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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9.22 EIDF2009 : 구글 베이비
  2. 2009.09.21 남한산성-1
  3. 2009.09.18 방법비판과 가라타니 고진
  4. 2009.09.18 ICA의 협동조합 7대 원칙
  5. 2009.09.16 솔약국과 뉴타운

EIDF2009 : 구글 베이비

영화 Film 2009. 9. 22. 11:40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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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리 알려진 사실을 다큐로 보니 충격적이다. 영화의 내용은 시험관아기와 대리모를 국제적 네트워크로 연결한 신종 사업, 아니 신종 보따리(냉동배아를 담은 여행가방)사업에 관한 것이다.  감독은 인터뷰에서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이 신종사업에 관해 어떠한 해석없이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이 사업에 맞는 윤리가 만들어지기 바란다고 했다. 불임부부나 독신, 동성애자들이 막대한 돈을 들여 자신의 정자나 난자, 혹은 기증자의 정자나 난자를 기증받아 인공 수정시킨 후 대리모에 이식 및 출산으로 아기를 받고, 미국의 난소 기증자는 이 돈으로 새집으로 이사해 집안 리모델링을 하고 새로운 총을 구입하며, 인도의 대리모는 이 돈으로 열악한 주거환경에서 벗어나 깨끗한 새 집을 산다. 분명 출산에 관한 기존의 방식이 의학기술의 발달로 급격히 사회적으로 변화되고 있음을 영화는 보여주지만, 그에 걸맞는 문화 내지 윤리는 자리를 잡지 못했음을 말한다. 불결해 보이는 인도의 병원에서  대리모로부터 마구잡이 절개로 아이를 뽑아내는 야만적 시술에 서슴치 않고 인도 여성이 뛰어들며, 남편은 이런 아내를 응원한다. 냉동배아에 관한 사업은 특히 이스라엘에서 많이 발달해 있다고 하는데, 이들은 백인의 건강한 난소를 인터넷을 통해 구한다. 마치 국제적 채팅싸이트처럼 이들은 외모와 나이, 건강상태를 인터넷으로 점검할 뿐만 아니라 기증자와 직접 화상으로 대화할 수도 있다. 앞으로 자연출산을 인공출산 및 대리모 출산이 대체할 전조를 영화는 보여준다. 국제적 계급관계 속에서 대리모 출산은 마치 장기 적출처럼 산업화된 것이다. 영화에서 냉동배아센터에 있는 연구원이 실린더에서 올챙이처럼 날뛰고 있는 있는 정자들 중에 제일 활동적인 정자를 고르는 장면이 있다. 인간 탄생의 처음과 끝을 이제 인간이 주도할 수 있는 세상이다. 그러나 이런 세상이 웬지 역겨워 보이는 것은 이런 사업에 대한 새로운 윤리가 없어서일까?  칸트는 <만물의 종말>에서 인간 삶의 연장은 악덕의 연장이라고 했다. 개인사적으로나 보편사적으로 인간 삶이 장구히 연장되는걸 낙관적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인공수정과 대리모출산으로 아기를 받은 선진국의 사람들은 입양을 하는 것보다 만족할 수 있을 것이며, 이 대가로 인도의 대리모와 미국의 난소 기증자는 경제적 향상을 맛볼 수 있다. 서로 득이 된다는데 밖에서 뭐라 말하기 힘들다. 그러나 밖에서 보기에 뭔가 불편한 이런 방식은 이 밖에서는 수용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인터넷으로 대륙 저편의 난소 기증자의 신상을 검색해 선정하고, 헐벗은 인도 여성의 배를 갈라 얻어 수송된 아기를 달갑게 받을 수 있는가? 아이가 문제가 아니라 과정이 문제인가? 돈벌이로 사업화된 방식의 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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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1

