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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활한 미국 대륙에 산재해 있는 어느 모텔 중 하나의 안내문은 영화 『리빙 라스베가스』에서 절망의 커플이 모텔 주인에게 쫓겨나는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우리는 다시 다음과 같이 안내문이 박힌 자상한 여관들을 전전했다. <여러분이 이곳에서 편히 지내기 바랍니다. 도착하는 즉시 모든 장비를 갖추어드리지요. 당신의 운전면허증이 이곳에 기록됩니다. 온수를 아껴 씁시다. 우리에게는 무례한 손님을 경고없이 내보낼 권리가 있습니다. 화장실 변기에 어떤 오물도 버리지 마십시오. 감사합니다. 다시 들러 주시기를. 관리인. 추신. 우리는 손님들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사람들이라고 믿습니다."

『롤리타』, p.285.

점점 파멸로 치닫는 험버트는 롤리타의 어머니에게서 받은 권총을 만지작 거린다.

"호두색 체크무늬에 푸른색으로 마무리 칠이 된 총신. 나는 그것을 고 해럴그 헤이즈한테서 물려받았다. 그는 1935년도에 만즐어진 카탈로그와 함께 물려주었는데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장난스러운 글귀가 적혀 있었다. <집 안이나 차 안에서, 그리고 사람에게 사용하기에 적당함>"

상동, p.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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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주의 선언

문학 Literatur 2010. 3. 30. 22:17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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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주의 운동 선언 (생태론과 정치 - 1975년)파라노이드

 


생태주의 운동(에콜로지스트) 선언


앙드레 고르(Andre Gorz)1


번역: 유인환


1. 생태학적 리얼리즘


 성장을 추구하는 자본주의는 생명력을 잃었다. 이와 형제처럼 닮은 성장을 추구하는 사회주의도 우리의 미래가 될 수 없으며, 오히려 우리의 왜곡된 과거의 모습을 눈앞에 보여주고 있다. 마르크스주의는 분석의 도구로서는 변함없이 유일무이한 것이지만, 그 예언적 가치는 상실되었다. 노동자 계급에 채워진 족쇄를 끊어버리고 그들에게 보편적 자유를 가져다줄 것으로 기대되었던 생산력의 발전은 이제 근로자로부터 마지막으로 남은 주권의 하나까지 박탈하고, 육체노동과 정신노동 사이의 분열을 결정적인 것으로 만들며, 생산자가 지닌 권력의 물질적/실존적 기초를 파괴해 버렸다. 만인에게 풍부함과 만족감을 보증해야 할 경제성장은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 성공하기에 앞서 욕구를 증대시켰고, 단지 경제적 문제 만이라고는 할 수 없는 일련의 문제에 있어서 막다른 골목에 봉착해 있다. 그리고 성장을 추구하는 자본주의가 위기에 처해 있는 것은 단지 그것이 자본주의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성장에 전념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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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코프 : 말장난의 귀재

문학 Literatur 2010. 3. 29. 22:32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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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린이와 추잡한 관계를 가진 정신이상 성 범죄자가 아니다. 강간을 한 자는 찰리 홈즈다. 나는 그 치유자다-치한(the rapist)과 치유자(therapist)라는 말은 글자로는 큰 차이가 없다...ㅣ...나는 인간의 법(act)이 인간의 성교(act)와 동음이의어라는 사실을 개탄한다. 이렇듯 하나의 단어가 서로 다른 의미를 갖게 한 것은 지퍼를 꼭 잠그고 있는 속물들에 대한 신의 복수이다."
                                                                                                                                       『롤리타』p.204-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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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마와 군인

문학 Literatur 2010. 3. 28. 12:52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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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롤리타』(민음사, 2008 개정판 25쇄, 권택영 옮김)를 읽고 있다. 아주 유명한 작품으로 회자되기에 골랐는데, 미성년자와의 연애행각을 다루는 내용인줄은 몰랐다. 도덕을 비켜가려는 추동력이 문학의 핵심동력이라면, 문학에는 어느 정도 범죄성도  있을 것이다. 나보코프는 이렇게 말한다. "여러분, 멋ㅣ진 산문체를 얻으려면 언제나 살인자에게 오시오."(p.15-16)  정상과 병리 사이에서 상상적인 줄다리기를 하는 문학은 정상을 조롱하는 악의에 찬 장난이 아닐까?

