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학대학원제의 도입 전 매년 치뤄지던 사법고시는 지금도 시행중인 행정외무고시와 함께 시험으로 5급 관료로 직행할 수 있는 일생일대의 첩경이었다. 90년대 초반의 인기 주말드라마 '아들과 딸'은 70년대 사법고시의 향수를 짙게 풍기는데, 귀남의 어머니는 아들이 법학대학에 진학하고 사법고시를 보는 것을 과거를 보는 것으로 여긴다. 아버지는 연거푸 낙방하는 아들에게 10년간 시험에 도전하는 사람도 있다며 독려한다. 마흔이 넘어서라도 합격하면 못해도 교도소장은 한다는 풍문은 10년 투자도 아깝지 않다는 계산이다. 20년 이상 일반 공무원으로 일해도 5급 승진이 쉬운 일이 아닌 것을 보면 그렇다. 시험에만 붙으면 영감대접을 받는 길은 분명 출세가도다. 이런 현대판 과거제도는 선비와 견줄 수 있는 고시생을 대거 양산했지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면서 고시의 흔적은 고시원이라는 형태의 주거시설에 그 의미마져 빼앗겼다.
이무리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는 기회가 고시였다고 해도, 조선시대 과거준비를 일생의 운명으로 삼던 선비처럼 밑도 끝도 없이 고시에 도전하는 것은 극소수의 고시생에게나 가능한 일이었다. 한정된 선발인원에 그 높은 경쟁률이 몰렸던 것은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의대증원 여파에 따른 의대 쏠림 현상과 유사한 면이 있다. 물론 비용은 의대가 더 많이 들겠지만, 사회적 비용, 그러니까 고시에 그 많은 고시생들이 전념함에 따라 들어갔던 기회비용의 늪은 더 깊었을 것이다.
명예와 돈을 가져다줄 지위상승의 기회는 어느 청춘이라도 잡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일 것이다. 더군다나 한 사회의 직업가치와 보상체계가 위계화되어 있다면 한정된 자원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은 더욱 더 치열해질 수 밖에 없다. 이제는 사라져간 고시시대의 풍경이지만, 여전히 입시교육이나 시장에서 살아있는 경쟁의식은 한국사회의 또다른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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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스토리챌린지'에 해당되는 글 21건
- 2024.11.12 과거시대의 향수 : 사법고시의 시대 1
- 2024.11.11 역사의 반복과 세대교체 3
- 2024.11.10 안개속 독일연방 내각의 앞날은? 4
- 2024.11.09 글쓰기 도전
- 2024.11.08 트럼프와 민주주의
인도의 한 IT 엔지니어는 AI와 로봇에 관한 책에서 이런 예견을 한다. 2020~2030년 사이에 1000 달러 짜리 컴퓨터가 인간의 지능을 넘어선다. 2030~2040년 사이에 1000달러 짜리 컴퓨터가 모든 인간의 지능을 넘어선다. 지능을 기억과 연산의 기능으로 한정해서 본다면 시중의 시가에 흔히 팔리는 컴퓨터는 분명 한 인간의 지능을 넘어선다. 그런데 대략 10년 후에 이런 컴퓨터가 모든 인간의 지능을 넘어선다?
역사는 철학과 마찬가지로 공통적인 기점에서 출발한다고 볼 수 있는데, 그것은 죽음이다. 인간의 유한성에서 인간은 자신의 근원을 묻고 기록을 남긴다. 영원히 살 수 있다면 어디에서 오고 어디로 가는지에 관한 물음은 필요없고 누군가에 남겨줄 이야기도 필요없다. 철학이 인간의 근원과 미래에 관해 어떠한 답을 주는 것은 아니라 그런 물음의 방식을 논할 뿐이라면, 역사는 검증가능한 기억의 추적을 남긴다.
헤겔의 역사철학에서 주인공인 절대정신이 기독교적 신의 근대적 재편이라면, 인공지능이 이런 절대정신의 현대적 재편이 될 날이 올까? 세대가 교체되더라도 묵묵히 이를 지켜보는 절대정신은 역사의 반복 앞에서 실수를 거듭하는 새로운 세대를 어떻게 볼까?