책들 Bücher 2009. 9. 21. 11:59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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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처음으로 김훈의 소설책을 봤다. <남한산성>. 대략 짐작을 했지만, 국가주의 정서가 물씬 풍긴다. 아무래도 그는 왕조시대만을 다룰 수 있는 작가같다. 예조판서 김상헌이, 이미 전날 얼어붙은 강을 건넜던 왕가 일행이 들어간 남한산성으로 가기 위해 뱃사공의 도움을 받아 강을 건넌 후, 뱃사공을 죽이는 대목은 국가 폭력의 현재성을 보여준다. 얼어붙은 강의 살얼음길을 피해 왕가 일행을 안내하고도 보리 한줌 받지 못한 무지랭이 뱃사공이 식량을 위해 청군에게 길을 안내할 것이라는 얘기를 듣고 예판은 뱃사공을 처단할 생각을 한 것이다. 이러한 '처리'방식은 작가의 허구이지만, 이런 허구를 만든 의식에는 국가주의적 폭력에 대한 묘한 정당화가 도사리고 있다. 전시에 부역하는 자는 일고의 가치없이 처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전시에 이런 행태는 비일비재하며, 따라서 이에 대한 제한 장치가 발동되는 것은 익히 예상할 수 있으나, 김훈의 관점에는 마치 자코뱅적인 처단의지가 보인다. 뱃사공 하나 죽인다고 물밀듯이 들어오는 청군을 막을 수 있는가? 전쟁을 초래한 조정에 비해 강에 의존해 연명하는 뱃사공은 도대체 무슨 죄가 있는가? 수탈은 할 뿐 재분배는 없는 조정에 대해 백성은 무슨 아쉬움이 있는가? 실제로 그 당시는 단일한 민족의식과 국가의식이 불분명한 상태일 수도 있다. 그러나 김훈은 어떠한 사정에 놓인 백성일지라도 국가를 배반하는 행위는 응징해야 한다는 국가주의를 풍긴다. 불편하다. 뱃사공은 자신의 불충한 속내를 털어놓은 놓은 이유로, 아무런 대가없이 전날 왕가 행렬을 건네주고, 다음날 벼슬아치를 건네주고도 죽임을 당한 것이다. 살려고 하는 자에게 살 길을 마련해 주지는 못할 망정, 미리 배반을 막기 위해 처단하는 것은 병영국가의 단면이다. 하긴 조선이란 국가가 왕족과 정승의 나라였지 진정한 백성의 나라는 아니긴 했다. 그런데 백성을 말먹이를 위한 일개 지푸라기 정도로 보는 봉건적 시대의식에서 갇혀 있는 것은 또다른 문제다. 불편하고 위험하다. 김훈이 이런 시대의식에서 자유롭다면, 뱃사공을 최대한 설득하거나 이것도 안되면 남한산성으로 강제로라도 끌고 가는 식으로 처리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어린 딸이 강 저편에서 기다리고 있다며 예판의 권유를 마다한 뱃사공을 기습처단하는 것으로 김훈은 '처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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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법비판과 가라타니 고진

문학 Literatur 2009. 9. 18. 17:15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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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당의 ‘방법비판’과 가라타니 고진
  글쓴이 : 최광은     날짜 : 09-04-14 12:54     조회 : 1465    
   방법비판과정치적맥락주의.odt (35.7K), Down : 17, 2009-04-14 12:58:21

 

 

사회당의 ‘방법비판’과 가라타니 고진

  

2001년 청년진보당이 사회당이 될 무렵, <방법비판과 정치적 맥락주의>(금민/김태호)가 사회당 당보 특별호를 통해 발표되었습니다. 당시 사람들의 반응은 한결 같았습니다. “어렵다!” 예, 어려웠습니다. 20세기의 무수한 신조류 사상가들이 죄다 거명되고, <자본>을 꾸역꾸역 읽기에 급급했던 많은 사람들에게 <자본>에 대한 새로운 독법을 설명하니 어렵지 않을 순 없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외부의 반응도 썰렁했습니다. 단지 자율평론의 조정환 님 정도가 비판적 주석을 달았을 뿐입니다. 

여기서 방법비판을 다시 자세하고 친절하게 설명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핵심만 간략하게 되짚어보려 합니다. 가라타니 고진과 겹쳐 읽는 것을 통해서. 아무튼 이 “방법비판은 칸트․헤겔․맑스를 넘어서고자 하는 시도이며, 동시에 이들을 넘어서고자 했던 모든 신조류들이 왜 그리고 어떻게 이들 대가들을 넘어서지 못했는가를 밝혀보고자 하는 작업”(위의 글)입니다. 그렇습니다. 방법비판은 이처럼 원대한 작업이며, 커다란 나침반으로 제시된 것이었습니다. 때문에 그것이 희미하게 잊혀지려 할 무렵 다시 상기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드는 것도 나름 의미가 있을 겁니다. 

좀 길지만, 마지막 결론에 해당하는 부분이므로 다시 인용을 해봅니다. 

