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벌의 야만

주장 Behauptung 2007. 8. 21. 10:16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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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벌(學閥)이란 말에서 ‘閥’은 문벌이나 가족, 공훈, 공로를 의미한다. 따라서 학벌의 한자 뜻을 그대로 따라 정의해 본다면 학력으로 이룩한 공적이다. 그런데 네이버 국어사전에 따르면 학벌의 의미는 좀더 현실적이다. 1.학문을 닦아서 얻게 된 사회적 지위나 신분, 또는 출신 학교의 사회적 지위나 등급. 2.출신 학교나 학파에 따라 이루어지는 파벌을 의미. 뭔가 엉성한 정의인데, 좀더 자세히 살펴 보자. 1번에서 ‘학문을 닦아서 얻게된 사회적 지위나 신분’이란 말은, 정확하게는 학문을 닦아서 부수적으로 얻을 수 있는 사회적 지위나 신분이라고 해야 한다. 왜냐하면, 과연 학문을 닦아서 사회적 지위나 특정 신분을 얻고자 하는 사람이 과연 학문을 닦는 사람인지 의심스러울 뿐더러, 학문을 닦는다고 어떤 사회적 지위나 신분을 획득한다는 것도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차라리 학위를 따서 좋은 직장을 잡아 연봉을 올리거나 교수자리를 잡는다는 식의 사회적 지위나 신분을 얻는다고 하면 더 적절할 것이다. 둘째로, ‘출신 학교의 사회적 지위나 등급’이란 말은 아주 훌륭한 현실의 반영처럼 보이지만 이상한 말이다. 출신학교가 서열화되어 있다는 것인데, 매년 중앙일보에서 부문별 대학평가를 하는 사업에 적중하는 정의다. 그렇다면 중앙일보는 대학의 서열화로 학벌을 조장하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2번의 정의는 더욱 현실적이다. ‘출신학교나 학파에 따라 이루어지는 파벌’이란 괴상한 정의는 괴상한 현실의 반영이다. 그런데 학파에 따라 의견의 대립이 분명해, 파벌을 형성할 정도라고 한다면, 이것이 꼭 바람직하지 않게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의 현실에서 이런 ‘학파’에 따른 파벌보다는 ‘출신학교’에 따른 파벌이 월등히 강하므로 이 정의도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다.

그 정의의 애매함과 불명료함에도 불구하고 학벌이란 말에는 부정적 의미가 강하다. 학문을 배우고 가르치며 교류하는 일이 학벌을 형성한다는 것은 분명 학문의 목적에 어긋나는 현상이다. 그리고 그것이 인생의 특정시기에 측정된 학습성취도로 잡은 학위가 신분의 상승과 지위의 독점을 향한 대로를 보장하는 방법이라면, 대학은 더 이상 학문을 소통하고 축적하며 발산하는 기관이 아니라 특정 지위나 신분 보장을 위한 사관학교에 불과하다. 이런 현실에서 대학들이, 학위가 없이도 성공해서 학벌사회를 비웃을 수도 있지만, 대개는 이런 현실에서 자유롭지 못한 명망가들에게 명예박사학위라도 뿌리는게 학교의 재정과 명예를 튼실히 해주는 방안일 것이고, 이것은 대학이 학문이 아닌 판촉으로 사회에 나름대로 기여하는 방안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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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시절, 연병장 사열대 옆에 키작은 돌덩이에 이런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軍命如山"."군대의 명령은 산과 같다"는 이 글귀는 언뜻보면 멋지게 보이나 무서운 말이다. 군대에서의 명령은 산이 내려 앉은 것과 같아서 한번 발동되면 거부할 수 없는, 움직일 수 없는 산과 같다는 말이다. 군대에서 명령을 그토록 강조하고, 아니 명령 자체가 군대의 본질인 점은 인간사회의 가장 사악한 본능을 충족시키려는 목적, 즉 위협과 승전 때문이다. 이 목적은 물론 이보다 더 큰 목적, 즉 그 사회의 행복을 위한 수단이겠지만, 이런 목적론의 계열을 추적해 들어가는 것은 이 글의 목적이 아니다. 내가 생각하기로 저 무서운 말이 통용될 수 있는 것은, 오직 전시적 상황뿐이다. 한순간에 생존이 뒤바뀔 수 있는 비정상적인 폭력적 상황에서 군대라는 체계는 매우 효율적으로 작동되는 전쟁기계이다. 이런 상황에서 자율성이니 도덕이니 하는 말들은 공허한 단어들일 뿐이다. 이런 비정상적인 상황, 즉 전시와, 전시에 버금가는 작전상황에서 명령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군대는 그야말로 거대한 블래호크의 다운이다. 그러나 이런 상황은 우리의 일상과 너무도 거리가 멀지만, 종종 우리는 이러한 군대적 문화가 암암리에 통용되고 있음을 실감한다. 왜? 당장 세계 저편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있고, 엄연히 한국군이 파병되어 가 있듯, 세계에는 국지적 전쟁의 화염이 일고 있을 뿐만 아니라, 또다른 대전이 일어날 가능성이 팽배해질 정도로, 경제대국의 군비가 증강하고 있는 상황은 분명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지만, 이런 세계정세를 벗어나 이 사회의 현실을 보더라도, 인간의 생명활동이 생존경쟁 내지 생존투쟁이라는 이름의 격전장으로 몰리기 때문이다. 현재의 사회가 그런 전시적 분위기의 면모를 띤다면, 분명 군대에서 통용되는 명령체제가 그대로 현실에서 작동할 수 있는 위험이 산재해 있다. 연세의료원의 파업, 이랜드 사건 등은 그러한 위험사회의 흐름에 제동을 거는 지엽적 사례의 일면일 뿐이다. 그러나 나는 여기서 이런 사회 현실의 장력이 더이상 통용되지 않는 순전히 가상적인 상태에서 왜 군대가 인간의 자율성을 파괴할 수 있는지 논해 보겠다. 그리고 인간이 과연 자율적일 수 있을지, 그리고 그럴만한 자격과 능력을 갖춘 존재자인지는 확신하기 보다는 일단, 그럴 수 있다고 가정해 본다.