"배심원이신 신사숙녀 여러분, 어린아이와 성관계가 아니고 그저 가슴이 뛰고 달콤한 신음이 나오는 정도의 육체적 접촉밖에 못한 남자는 무해하고, 무력하고, 수동적이고, 수줍은 이방인들입니다. 그들은 그저 공동체 내에서 실제로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고, 그저 이탈에 불과한 것, 그저 조금 뜨겁고 축축하고 은밀한 탈선을 경찰이나 사회가 호된 질책을 하지 않고 추구할 수 있게만 해준신다면 더 바랄 게 없답니다. 우리는 색마가 아닙니다. 우리는 충실한 군인만큼 강간을 못합니다. 우리는 온건하고 불행하고 개의 눈만큼 양순한 신사들입니다. 어른들이 있으면 욕망을 충분히 조정할 수 있지만, 님펫 하나를 그저 한번 만질 수 있다면 몇 년씩이라도 기다릴 수 있지요. 강조하지만 우린 살인자의 기질을 갖고 있지 못합니다. 시인은 파리 하ㅣ 나도 죽이지 못하니까요."(p.12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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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벌판으로 달리는 회전목마

문학 Literatur 2010. 3. 5. 08:57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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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나가는 육아서의 첫장 제목은 '육아는 과학이다'로 되어있다. 침대광고를 패러디한 이 건조한 제목은 인간이 과학의 전형적인 연구대상임을 드러낸다. 인간이 신경망을 갖춘 복잡한 기계로 환원될 수 있다면, 이 동물의 미시적 체내 어딘가에 의식의 생성소가 있을까? 전철에서 잠시 눈을 붙이며 생각이 난다. 의식이 물질이라면, 신체의 죽음은 마치 컴퓨터의 전원이 나가는 것처럼 의식을 오프시키는가? 이 물음에 재래적으로 매달려 온 것이 종교이며, 그 극단은 불교이다. 

"그애는 다른 사람들과 있는 것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의 피붙이였고 오래전부터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그는 어리지만 고요한 눈에서 순간적으로 나오는 영원한 우정의 시선을 맞아들인다...나중에 봄이 되었을 때, 아이는 혼자 회전 목마 위에 앉ㅣ 아 있었다. 그 목마의 가장자리에는 모래톱에서처럼 하얀 거품이 일었다. 이제 막 비가 그쳤다. 한번 밀자 회전 목마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이는 남자와 멀리 떨어지자 잠시 그를 올려다보고는 목마가 돌자 곧 잊어버리고 다른 것에 더 이상 눈을 주지 않았다. 남자는 나중에 그 순간을 떠올림으로써 자신의 어린 시절의 한 순간을 회상했다. 그때 그는 좁은 방에 어머니와 함께 있기는 했지만 가슴이 미어지는 듯한, 마치 하늘에까지 닿도록 소리지르고픈 먼 거리감을 느꼈었다. 그곳에 있던 어머니가 바로 이곳에 있는 나와 같지 않겠는가? 열중해서 돌고 있는 아이를 태운 회전 목마를 보고 있는 시선은 그때와는 정반대의 시선인 것이다. 그의 어린 딸이 처음으로 거기 서 있는 아버지로부터 독립된 독자적인 존재로 보인 것이다. 또한 그런 자유를 누리며 강해져야지! 두 사람 사이의 공간에는 왠지 득의양양함 같은 것이 빛났다...소망한다는 것은 가능할 것이다. 또한 소망하는 것에 시한(時限)을 두어야 한다는 의식도 가능하리라. 근데 그런 의식은 그들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생각할 수 없었던 예전과는 다르게 고통스럽게 느껴졌다." 

페터 한트케, <아이 이야기>Kindergeschichte in 『소망없는 불행 Wunschloses Unglück 윤용호 역(민음사, 2008), p.105-106.

*이 인용과 유사한 분위기의 시가 황지우의 첫 시집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에 있다. 여기서 시인은 다섯살 난 딸아이에게 허접한 회전목마를 태워주며 간도까지 달리는 상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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