“Ⅳ. 방법비판과 정치적 맥락주의 

방법비판은 대상에 대한 서술적 비판의 맹점(盲點)을 지적하는 것이고, 그러한 비판의 불가능성의 조건을 확증하는 일이다. 이 확증은 그러나 서술 자체의 가능성을 부정하지 않는다. 단지 그와 같은 서술, 가능한 서술은 필연적으로 물신적일 수밖에 없고, 방법비판적 단서가 없이는 언제든지 현실옹호적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알자는 것이다. 그러나 대상에 대한 서술이 요구되는 한에서 물신적 서술은 회피될 필요도 없으며 극복될 성격의 것도 아니다. 대상에 대한 서술을 통하여 대상을 비판하고자 하는 시도에는 서구 형이상학의 오래된 전통 - 아리스토텔레스주의적 전통 - 이 좌파적․전복적 형태로 재현된다고 본다. 그래서 방법비판은 철저히 탈형이상학적이고 반(反)실체주의적이다. 그것은 대상에 대한 서술을 비판적으로 전도시키는, 이론의 외재적 장치들 - 형이상학적 전제들 -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것은 신(神)을 통한 현실비판을 거부한다. 방법비판은 한편으로 사회의 주어진 조건하에서 그 선험적 형식원리들이 내재화하는 필연성을 인식하며, 그래서 이 원리들에 반대하는 운동들도 내재화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온갖 종류의 내재성의 철학 - 20세기 좌파의 철학 - 이 간과한 문제, 모든 내재화는 현실옹호적으로 끝난다는 문제를 망각하지 않는다. 모든 비판적 서술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방법비판은 가능하다. 

마지막으로 이와 같은 입장들로부터 나오는 실천철학적 결론을 - 물론 성급한 시도이겠지만 - 통속적으로 써 보도록 하겠다. 그것은 정치적․실천적 맥락주의로 표현될 수 있다. 방법비판적 실천은, 어떠한 실천도 주어진 구체적 맥락을 벗어날 수 없다는 점으로부터 출발한다. 맥락을 떠나서는 비판적 실천이 정의될 수 없다. 그러나 방법비판은 아울러 이렇게 정의된 ‘비판적 실천’이 보편적 비판으로 위장하는 것, 바꾸어 말하자면 서술 불가능한 “보편적 비판”이 내재화하는 것을 부단히 경계하며, 언제나 “현실의 상태를 극복해 가는 운동” 그 자체이고자 한다. 방법비판은 그래서 “있는 것”(현실의 맥락)과 “없는 것”(현실의 효력논리의 수준에서는 서술 불가능한 대안사회) 사이의 긴장이며, 실천적․반성적 균형(equilibrium)이다. 방법비판적 실천은 현실의 맥락에서 출발하고, 현실의 운동 속에서 대안사회를 본다. 대안사회는 그래서 결코 역사의 목적론적 도달점이 아니며 현실 속에 부단히 생성되고 정정되어 가는 과정이다. 방법비판은 대안사회를 공간적으로 내재화하려는 시도(일국 사회주의)도, 또는 시간적으로 내재화(歷史內化)하려는 시도 - 목적론적 시간기획에 입각한 과학적 이행이론 - 도 철저히 거부한다. 방법비판은 한편으로 부단히 이러한 내재화를 시도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이루어진 내재화를 재파괴한다.”(위의 글, 강조는 인용자) 

강조한 부분을 굳이 다시 설명할 필요는 없겠습니다. 이 부분을 잘 기억하면서 역시 길지만, 가라타니 고진의 이야기를 들어봅시다. 

“역사의 목적이라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그것은 가상입니다. 다만 우리가 살아가기 위해서는 불가결한 초월론적 가상입니다. 칸트가 말하는 역사의 이념이란 그와 같은 것입니다. 그러기에 칸트가 말하는 이념을 역사에 의미나 목적이 없다, 그런 것은 가상이라는 이유로 배척할 수는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부정하는 이념이란 ‘구성적 이념’입니다. 역사의 의미를 조소하는 포스트모더니스트의 대부분은 일찍이 ‘구성적 이념’을 믿었던 마르크스∙레닌주의자이고, 그와 같은 이념에 상처를 입고 시니시즘이나 니힐리즘으로 도피한 것입니다. 

그러나 세계자본주의가 야기한 비참한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로서는 사회주의는 환상이다. ‘거대서사’에 지나지 않는다고 할하는 것으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현실적으로 1980년 이후 세계자본주의의 중심부에서 포스트모던적인 지식인이 이념을 조소하고 있는 사이, 주변부나 저변부에서는 종교적 원리주의가 확대되었습니다. 적어도 거기에는 자본주의와 국가를 넘어서려는 지향과 실천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것은 ‘신의 나라’를 실현하기는커녕, 성직자=교회국가의 지배로 귀착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따라서 규제적 이념과 구성적 이념의 구별이 필요한 것입니다. 규제적 이념은 결코 달성되지 않기 때문에 끊임없는 현상에 대한 비판으로서 계속 존재합니다.”(가라타니 고진, <세계공화국으로>, 도서출판 b, 2007, 188쪽. 강조는 인용자) 

방법비판의 내용과 가라타니 고진이 말하는 것 사이에 결론적인 유사성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물론 전혀 다른 맥락에서 서로 접근하지만 말입니다. 그리고 가라타니 고진은 칸트에 많이 기대고 있습니다. 방법비판이 비판적으로 의거하고 있는 지적유산 가운데 하나에는 “맑스에 대한 최근의 칸트주의적 독해들 - 특히 프랑크 쿠네(Frank Kuhne)”가 들어갑니다. 