우리는 종종 이런 말을 듣는다. 전시에서 대량학살을 감행한 전범이나 잔혹한 고문으로 악명을 떨친 전직 경찰, 혹은 대형비리에 연루된 회사간부가 법정의 추궁에 냉랭히 대답하는 이런 답변. "상부의 명령을 따랐을 뿐이다."  이 답변에는 명령을 따르는 사람은 오직 명령에 충실했을 뿐이므로, 오히려 상을 줘야 하는 것은 아닌가하는 울분이 숨겨져 있다. 그러나 이런 울분은 정당한 것인가? 이 울분은 한 인간으로서 그의 자율성을 증명하는 것이 아닐 뿐더라, 이런 자율성을 행사하지 못한 자신에 대한 비분이 되어야 하지만, 여전히 그는 타율적으로 자신에게 명령한 상사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는 것에 불과하다. 즉 자신은 명령을 따랐을 뿐인데, 처벌을 하려면 명령을 한 주체에게서 해야지 왜 자신을 닥달하냐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물어 볼 수 있다. "당신은 그런 명령이 옳다고 보았습니까? 그래서 당신은 그 명령을 수행한 건가요?" 이에 대해서 여전히 자신은 그저 상부의 명령을 따랐을 뿐이라고 대답한다면, 그는 더이상 인간이 아니다. 즉 자신의 생각을 바탕으로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정신을 가진 존재자로 인간을 정의한다면, 그는 이런 정의에서 전혀 부합할 수 없는 그런 존재자, 즉 인간이 아닌 하나의 사물에 불과하다. 그래서 기계처럼 일할 수 있다. 군대가 인간에게 끼치는 해악이 있다면 바로 이것이다. 인간을 생각없는 기계로 양산하는 군대, 군대적 문화의 타파는 인간이 자신의 진정한 존재를 찾아 가는 하나의 실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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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단상 Vorstelltung 2007. 7. 9. 13:19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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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텔레비젼을 방구석에 몰아 넣고 나니 의례적으로 TV 보던 습관이 줄어들었다. 이제 TV 프로그램(공중파든 케이블이든)은 인터넷에 떠다니는 다중매체의 하나로 전락해 버린 느낌이 드나, 현실세계에서 방송국은 돈과 인력과 장비가 집중되어 있는 기반시설로 자리잡혀 있다. 파도처럼 다중 매체가 현실세계에서 이 보잘것 없는 프로그램만 양산하는 방송국들을 쓸어버릴 날들이 오면 좋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예를 들어 마포에서 성미산 살리기 운동을 펼쳤던 주민들은 문화사업의 하나로 인터넷 방송국을 열었다고 한다. 이런 방송국은 정말 보잘 것 없는 시설과 인력으로 돌아가겠지만, 방송의 앞날을 누가 장담하겠는가.

