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 사회인 일본이 경제력 규모에서 한국에 추월당했다는 식의 이야기가 근래 간혹 보인다. 아마도 최저임금에서 이런 징후가 분명해진 것 같은데, 아베 정권 시기부터 지속된 엔저는 더이상 일본이 국제무대로 치고 나갈 신예의 주력 상품이 없음을 보여준다. 이 틈새를 파고 든 것은 반도체로 무장한 대만과 한국이다. 특히 한국의 경우, 조선과 자동차에서 볼 수 있듯이 중공업 기반의 완성품 제조 강국이다. 한국의 이러한 전략을 극대화하고 확장시킨 것은 중국이다. 한낱 볼트 류에서 장난감, 핸드폰, 김치 등 모든 수요가 미치는 상품에 중국은 여전히 세계의 공장이다. 하지만 잘 알려져 있다시피 정밀 기술이 집약된 제조물은 여전히 일본과 독일과 같은 선진국에 의존해 있다. 건설현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경광봉이나 케이블 타이 집기와 같은 경량 소모품은 중국산이지만 계측장비와 터미널 압착기와 같은 정밀 제품은 일본과 독일, 미국산이 강세다. 극자외선으로 반도체 회로를 만들기 위한 노광 원천기술은 독일과 네덜란드에 있다. 베끼고 흉내낼 수 없는 기술의 원천성은 오랜 투자와 연구의 산물인데, 속도전으로 이를 따라잡기란 쉽지않다.
요즘은 한풀 꺽이긴 했지만 반도체가 국가의 효도상품이라 반도체 학과 육성에 모든 교육역량을 집중시키라는 윤설열 정부의 교육정책방향은 저러한 속도전의 또 다른 모습이다. 물리, 화학, 심지어 생물학과 같은 기초 학문에 대한 고려없이 일단 최적의 반도체를 찍어내고 보자는 발상은 인문학과 사회과학을 제품설명서 작성과 마케팅에나 적합한 쓸모없는 학문으로 취급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학문의 기초와 다양성이 상실된 채 획일화된 산업구도에 맞춘 교육정책은 산업정책과 다름없다.
이런 점에서 일본이 아무리 우리에게는 넘어서야할 나라로 각인될지라도, 그리고 비록 정치적으로는 후진적일지 몰라도 이 국가가 산업과 교육에서 다져놓은 단단한 지반은 후발국가들이 속도전으로 쉽사리 추격하기 힘든 선상에 있다. 아무리 고령화사회라도 일단 국가의 기본요소라고 할 수 있는 토착 인구 1억 2천만명대가 유지되면서 고르게 발전된 일본의 도시들은 수도권에 전인구의 절반이 몰린 한국과는 대비된다. 이 두 나라의 공통점이 있다면, 그리고 속도전으로 일본을 앞지르는 것을 하나 든다면 출산율 하락추세다. 인구소멸에 직면한 이 두 나라에게 현실적인 대안은 비자청을 설립해 외국인 이민을 확대하는 방안뿐이다.
세계 3위의 산유국이지만 전후 파괴된 건설 인프라의 취약으로 전기공급이 원활하지 않은 이라크에 비하면 한국은 천연자원의 혜택없이 건실한 인프라를 바탕으로 제조와 무역으로 산업경쟁력을 갖춘 선진국으로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순위만을 강조하는 선진국 진입이라는 허상 너머에 있는 삶의 다양성과 충만감은 수직계열화된 기업구조와 빽빽한 초고층 아파트 숲, 획일화된 입시교육의 장막으로 채워질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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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일본에서 주류세가 세금중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계속 떨어지는 추세라 정부에서 술소비를 진작시키려고 한다는 뉴스가 있다. 젊은 세대의 술 소비가 준 것이라기 보다는 술을 퍼마실 젊은 세대가 사라지고 있다는 현실의 반영이다. 포도주통에 둥그렇게 모여 앉은 청년들의 왁자지껄한 수다 속에 맥주잔이 부딪치는 흥겨운 술자리를 밖에서 쳐다보며 한잔 하고 싶은 노인의 심정을 노래한 장면( Bläck Fööss - Drink doch ene met 1976)이 이제 혼자서 술을 마시며 창 밖을 바라보다 이따금 지나가는 젊은 행인들의 모습 속에 지난 세월을 회상하는 노인들로 채워진 술집의 풍경으로 뒤바뀌고 있다고 보는 것은 지나친 대비일지도 모른다. 미래의 모습이 어떻게 될지는 어느 정도 예측의 시나리오를 다각도로 돌린다고 해도 상상을 빗겨가는 문제이기도 하다. 인구소멸의 시대에 새로운 세대의 인구가 정말 필요하다면 극단적으로 인간 배양의 기술이 대두될 수도 있지만, 이것도 어디까지나 영화같은 잠재적 가능성일 뿐이다.
얼마전 대학에 다니던 보육원 출신 대학생이 스스로 운명을 달리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몇 차례에 걸쳐 양부모의 선택을 받을 기회를 놓치고 결국 보육원을 나와 대학이라는 새로운 세계에서 그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추측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오래되고 기능이 낡긴 했어도 아직까지 가족이라는 제도는 개별인간을 지켜주는 방어막 이상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음을 애써 무시할 수는 없다. 하지만 가족 중심의 사회상이 미래로 갈수록 약화될 것이라는 예측에는 상당한 개연성이 있다. 물론 재벌이나 왕가처럼 자본과 권력의 세습이 필요한 특권층에게 가족은 여전히 필요할 것이다. 한편, 남성중심의 가부장제 전통이 강한 이슬람 국가들에서는 아직 인구정체가 일어나지 않고 있다.