방법비판은 매우 강한 어조로 일국 사회주의와 목적론적 시간기획에 따른 이행이론을 거부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여기서 ‘거부’의 의미를 잘못 이해해선 안 됩니다. 여러 선택지가 가능한데, 그 중 이러저러한 것을 거부한다는 의미로 읽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 여기서의 ‘거부’는 ‘불가능성’의 다른 표현에 가깝습니다. 

가라타니 고진은 이러한 ‘불가능성’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계공화국으로>에서 논증합니다. 일국 사회주의의 불가능성은 20세기 초의 맑스주의자들도 상당수 공감했던 것이긴 하지만, 곧이은 현실 사회주의에서는 일국 사회주의의 가능성이 적극적으로 웅변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의 지배 이데올로기가 되었습니다. 

가라타니 고진은 관계 속에서의 국가 형성에 주목합니다. 국가를 형이상학적으로 파악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국가 간 관계라는 현실의 맥락 속에서 파악하면, 왜 국가가 내부적인 부정만으로 지양될 수 없는 것인지를 알 수 있다고 말합니다. 물론 단 하나의 가능성은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내부의 부정이 전 세계에서 일거에 일어난다면 말입니다. 그러나 현실에선 불가능한 일입니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나 ‘공산주의’의 단계를 설정하는 이행이론도 목적론적 시간기획인 한에 있어서 문제가 될 수밖에 없으며, 국가 간 관계와 경제적 제 관계의 세계성을 사상하고서 이를 받아들이는 것은 현실과 유리된 형이상학적 덫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거대서사’를 떠받쳐 주었던 목적론과 구성적 이념이 현실에서 패배하고, 이처럼 철학적, 사상적으로도 유죄를 선고받자 불편한 심기를 많이 표현했습니다. 시니시즘과 니힐리즘으로 빠져들어가는 사람들도 생겨났습니다. 그러나 “방법비판은 한편으로 부단히 이러한 내재화를 시도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이루어진 내재화를 재파괴”하는 것입니다. 

방법비판은 불가능성의 논증이 아닙니다. “재파괴”가 필요하다는 규제적 원리입니다. 현실을 정확히 보고, 현실 속에서 비판의 무기를 찾으며, 현실을 지양해 나가는 긴 여정에서 나침반의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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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A의 협동조합 7대 원칙

문학 Literatur 2009. 9. 18. 11:50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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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발적이고 개방된 조합원제도(Voluntary and Open Membership)

조합원에 의한 민주적 관리(Democratic Member Control)

조합원의 경제적 참여(Member Economic Participation)

자율과 독립(Autonomy and Independence)

교육, 훈련 및 정보제공(Education, Training and Information)

협동조합간 협동(Co-operation Among Co-operatives)

지역사회에 대한 기여(Concern for Community)


*ICA : 국제협동조합 동맹(International Co-operative Alli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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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약국과 뉴타운

단상 Vorstelltung 2009. 9. 16. 10:02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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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KBS 주말 드라마인 '솔약국집 사람들'의 시청률이 50%대에 육박하는 정점을 찍었다.  나도 몇개월 전부터 별일이 없으면 보고 있다. 드라마 자체에 대해서 별 할말은 없고(그냥 드라마가 그렇듯이 재미있다는 정도) 드라마의 주무대인 혜화동의 오래된 주택가를 보면서, 저건 언제쯤 철거될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이런 높은 시청률은 잃어버린, 그리고 잃어버릴 저층 주택과 비좁은 골목길에 대한 사람들의 향수와 아쉬움을 반영하는 면도 있다. 드라마에 종종 등장하는 성북동이나 평창동의 부유한 저층 주택가는 마치 봉건영주의 성처럼 위압적이라 뉴타운이나 재개발의 불도저가 침탈할 가능성이 없지만, 서민들이 사는 주택가는  대형 건설사와 한나라 정권이 호시탐탐 노리는 개발 특구다. 서울을 헌납하겠다던 전직시장의 포부답게 무참히 개발의 열풍에 쓸려가는 서울의 풍경은 그래서 희화된 형태의 드라마 속에서 임박할 향수로 소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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