UCC를 더욱 확장해 프로그램은 방송국에서 모두 외주를 주고, 방송국은 오직 중계소 역할만 하는 구조도 불가능해 보이지 않는다(영화 '라디오 스타'에는 이런 전환이 극적으로 그려진다). 물론 제작비도 이 외주업체(?)에게 지원하는 형태여야 할테고. KBS에서 이런 사업을 공고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데, 아직은 내용이 매우 제한되어 있다. 이걸 시민참여방송사업이라 할 텐데, 지원의 규모와 의지에 따라 프로그램의 범주를 매우 다양화시킬 수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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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의 변증법

헤겔 Hegel 2007. 6. 29. 14:02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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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의 변증법이란 무엇인가?  <대논리학>과 <엔치클로페디>에 가기 전까지, 즉 <정신현상학>이 처음 출판된 1807년의 청년 헤겔에게 변증법은 우선 정신이 역사로 외화되어 가는 운동의  형태로 제시된다. 변증법(dialectic)이란 용어는 플라톤의 대화편에서도 이미 보이지만, 아리스토렐레스가 마련한 일반논리학에 선험적 변증론을 도입시킴으로써, 논리학을 현상과 조응해 생동하는 학으로 만든 것은, 비단 김나지움의 교장시절 15세 미만 학생들의 논리 교육을 위해 교재를 고안했던 헤겔 뿐만 아니라 칸트였다. 그러나 이런 단계적 교양의 발전(페달로그)을 위해 논리학을 재정비한 헤겔은 <정신현상학>에서는 의식의 발생과 운동을 설명하는 현상학적 설명과 이 의식이 발현된 장인 역사에서 변증법적 운동을 보여준다. 이에 대한 대표적 사례는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에서 드러난다. 비유적으로나 내용적으로 이 변증법은 싸움의 양상을 띤다. 원래 있는 상태로의 의식(an sich)은 아직은 자신을 스스로 대상화( für sich)시킬 수 없는 상태이지만, 고양된 정신으로 갈 수 있는 가능성은 잠재해 있다. 그러나 이 가능성은 결코 저절로 실현될 수 없으며, 자신의 의식에 스스로 대적함으로써만 그 단초를 마련할 수 있다.  그러나 자신과 겨루는 힘겨운 싸움은 소모적이다. 이것이 계속 싸움으로만 지속된다면, 그것은 정신의 본래 궤도에서 어긋나는 것이다. 이제는 의식과 자기 의식의 대립을 화해시켜 주는 매개의 기능이 필요하며, 이 기능에 의해 비로서 이성의 자기 인식에 도달한다. 그런데 청년 헤겔에게 이 자기 인식의 도달은 완결된 것이 아니었다. 의식의 변증법에서 종점에 도달했다고 하는 의식은 일단 의심의 대상이다. 정신의 모든 과정을 섭렵해 가는 사유의 여정은 무한하지만, 그렇다고 무한에 정신을 온전히 맡길 수는 없다. 삶에 대한 유의미한 설명, 제한적 의미가 없다면 회의주의의 심연에 빠지고 말 것이다. 즉, 1차원인 선분을 구성하는 점들과 2차원인 평면을 구성하는 점들이 무한히 일대일 대응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선분과 평면의 구분이 사라진다는 역설에 도달한 칸토어처럼 나갈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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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잠을 설치다 꿈을 꾸었는데, 몇 개의 간판이 걸린 길을 지나고 있었다. 나머지 간판은 기억이 나지 않고, 한 가지는 뚜렷하다. "칸트와 헤겔 없는 세상 살만하다!" 뭐 이런 정도다. 아직까지 헤겔은 본격적으로 들어가지 않고 있고, 칸트의 선험적 변증론에서 헤메고 있다 보니 이런 꿈도 산출하나 보다.    

