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벌(學閥)이란 말에서 ‘閥’은 문벌이나 가족, 공훈, 공로를 의미한다. 따라서 학벌의 한자 뜻을 그대로 따라 정의해 본다면 학력으로 이룩한 공적이다. 그런데 네이버 국어사전에 따르면 학벌의 의미는 좀더 현실적이다. 1.학문을 닦아서 얻게 된 사회적 지위나 신분, 또는 출신 학교의 사회적 지위나 등급. 2.출신 학교나 학파에 따라 이루어지는 파벌을 의미. 뭔가 엉성한 정의인데, 좀더 자세히 살펴 보자. 1번에서 ‘학문을 닦아서 얻게된 사회적 지위나 신분’이란 말은, 정확하게는 학문을 닦아서 부수적으로 얻을 수 있는 사회적 지위나 신분이라고 해야 한다. 왜냐하면, 과연 학문을 닦아서 사회적 지위나 특정 신분을 얻고자 하는 사람이 과연 학문을 닦는 사람인지 의심스러울 뿐더러, 학문을 닦는다고 어떤 사회적 지위나 신분을 획득한다는 것도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차라리 학위를 따서 좋은 직장을 잡아 연봉을 올리거나 교수자리를 잡는다는 식의 사회적 지위나 신분을 얻는다고 하면 더 적절할 것이다. 둘째로, ‘출신 학교의 사회적 지위나 등급’이란 말은 아주 훌륭한 현실의 반영처럼 보이지만 이상한 말이다. 출신학교가 서열화되어 있다는 것인데, 매년 중앙일보에서 부문별 대학평가를 하는 사업에 적중하는 정의다. 그렇다면 중앙일보는 대학의 서열화로 학벌을 조장하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2번의 정의는 더욱 현실적이다. ‘출신학교나 학파에 따라 이루어지는 파벌’이란 괴상한 정의는 괴상한 현실의 반영이다. 그런데 학파에 따라 의견의 대립이 분명해, 파벌을 형성할 정도라고 한다면, 이것이 꼭 바람직하지 않게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의 현실에서 이런 ‘학파’에 따른 파벌보다는 ‘출신학교’에 따른 파벌이 월등히 강하므로 이 정의도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다.
그 정의의 애매함과 불명료함에도 불구하고 학벌이란 말에는 부정적 의미가 강하다. 학문을 배우고 가르치며 교류하는 일이 학벌을 형성한다는 것은 분명 학문의 목적에 어긋나는 현상이다. 그리고 그것이 인생의 특정시기에 측정된 학습성취도로 잡은 학위가 신분의 상승과 지위의 독점을 향한 대로를 보장하는 방법이라면, 대학은 더 이상 학문을 소통하고 축적하며 발산하는 기관이 아니라 특정 지위나 신분 보장을 위한 사관학교에 불과하다. 이런 현실에서 대학들이, 학위가 없이도 성공해서 학벌사회를 비웃을 수도 있지만, 대개는 이런 현실에서 자유롭지 못한 명망가들에게 명예박사학위라도 뿌리는게 학교의 재정과 명예를 튼실히 해주는 방안일 것이고, 이것은 대학이 학문이 아닌 판촉으로 사회에 나름대로 기여하는 방안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