가치중립적이며 권력을 행사하는 의지의 선악이 문제? 대성자 그레고르는 권력을 신으로부터 비롯된 신성하고 선한 것으로 봐서 악마가 권력을 사용하더라도 권력 자체는 항상 선하고 신성하지만 악마의 의지가 악하다고 봄. 이에 반해 야콥 부르크하르트는 권력 자체가 악하다고 말함. 중세시대 이후 프랑스 혁명에 이르러 권력에 대한 본질적 인식의 변화가 있었다고 봐야 함. '신은 죽었다'와 '권력은 악이다'라는 주장은 동일한 시대상황에서 나온 동일한 것.
상동 20-23
권력관계 : O. 스펭글러가 인간은 맹수라고 본 것과 다른 차원에서 홉스는 인간의 권력관계를 간파했는데, 1650 년 당시에도 이미 발전된 인간의 무기가 맹수를 능가하는 것에서 볼 수 있는 것 처럼 인간의 유약함을 극복하는 기술적 수단의 증대는 권력자와 비권력자 사이의 힘의 격차(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적대적인)를 더욱 벌리는 위험을 초래. ㅣ현대적인 전멸도구를 가진 권력이 개별인간의 힘(근육과 뇌)을 능가하는 상황에서 선하거나 악한 인간적 의지는 더이상 이 초음속의 성층권에 부합할 수 없음. 이렇듯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기술, 기계에 관련된 문제는 더이상 인간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부터 풀려난 연쇄반응으로서 인간들 사이에 있던 기존의 권력관계를 초월함.
상동 24-25
권력이 선하거나 악하다고 할 수 없고 다만 중립적이라고 할 수는 있지만, 무엇보다 권력은 권력자에게도 하나의 독자적인 현실이며 권력자를 권력의 변증법으로 끌어들인다. 권력은 모든 권력에의 의지 보다, 모든 인긴적 선함과 악함 보다 더 강력하다.
상동 27
결론 : Doch Mensch zu sein, bleibt trotzdem ein Entschluß
상동 29
계엄사태와 관련해 아직 언론에 더욱 상세하게 보도되지 않는 사안은 북한의 오물풍선을 빌미로 국방부 장관이 합참의장에게 원점타격을 주문했는데 합참의장이 이를 거부함에 따라 계엄사령관 자리가 합창의장에서 육참총장에게 넘어갔다는 것이다. 사실 계엄사태 보다 더 무서운 일이 벌어질 수 있었다는 정황이다.
국내정치의 난관을 전쟁을 통해 해소하는 전략은 이스라엘의 네탄야후가 비근한 전형이기도 해서 윤씨일당이 충분히 모의할 수 있었다는 사실도 내란죄 수사에서 밝혀낼 일이다. 대통령 하나 잘못 뽑아서 국가가 무너질 운명에 처할 수 있었다는 것은 권력의 극심한 비대칭 문제를 드러내기도 하지만 한 개인이 감당하기에 너무도 벅찰 정도로 책임과 권한이 집중된다는 점에서 한국의 대통령제는 제왕적 성격이 강하다. 제대로 준비가 안되어 있지만 잘 포장된 인물에게 대권이 주어진다면 명태균의 말처럼 5살 꼬마에게 총을 맡기는 꼴이 되고 만다. 어떻게 보면, 이런 권력이 기피대상이 되는 사회야말로 진정한 민주공화국일 것이다.
한국의 현대사에서 이런 엄청난 권력의 기능을 정당하고 성공적으로 소화한 인물은 김대중 뿐이었고, 대부분의 대통령들은 불행한 결말을 맞이해야 했다. 여기에 또 한 명이 추가되는 것은 비극의 연속이다. 현정권은 현행 대통령제의 잠재적 위험성을 가장 극단적으로 표출했다.
여당이 이재명의 사법리스크를 대선일정과 연계시키려는 것은 그런 무소불위의 권력에 대한 두려움의 반영이기도 하다. 내년 초로 예상되는 대선에서 반드시 대통령의 권한을 의회로 분산시키는 개헌이 제 1의 공약이 되어야할 시점이다.
탄핵은 탄핵이고 긴급체포는 긴급체포다. 국회의 탄핵소추안 통과로 직무가 정지되더라도 헌법재판소의 판결 전까지 헌재의 심리에 대통령의 지위만은 유지한 채 적극적 방어권을 행사하겠다는 한가한 생각은 도대체 어떻게 나올 수 있을까? 이재명의 사법리스크에 견주어 자신의 사안을 법리적 문제로 보고 풀어보겠다는 발상이다. 자신이 초래한 사태가 마치 한편의 법정드라마같은 소재인줄 아나보다.
12월 4일 자정이 넘은 시각, 국회의 계엄해제 요구안이 통과된 뒤에도 국회법령집을 뒤져 계엄을 지속시킬만한 근거에 혈안이었듯이 오로지 법의 세계에 갇혀 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가 다투는 것은 국회로부터 넘어온 탄핵소추안에 대해, 즉 대통령의 지위를 박탈하는 것에 대한 인용여부이지 내란죄에 대한 판단 자체는 아니다. 검경 내지 공수처, 나아가 특검을 통해 내란주범으로 구속기소되어 형사 재판에 서야될 사람이 아직도 대통령의 직위를 사적으로 활용할 궁리뿐이다.
더이상 대통령이 아니라고 헌재가 알려주고 내란수괴라고 법원이 선고를 해야 승복할 수 있는가? 의사가 사망선고를 내려야 자신의 죽음을 인정할 수 있겠다는 발상과 비슷하다. 이미 끝났는데도 말이다.
https://youtu.be/a4zWUIvHSwA?si=nUPxET8YHZ12uni5
국힘과 윤석열에게서 헌법 재판소에서 법적 공방을 하겠다거나 계엄이 고도의 통치행위라는 말들이 나돈다.
정국의 완전장악을 위해 군대를 사적으로 동원해 국회를 해산하고 선거조작하려던 시도가 만천하에 드러난 마당에 괴담과 다름없는 언행들이다.
계엄선포의 전제인 비상사태를 판단하는 것이 주권자라면, 이 주권자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은 대통령이 주권자의 총체적 의사에 반해서 계엄시도를 한 것은 헌법에 대한 최악의 침탈이다.
헌법을 준수할 제 1의 책임자가 헌법을 파괴하려고 했다. 그것도 법을 잘 안다고 스스로 자부하는 법률가로서 말이다. 법과 권력을 사유물로 착각한 심각한 뇌손상이 의심되나 감형의 요건은 절대 안될 것이다.
https://youtu.be/a4zWUIvHSwA?si=0keDUYO7SpVmrS0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