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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된 자는 그가 원하는ㅣ것을 배울 것이다. 어쩌면 아무것도 배우지 않을 수도 있다. 그는 자신이 배울 수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이 기술을 가지고 만들어낸 모든 생산물에는 똑같은 지능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간은 항상 다른 인간의 말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코토의 인쇄공에게는 정신이 박약한 아들이 한 명 있었다. 사람들은 그 아이를 데리고선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체념했다. 자코토는 아이에게 히브리어를 가르쳤다. 그 뒤에 아이는 훌륭한 석판공이 되었다. 물론 히브리어는 그에게 아무 짝에도 쓸모없었다. 재능을 더 타고났고, 더 지도받은 지능들이 영원히 알지 못할 것-그것은 히브리어에 속하는 것이 아니었다-을 알게 된 것 말고는.
  상황은 명확했다. 그것은 인민을 지도하기 위한 방법이 아니었다. 그것은 빈자들에게 알려야 할 혜택이었다. 빈자들은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다고 말이다. 그것을 알리는 것으로 충분했다. 자코토는 그 일에 헌신하기로 마음먹었다. 그 ㅣ 는 우리가 모르는 것을 가르칠 수 있다고, 가난하고 무지한 가장도 스스로 해방되기만 하면 설명해주는 어떤 스승의 도움 없이도 자기 아이들을 교육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는 이 보편적 가르침의 수단을 일러주었다. 무언가를 배우라, 그리고 그것을 이 ㅣ 원리, 즉 모든 인간은 평등한 지능을 갖는다는 원리에 따라 나머지 모든 것과 연결하라.
  루뱅에서, 브뤼셀에서 그리고 헤이그에서 사람들은 감동했다...리우 데 자네이루까지 소문이 퍼졌다. 몇 년 동안 논쟁이 거세게 일었다. 앎의 공화국은 그 토대부터 흔들렸다.
  이 모든 것은 분별있는 사람이자 학자요, 덕망 있는 가장이었던 자가 네덜란드어를 알지 못해 미치광이가 되는 바람에 벌어진 일이다."

자크 랑시에르, 『무지한 스승』 양창렬 역(궁리, 2008), p.39-42.
원본 : Jacques Rancière,  Le Maître Ignorant . Cinq leçons sur l'émancipation intellectuelle, Librairie Arthème Fayard,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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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변호란 것이 원래 법률상으로는 허용되고 있지 않고 다만 묵인되고 있는데, 적어도 묵인으로 해당 법조문을 해석해야 한다는 것에조차 논쟁이 있는 형편이지요...제일 중요한 것은 변호사의 개인적인 연줄이며, 거기에 변호의 주요한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어떤 점에서 보면 그들은[재판소 사람들] 오히려 변호사에 의존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비밀 재판을 고집하고 있는 재판 조직의 단점이 드러나고 있는 거지요. 이들 관리들은 주민들과의 관계가 없어요. 보통의 중간급 소송에 대해선 그들은 준비가 잘 되어 있습니다. 그런 소송은 거의 자동적으로 진행되며 가끔 한 번씩 떼밀어주기만 하면 됩니다. 그렇지만 극히 간단한 사건에 대해서도 그들은 극히 힘든 사건에 처한 것만큼이나 당황합니다. 그들은 밤낮으로 계속 법에 얽매여 있어서 인간관계에 대해서는 올바른 인식을 갖고 있지 못합니다. 그러한 사건엔 그런 인식이 꼭 필요한데도 말입니다. 그럴 때면 그들은 조언을 구하기 위해서 변호사에게 오는데 그들 뒤에는 사환이 평소에는 어디까지나 비밀로 해두었던 서류를 들고 따라옵니다...재판사건이란 어디서 왔는지 알지도 못한 채 그들 시야에 나타났다가 어디로 가는지 알지도 못한 채 계속 진행되어 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개별적인 소송 단계, 마지막 판결 그리고 그 판결 이유 등을 연구해서 알아낼 수 있는 교훈 따위는 이들 관리들에게 주어질 수 없습니다. 그들은 법으로 자기네에게 한정되어 있는 소송 부분만 취급할 뿐이고, 그 이상의 일, 그러니까 자기네 일의 결과에 대해서는 거의 소송이 끝날 때까지 대개 피고와 연결되어 있는 변호사보다도 적게 알고 있습니다...아주 단순한 사람까지도 소송에 발을 들여놓기가 무섭게 개선책을 생각하기 시작하고 다른 데다 쓰면 훨씬 낫게 쓸 수 있는 시간과 정력을 소송에 낭비해버리기가 일쑤입니다...비록 개별적인 일들을 개선할 수 있다고 해도-그렇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미친 짓입니다-그런 것은 기껏해야 나중에 다른 피고인들에게 약간 도움은 될지언정 당사자는 항상 복수만 생각하고 있는 관리들의 특별한 주의를 끌게 되어 너무나 큰 피해를 입게 되는 것입니다...이 거대한 법원 조직은 어느 정도는 항상 떠 있는 상태라는 것...한편 그 커다란 조직 자체는 그런 사소한 장애에 대해서는 다른 곳에서-전체가 연결되어 있습니다-보완을 하고, 더 잘 결속되든가 더 사악하게 되는 일은 없다 하더라도 본래대로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방해하지 말고 변호사에게 일을 맡겨 두십시오. 