하지만 근대 계몽기 이래 기능 중심의 사회변동에 맞춰 보편주의적 인권감각을 갖고 사회를 통한 개인의 자기실현을 이상으로 내세웠던 사회사상가들이 대두됐는데, 이들의 철학적 전통을 20세기 전반기에 비판적으로 복원시키는 학자들이 프랑크푸르트 대학의 사회연구소에 모여 들었다.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 벤야민, 마르쿠제, 에리히 프롬, 그리고 전기 하버마스 시절 만큼의 명망을 현재 이 연구소가 이어가고 있는지는 학문 밖 사람의 소견으로 알 수는 없으나 헤겔과 마르크스까지 소환하는 이들의 지적 전통은 바로 아래 사진의 아도르노 당크몰 처럼 박제된 유물은 아닐 것이다.
비EU국까지 포함하면 50개 국이나 되는 유럽의 주요 관문은 마인강이 흐르는 독일 서부의 프랑크푸르트이다. '프랑크'라는 지명은 베르됭 조약(843년 8월 11일)이 체결됨으로써 서로마제국의 후예이자 게르만족의 일파인 프랑크왕국이 지금의 프랑스와 이탈리아, 독일로 분리되는 유럽 역사의 중요한 국면을 담고 있다. 유럽에 진출한 한국기업은 물론 일찌기 일본기업들도 기반 거점을 프랑크푸르트에 마련할 정도로 이 도시는 독일을 넘어 유럽의 경제수도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교역과 금융의 중심지다. 하지만 공항과 중앙역, 일부 조성된 마천루를 제외하고 보면 이 도시의 인상은 그렇게 국제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한국, 아니 서울과 비교하면 공항이나 중앙역, 마천루는 오히려 소박해 보인다. 하지만 이 소박함에는 세월의 변화에도 무상하게 자신들의 육중한 전통을 고수하는 장중한 견고함이 서려 있다. 최근 EU에서 스마트폰 제조업체에게 잦은 기기변경에 따른 소비자의 불필요한 지출을 방지하고 기기의 재생을 원활히 하도록 자가 수리 키트를 내놓도록 유도한 것은 그러한 전통의 영향이 아닐까?
하지만 정작 이 도시의 국제성은 건물에서가 아니라 사람들에게서 드러난다. 유럽변방은 물론 아프리카와 중동, 베트남에서 온 외국인들에게 이 도시는 고된 이국생활을 지켜나갈 생활수단을 제공해 준다. 아직 내가 가보지 못한 베를린도 국제적인 도시라고는 하지만, 정치-역사적 수도는 이국자들에게 아직은 낯설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듯, 시민권 이전에 생존권이다.
생존과 관련된 문제는 푸틴의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더욱 가파르게 일어난다. 1100만 이상의 전쟁난민이 유럽 곳곳으로 피난을 갔으며 독일에서만 60만 이상의 우크라이나인들이 수용됐다. 전쟁으로 치솟는 고물가에 에너지 대란, 이번 여름 최악의 가뭄으로 강바닥까지 드러난 상황은 유럽인들의 인내심의 수위가 어디까지 일지 가늠케 한다. 유고 내전에서, 시리아 내전에서, 멀게는 아프리카의 불안전한 정정에서 떠나온 난민들로 유럽은 그야말로 북새통을 치뤘지만 우크라아나 전쟁은 이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늪에 유럽을 빠뜨리고 있다. 유럽은 자신의 전쟁을 치루고 있으며 확전에 대비를 하되 이에 대한 실질적 대응은 각자도생이다. 폴란드의 한국산 재래전 무기의 대량 구매는 이런 절박한 사정을 보여준다. 유럽의 분열은 나토의 동진보다 러시아를 흐뭇하게 할 미래다.
80년대 청소년기를 서울의 한강이북 동편 변두리에서 보낸 나에게 천호동이란 지역은 마치 서울의 머나 먼 또다른 외진 동네로 보였다. 하지만 강을 사이에 둔 그곳과 내가 살던 동네는 직선상으로 보면 그리 먼 거리는 아니었다. 현재는 아차산과 용마산을 관통하는 유료터널과 암사대교로 이 두 동네는 연결되었는데, 차량만 이용가능할 뿐이라 도보로 가려면 산을 타고 광진교로 건너야 한다. 놀이를 통해 공동의 유아적 결합감을 형성하는 것과 유사한 경험을 통해서 그 이후 20대 초반과 30대 이후 천호동은 주로 술자리를 통해서 나에게 기억과 정감을 새겨 넣었다.
오랜 벗의 초대로 설연휴 초입에 대구에 다녀왔다. 평택에서 차편을 잡는데 어려움이 있었지만 막상 대전에서는 수월했으며, 대구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덕분에 대구의 거의 절반을 돌아다니는 버스투어를 했다. 교통편은 다음과 같았다.
평택역에서 대전행 무궁화호(약 1시간 반)-대전에서 부산행 KTX 로 동대구 하차(약 40분)-동대구에서 대중교통 이용-다음날 동대구역에서 서울행 새마을호로 평택역까지(약 2시간 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