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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8.16 끊어오르는 소비 욕망
  2. 2009.08.15 이곳에서 블로그 활동을 재개하려 합니다.
  3. 2009.06.25 블로그 임시중단 안내
  4. 2009.06.15 콰이강의 다리
  5. 2009.06.11 노예해방

끊어오르는 소비 욕망

책들 Bücher 2009. 8. 16. 07:29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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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트 : 도스또예프스키,『노름꾼』, 이재필 옮김



                             (국지성 호우를 뚫고 나오며 2004/08/05 17:06)

오랜만에 다른 작품으로 읽어보는 도스또예프스키는  역시 정신없이 말을 쏟아붇는 열정의 반복이다. 같은 사람이 연출한 영화들 사이에도 어떤 공통된 분위기가 있는 것처럼 소설도 그런 느낌이 든다. 거진 10년만에 보는데도 그렇다. 고2  겨울방학에 읽은 까라마조프의 기억이 너무도 강렬했지만 대학에 들어가 읽은 『죄와 벌』, 『악령』에 대해선 별 기억이 없다. 전자에선 고리 대부업으로 살인적으로 기생하는 노파 살인의 정당화 대목이, 후자에선  주인공의 간질발작만이 기억난다. 그래도 내가 읽은 이 작품들에서 그대로 이어져 내려오는 분위기를 짚어 본다면 그것은 병적이라고 할만한 열정과 의욕, 자괴감, 그리고 러시아 민족에 대한 애증의 감정이다.

분명 도스또예프스키는 러시아 민족 특유의 낙후성과 허술함,게으름을 비난하지만 그 비난의 근저에는 가히 폭발할 정도의 자긍심이 잠재되어 있다. 이 작품에서 등장하는 프랑스인과 독일인, 그리고 영국인은 하나의 민족을 대표하는 주자로 도스또예프스키에게 난도질당한다. 프랑스인은 빈틈없는 매너와 형식미로 러시아 여인네를 홀리는 우상으로 과시되지만 이런 우아함은 혁명의 유산으로 넘겨받은 빈껍데기일 뿐이다. 독일인은 후손을 위해 부의 축재만을 일삼을 뿐인 지루하고 단조로운 족속이다. 그나마 영국인은 침착하고 성실하긴 하지만 그렇게 먹통만은 아니다. 폴란드인은 하이에나적 근성으로 노름판의 푼돈이나 집어넣으려 서성대는 민족이다. 그렇다면 러시아 민족은? 러시아 민족만이 소유로 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인간적 문화를 그야말로 거침없이 즐길 수 있는 근성을 가졌다. 그 문화란 룰렛이다.

귀족의 신분으로서 외국을 오가며 방탕한 청춘을 보낸 경험을 바탕으로 쓴 이 작품이 눈요기나 헛소리에 그치지 않고 가치있는 기록으로 남을 만한 근거는 너무도 급작스러운 국면전환 때 일어나는 감정과 사고의 파고를 다분히 관조에 머물지 열광적으로 재현하는 작법에 있다. 늙으막에 대령으로 진급한 후 바로 예편한 장군과 장군 재산을 저당잡은 프랑스인, 장군의 상속여부을 보고 결혼을 하려는 블랑슈,,이들이 유산상속을 기대하며 병상에서 죽기만 고대했던 장군의 할머니가 건장하고 위풍당당하게 러시아로부터 이들이 있는 독일의 롤레텐부르크에 와서 도박판에 많은 재산을 걸어 이들을 갈팡지팡하게 만드는 사건, 주인공 알렉세이가 온몸을 던져 사랑했지만 콧방뀌만 뀌던 장군의 양녀 뽈리나가 집안의 혼란스러운 상항에서 알렉세이에게 마음을 열려고 하지만 그녀를 도와준답시고 도박판으로 직행한 채 그녀의 존재자체도 잊어버리고 도박에 함몰해 가는 주인공,,뭔가 다들 전염병이라고 할 만한 격정적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허우적 거릴 때 영국인 미스터 에이슬리만이 냉정을 유지한 채 이 휘청대는 함선을 조정한다.

구경하러 모여드는 인파의 벽이 겹겹히 쌓여가고 계산은 잊어 버린채 무모하게 배팅을 하며 우연을 자신의 편으로 당겨가는 행운아에게 찬사가 쏟아지지만 판이 없이는 존재가치가 없는 돈은 그의 돈이 아니다. 짜릿한 전율로 위에서 아래로 몸을 찍는 승전의 환희를 잠시 그에게 안겨줬다가 썰물처럼 무참히 쓸려 가는 것이다.        