카프카, <소송>, 이주동 역(솔, 2006), 123-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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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법비판과 가라타니 고진

문학 Literatur 2009. 9. 18. 17:15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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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당의 ‘방법비판’과 가라타니 고진
  글쓴이 : 최광은     날짜 : 09-04-14 12:54     조회 : 1465    
   방법비판과정치적맥락주의.odt (35.7K), Down : 17, 2009-04-14 12:58:21

 

 

사회당의 ‘방법비판’과 가라타니 고진

  

2001년 청년진보당이 사회당이 될 무렵, <방법비판과 정치적 맥락주의>(금민/김태호)가 사회당 당보 특별호를 통해 발표되었습니다. 당시 사람들의 반응은 한결 같았습니다. “어렵다!” 예, 어려웠습니다. 20세기의 무수한 신조류 사상가들이 죄다 거명되고, <자본>을 꾸역꾸역 읽기에 급급했던 많은 사람들에게 <자본>에 대한 새로운 독법을 설명하니 어렵지 않을 순 없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외부의 반응도 썰렁했습니다. 단지 자율평론의 조정환 님 정도가 비판적 주석을 달았을 뿐입니다. 

여기서 방법비판을 다시 자세하고 친절하게 설명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핵심만 간략하게 되짚어보려 합니다. 가라타니 고진과 겹쳐 읽는 것을 통해서. 아무튼 이 “방법비판은 칸트․헤겔․맑스를 넘어서고자 하는 시도이며, 동시에 이들을 넘어서고자 했던 모든 신조류들이 왜 그리고 어떻게 이들 대가들을 넘어서지 못했는가를 밝혀보고자 하는 작업”(위의 글)입니다. 그렇습니다. 방법비판은 이처럼 원대한 작업이며, 커다란 나침반으로 제시된 것이었습니다. 때문에 그것이 희미하게 잊혀지려 할 무렵 다시 상기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드는 것도 나름 의미가 있을 겁니다. 

좀 길지만, 마지막 결론에 해당하는 부분이므로 다시 인용을 해봅니다. 