이 꿈을 해몽한다기 보다는, 이 꿈에 관해 생각해 본다. 칸트와 헤겔은 무엇 때문에 읽으려고 하는가? 단순히 교양으로 읽는다고 하기엔, 이들 노작의 전집 규모는 무시무시해 보인다. 분명히 교양서적류를 읽으며 시간을 보내려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그들의 사유체계를 나의 것으로 삼으려는 것인가? 즉 그들의 사유체계에 동화하려는 것인가? 이런 목적이 아니라면, 단지 참고서만 읽어도 무방할 것이다. 즉 그들 텍스트의 험난한 지절들에 빠져 들려고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동화될려고 공부한다고 해도, 그것이 정말 나의 것이 될 수 있는가? 사유가 컴퓨터 프로그램처럼 나의 뇌에 다운로드되어 실행되지 않는 한, 불가능한 일이다. 나의 생각이 물질처럼 고정되어 있지 않는 한 불가능한 일이다. 그들의 사유체계는 현실이라는 끊임없이 흐르는 물결 위에 떠 있는 부표가 아닐까? 그들의 사유에 격류를 쏟아 부은 현실이 여전히 오늘에도 이르고 있지만, 여전히 공유되면서도 이제는 시대의 뒤안길로 물러서 있는 지점들은 무엇인가? 관점에 따라 이에 대한 판단도 상이하겠지만, 나에겐 아직도 유효한 지점들이 산적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가지만 예로 든다면, 기독교의 문제가 그렇다. 헤겔의 실정 종교에 대한 비판은 그대로 한국 기독교에 적용 가능하다. 명제의 명료한 해석과 비판을 위해 칸트의 선험적 논리학과 변증론은 아직도 분석철학에서 동원된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칸트는 철학을 배우기 보다는, 철학하기를 주장한다. 그가 말하는 철학하기란 비판적 언어 활동이다. 이성은 사태를 엄정히 판단하도록 사유의 법정을 주관하는 재판관이다. 헤겔은 칸트의 이성이 매우 협소하다고 보면서, 그것을 주관에 한정된 의식의 활동이라고 규정하지만, 의식을 초월해 전개해 나가는 이성의 자기 활동으로서의 정신은 그 기원과 추진동인을 칸트에게서 빌려 왔다. 즉 칸트가 이성을 존재론까지 전개시켜 나가지 못한 작업을 헤겔이 발전시킨 것, 즉 독일 관념론의 극점으로 끌어 올린 것이다(예나시절 헤겔에게 이 작업을 위한 매개는 피히테와 셸링이 마련해 주었다).  

분명 칸트와 헤겔을 모르더라도 사는 데 전혀 지장이 없다. 헤겔이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도 부지기수일 것이다. 이것이 헤겔이 말하는 그냥 있는데로(감성적 확신의 단계인 직접성Unmittelbarkeit의 단계) 가는 生일 것이다. 또한 어떤 이는 그런 난해한 서구의 철학자를 들먹일 게 아니라, 우리의 것에서 사상의 원천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전지구적인 환경문제, 민주주의의 원칙을 집어 삼키는 자본의 운동, 여성 및 장애인, 소수인종에 대한 차별과 같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선 생태적 각성과 방향전환이 필요하다며 동학을 재조명하기도 한다. 그러나 분명히 칸트는 실천적 이성의 역할에 혁명적 기대를 걸었다. 그는 이론 이성에 분명한 한계를 규정하면서도 실천 이성에 경험 너머의 가능성을 명시했다. 영혼의 불멸, 신의 존재와 같이 이론 이성이 다룰 수 없는 선험적 명제와 마찬가지로, 실천 이성의 대상도 선험적인 것이다. 즉 실천 이성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어떠한 경험적 제한도 없다. 이렇듯 선구적인 실천적 지식인의 실천은 이미 설명되 있는 것이다. 실천의 영역에서 문제는 이론이 아니라 실행력이다. 튀빙겐과 프랑크푸르트 시절의 청년 헤겔 또한 이 실행의 문제에서 고민했다. 그러나 그는 맑스처럼 실천의 영역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그러나 그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칸트 보다는 현실 문제에 더 개입해 들어갔다. 그들은 자신의 영역에서 현실의 문제를 규명하고 해결하려 했던 것이고, 그 문제의식은 현재에도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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