(2004. 8.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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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블로그 이용을 제한하고 이곳에서 다시 글을 올리려 합니다. 네이버의 제 블로그에 올린 다음의 글을 덧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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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포털로부터 벗어난 인터넷 생활을 생각해 보면서 네이버 블로그를 어떻게 할까 생각했었는데, 아무래도 여러가지 여건상 당장 이용을 끊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알고 지낸 이웃분들, 현재 참여하고 있는 카페, 그리고 메일의 기능 등이 쉽게 이곳을 벗어나지 못하게 합니다. 그래도 조금 조금씩 포털에 의존해 있는 생활방식을 바꿔보고자 블로그 이용은 억제하려고 합니다(얼마전 부터 중요 메일은 네이버를 이용하고 있지 않습니다). 네이버 블로그에는 홍보성 글이나 스크랩 등 가벼운 글만 올리고 주로 티스토리 블로그에서 활동하겠습니다.  

 http://sumisan.tistory.com/

 예전에 네이버에서 이곳으로 갈아탄 한 이웃분 덕분에 알게되어 호기심 반으로 개설해 본 건데, 중간에 다음의 맥락광고도 호기심 반으로 설정해 놓았습니다. 광고는 앞으로 어떻게 할지 좀더 생각해 보겠습니다(광고가 있는 이상 여전히 포털에 연결된 것입니다). 앞으로 좀더 긴 호흡의 글은 티스토리에서 올릴 것이며, 현재 네이버 블로그에서 비공개로 해놓은 자료나 글들은 조금 조금씩 이곳으로 옮겨볼 생각입니다.

여러가지로 대형화된 기업의 마케팅 전략에 생활세계가 흡수되어 가는 세상입니다. 이름난 한국의 재벌그룹은 동네의 구멍가게도 먹어 치우고 있으며 일회용 라이터 시장에도 뛰어 듭니다. 이러다가 기업형 삽겹살집도 나올지 모르겠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한국의 인터넷 시장은 포털이 쥐락펴락합니다. 자본력으로 영세 벤처의 아이템을 먹어치우는게 대형할인점과 다름없습니다. 

조금 조금씩 포털에서 벗어나 다소 불편하더라도 약간은 모험적인 생활을 그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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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임시중단 안내

안내 Einführung 2009. 6. 25. 14:55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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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2004년부터 네이버 블로그를 이용하다가 중간에 호기심반으로 티스토리 블로그도 병행해 왔다. 계속 병행하는게 적절한 일로 보이지 않고, 활성화도 않되는 이 블로그를 계속 유지하는 것도 억지스럽다. 나중에 또 필요한 일이 있을지 모르므로 폐쇄는 안하겠지만, 업데이트는 아마도 없을 것이다. 혹 궁금하신 분들은 http://blog.naver.com/streetphila으로 오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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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이강의 다리

영화 Film 2009. 6. 15. 15:51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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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계절이다. 

스리랑카에서 촬영된 이 전쟁영화는 역설적으로 여름휴가의 낭만을 불러일으킨다. 노역에 동원된 영국군 포로들은 마치 휴양지에서 놀듯이 엉성하게 엮어놓은 나무교각 건설 현장에서 다이빙까지 하며 즐긴다. 열강에 진입한 시기만 다를 뿐, 제국주의적 침략국가의 본성상 다를게 없는 영국과 일본 중에서 일본을 두둔할 이유는 전혀 없다는 전제 하에서 보면, 영화에서는 어떤 인종주의적 시각도 드러난다. 장교의 노역을 거부한 영국군 대령과 일본군 사령관의 대립은 두 인종간의 자존심 싸움으로 비춰지며, 풀어진 병사들의 군기를 확립하고 서구문명의 우월성을 증명하기 위해 영국군 대령은 다리 건축에 총력으로 매진한다. 원주민들은 도주한 미군 포로를 깍듯히 모셔 보내줄 뿐만 아니라 콰이강의 다리를 폭파하는데 기꺼이 동원된다. 어렸을 때는 재밌게 봤을지 모르겠지만, 뭔가 불편하다. 기일내에 다리가 다 완성되자 성취의 결과물에 심취하는 것은 영국군  대령이며 낙담하는 것은 일본군 사령관이다. 일본군 사령관은 상부의 명령만 따랐을 뿐이다.

물론 일본이 제국의 열강으로부터(특히 독일) 서구 문명을 사사받았음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사실이 서구문명의 우월성은 드러내는 것은 아니다. 문명의 우월성 주장에는 폭력적 침략과 침탈이 동반된다. 또한 말 자체가 침략적이기도 하다. 용산과 잠실에 짓는다는 초고층 건물은 한민족의 우월성을 드러낼까?  

뭔가를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 낸다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지만, 만드는 일 자체에 매몰됨으로써 다른 것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것은 쉽게 망각된다. 심지어 대상물의 붕괴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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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해방

카테고리 없음 2009. 6. 11. 10:31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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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 노예로 태어나 유소년기를 혹사당하다가, 1838년 북부로 탈출해 신문 편집자이자 작가로 명성을 날린 Frederick Douglass는 노예해방을 위해 정치적 도구 뿐만 아니라 무장 봉기도 주창한다. 다음은 그의 전투적 글의 일부(1857년).  

If there is no struggle there is no progress. Those who profess to favor freedom and yet deprecate atitation,  are men who want crops without plowing up the ground. They want rain without thunder and lightning. They want the ocean without the awful roar of its many waters. The struggle may be a moral; or it may be a physical one; or it may be both moral and physical, but it must be a struggle. Power cencedes nothing without a demand.

투쟁이 없다면 진보는 없다. 자유를 옹호하면서도 동요를 폄하하는 이들은 땅을 갈아 엎지도 않고 작물을 원하는 사람이다. 이들은 천둥과 번개없이 비가 오기를 바란다. 이들은 수많은 물방울들의 무서운 격랑이 없는 바다를 원한다. 투쟁은 도덕적일 수도 있고 물리적일 수도 있다. 또는 둘 다 일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투쟁이어야 한다. 권력은 요구없이는 아무런 양보도 하지 않는다.

하워드 진, <미국민중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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