“Ⅳ. 방법비판과 정치적 맥락주의 

방법비판은 대상에 대한 서술적 비판의 맹점(盲點)을 지적하는 것이고, 그러한 비판의 불가능성의 조건을 확증하는 일이다. 이 확증은 그러나 서술 자체의 가능성을 부정하지 않는다. 단지 그와 같은 서술, 가능한 서술은 필연적으로 물신적일 수밖에 없고, 방법비판적 단서가 없이는 언제든지 현실옹호적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알자는 것이다. 그러나 대상에 대한 서술이 요구되는 한에서 물신적 서술은 회피될 필요도 없으며 극복될 성격의 것도 아니다. 대상에 대한 서술을 통하여 대상을 비판하고자 하는 시도에는 서구 형이상학의 오래된 전통 - 아리스토텔레스주의적 전통 - 이 좌파적․전복적 형태로 재현된다고 본다. 그래서 방법비판은 철저히 탈형이상학적이고 반(反)실체주의적이다. 그것은 대상에 대한 서술을 비판적으로 전도시키는, 이론의 외재적 장치들 - 형이상학적 전제들 -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것은 신(神)을 통한 현실비판을 거부한다. 방법비판은 한편으로 사회의 주어진 조건하에서 그 선험적 형식원리들이 내재화하는 필연성을 인식하며, 그래서 이 원리들에 반대하는 운동들도 내재화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온갖 종류의 내재성의 철학 - 20세기 좌파의 철학 - 이 간과한 문제, 모든 내재화는 현실옹호적으로 끝난다는 문제를 망각하지 않는다. 모든 비판적 서술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방법비판은 가능하다. 

마지막으로 이와 같은 입장들로부터 나오는 실천철학적 결론을 - 물론 성급한 시도이겠지만 - 통속적으로 써 보도록 하겠다. 그것은 정치적․실천적 맥락주의로 표현될 수 있다. 방법비판적 실천은, 어떠한 실천도 주어진 구체적 맥락을 벗어날 수 없다는 점으로부터 출발한다. 맥락을 떠나서는 비판적 실천이 정의될 수 없다. 그러나 방법비판은 아울러 이렇게 정의된 ‘비판적 실천’이 보편적 비판으로 위장하는 것, 바꾸어 말하자면 서술 불가능한 “보편적 비판”이 내재화하는 것을 부단히 경계하며, 언제나 “현실의 상태를 극복해 가는 운동” 그 자체이고자 한다. 방법비판은 그래서 “있는 것”(현실의 맥락)과 “없는 것”(현실의 효력논리의 수준에서는 서술 불가능한 대안사회) 사이의 긴장이며, 실천적․반성적 균형(equilibrium)이다. 방법비판적 실천은 현실의 맥락에서 출발하고, 현실의 운동 속에서 대안사회를 본다. 대안사회는 그래서 결코 역사의 목적론적 도달점이 아니며 현실 속에 부단히 생성되고 정정되어 가는 과정이다. 방법비판은 대안사회를 공간적으로 내재화하려는 시도(일국 사회주의)도, 또는 시간적으로 내재화(歷史內化)하려는 시도 - 목적론적 시간기획에 입각한 과학적 이행이론 - 도 철저히 거부한다. 방법비판은 한편으로 부단히 이러한 내재화를 시도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이루어진 내재화를 재파괴한다.”(위의 글, 강조는 인용자) 

강조한 부분을 굳이 다시 설명할 필요는 없겠습니다. 이 부분을 잘 기억하면서 역시 길지만, 가라타니 고진의 이야기를 들어봅시다. 

“역사의 목적이라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그것은 가상입니다. 다만 우리가 살아가기 위해서는 불가결한 초월론적 가상입니다. 칸트가 말하는 역사의 이념이란 그와 같은 것입니다. 그러기에 칸트가 말하는 이념을 역사에 의미나 목적이 없다, 그런 것은 가상이라는 이유로 배척할 수는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부정하는 이념이란 ‘구성적 이념’입니다. 역사의 의미를 조소하는 포스트모더니스트의 대부분은 일찍이 ‘구성적 이념’을 믿었던 마르크스∙레닌주의자이고, 그와 같은 이념에 상처를 입고 시니시즘이나 니힐리즘으로 도피한 것입니다. 

그러나 세계자본주의가 야기한 비참한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로서는 사회주의는 환상이다. ‘거대서사’에 지나지 않는다고 할하는 것으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현실적으로 1980년 이후 세계자본주의의 중심부에서 포스트모던적인 지식인이 이념을 조소하고 있는 사이, 주변부나 저변부에서는 종교적 원리주의가 확대되었습니다. 적어도 거기에는 자본주의와 국가를 넘어서려는 지향과 실천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것은 ‘신의 나라’를 실현하기는커녕, 성직자=교회국가의 지배로 귀착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따라서 규제적 이념과 구성적 이념의 구별이 필요한 것입니다. 규제적 이념은 결코 달성되지 않기 때문에 끊임없는 현상에 대한 비판으로서 계속 존재합니다.”(가라타니 고진, <세계공화국으로>, 도서출판 b, 2007, 188쪽. 강조는 인용자) 

방법비판의 내용과 가라타니 고진이 말하는 것 사이에 결론적인 유사성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물론 전혀 다른 맥락에서 서로 접근하지만 말입니다. 그리고 가라타니 고진은 칸트에 많이 기대고 있습니다. 방법비판이 비판적으로 의거하고 있는 지적유산 가운데 하나에는 “맑스에 대한 최근의 칸트주의적 독해들 - 특히 프랑크 쿠네(Frank Kuhne)”가 들어갑니다. 

방법비판은 매우 강한 어조로 일국 사회주의와 목적론적 시간기획에 따른 이행이론을 거부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여기서 ‘거부’의 의미를 잘못 이해해선 안 됩니다. 여러 선택지가 가능한데, 그 중 이러저러한 것을 거부한다는 의미로 읽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 여기서의 ‘거부’는 ‘불가능성’의 다른 표현에 가깝습니다. 

가라타니 고진은 이러한 ‘불가능성’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계공화국으로>에서 논증합니다. 일국 사회주의의 불가능성은 20세기 초의 맑스주의자들도 상당수 공감했던 것이긴 하지만, 곧이은 현실 사회주의에서는 일국 사회주의의 가능성이 적극적으로 웅변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의 지배 이데올로기가 되었습니다. 

가라타니 고진은 관계 속에서의 국가 형성에 주목합니다. 국가를 형이상학적으로 파악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국가 간 관계라는 현실의 맥락 속에서 파악하면, 왜 국가가 내부적인 부정만으로 지양될 수 없는 것인지를 알 수 있다고 말합니다. 물론 단 하나의 가능성은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내부의 부정이 전 세계에서 일거에 일어난다면 말입니다. 그러나 현실에선 불가능한 일입니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나 ‘공산주의’의 단계를 설정하는 이행이론도 목적론적 시간기획인 한에 있어서 문제가 될 수밖에 없으며, 국가 간 관계와 경제적 제 관계의 세계성을 사상하고서 이를 받아들이는 것은 현실과 유리된 형이상학적 덫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거대서사’를 떠받쳐 주었던 목적론과 구성적 이념이 현실에서 패배하고, 이처럼 철학적, 사상적으로도 유죄를 선고받자 불편한 심기를 많이 표현했습니다. 시니시즘과 니힐리즘으로 빠져들어가는 사람들도 생겨났습니다. 그러나 “방법비판은 한편으로 부단히 이러한 내재화를 시도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이루어진 내재화를 재파괴”하는 것입니다. 

방법비판은 불가능성의 논증이 아닙니다. “재파괴”가 필요하다는 규제적 원리입니다. 현실을 정확히 보고, 현실 속에서 비판의 무기를 찾으며, 현실을 지양해 나가는 긴 여정에서 나침반의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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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A의 협동조합 7대 원칙

문학 Literatur 2009. 9. 18. 11:50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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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발적이고 개방된 조합원제도(Voluntary and Open Membership)

조합원에 의한 민주적 관리(Democratic Member Control)

조합원의 경제적 참여(Member Economic Participation)

자율과 독립(Autonomy and Independence)

교육, 훈련 및 정보제공(Education, Training and Information)

협동조합간 협동(Co-operation Among Co-operatives)

지역사회에 대한 기여(Concern for Community)


*ICA : 국제협동조합 동맹(International Co-operative Alli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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