지난 수요일 내각회의에서 15백만 유로의 추가경정예산 처리를 놓고, 이에 계속 태클을 걸어온 연정 파트너 FDP의 수장 린드너 재무장관이 SPD 소속 슐츠 총리의 최후 통첩에 거절을 표하자 총리가 재무장관의 해임을 대통령에게 요청함으로서 신호등 연정은 붕괴됐다. 재무장관은 물론, 3명의 FDP 소속 장관들도 내각에서 물러남에 따라 밀어내기 식으로 당장의 공석을 채우더라도 FDP의 연정이탈로 과반의석을 지키지 못한 연정 총리는 즉각적인 총선일정을 밝히도록 압박을 받는 상황에 처했다. 야당의 협조가 없으면 킨더겔트나 49유로 티켓, 우크라이나 난민 지원 등등의 내년도 예산안은 정지될 수 있다. 이런 파국은 급작스러운 사건으로 보이나 3년간 끊임없이 상호불신의 늪에 빠져있던 신호등 연정 파트너인 SPD(적), 녹색당(녹), FDP(황)가 몰아치는 주선거에서 잇따라 고전을 면치 못하면서 헤어질 결심을 굳혀가는 과정에 있었다. 몇 주 전에는 녹색당 소속 하벡 경제부 장관이 녹색 경제정책을 담은 청사진을 발표하자 재무장관의 입지는 더 좁아진 형국이 됐다. 자유주의적 우파에 속하는 FDP에 맞지 않는 정책이었던 것이다. 결국 트럼프의 당선이 확정된 날, 세 당파는, 아니 두 당파와 한 당파는 갈라섰다.
슐츠 총리는 내년 1월 15일 연방의회에서 자신의 재신임을 묻고 3월 말까지 총선이 치뤄지도록 하겠다고 했지만 다수당인 CDU의 수장이자 차기총리로 유력한 메르츠와 FDP의 의원들은 슐츠에게 당장 다음주 수요일에 의회의 재신임을 묻고 1월에 총선일정을 잡아 트럼프 정권의 가동 전에 새정부를 구성하자고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일개 주 선거도 아니고 연방단위의 선거를 두 달 내로 준비하기엔 시기적으로 무리이고 위험하다고 연방선거관리위 위원장은 지적한다. 크리스마스 시즌에 선거 우편물이 제대로 전달되는 것은 둘째치고 인쇄라도 완료되겠는가? 이런 상황이 예외적이긴 하지만 충분히 관리될 수 없을 정도로 혼돈의 상황인가? 원래대로라면 연방선거는 내년 10월이다.
현재 시점에서 연방차원 정당 지지도가 CDU/CSU 33%, AfD 18%, SPD 16%, Grüne 12%, BSW 6%, Linke 4%, FDP 3% 인 상황에서 FDP는 CDU/CSU에 추파를 던지고 있지만 저조한 지지율의 이 정당에 대해 최고 지지율을 달리는 이 정당의 지도자는 상황을 보자는 입장이다. 이런 와중에 어제 녹색당의 하벡 경제부 장관은 자신의 집에서 총리후보로서의 소견을 발표했다. 튜링겐과 작센에서 볼 수 있듯이 제2정당으로 부상한 극우 AfD와의 연정은 어느 정당도 거부하는 상황에서 독일 정당 정치는 암약에 들어섰다.
*참고 : Die Welt, Süddeutsche Zeitung 11월 2주차 주말편성판, Frankfurter Allgemeine 11.09 인터넷판.
**연정붕괴에 대한 정당별 책임에 대한 여론조사 : SPD 18%, Grüne 26%, FDP 40%(Hart aber Fair 11월11일)
매일 글을 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뭔가를 써야겠다는 동기나 글감이 떠오르지 않는 경우 무언가를 끄적인다는 건 허투른 말장난에 그치고 말 것이라는 염려가 앞선다. 하지만 필을 받아야 글이 나온다고 보는 것은 어떻게 보면 상당히 수동적인 글쓰기 태도다. 그런 느낌 내지 영감이 언제 올지 알 수 없고, 나날의 일상에 치여 산다는 변명으로 글을 쓴다는 행위는 점점 더 어색해 진다. 특히 논문에 가까운 에세이라도 쓸려면 관련 주제에 관한 충분한 사전 독서량이 전제되어야 하고, 이런 밑천이 있어야 글을 쓸 추진력도 생긴다. 하지만 반응형 글쓰기가 되지 않으려면 결국은 자신의 생각이 무엇인지가 관건이다. 남의 생각에 휩쓸려 정리하기에만도 급급하거나 그냥 전달하는데 그치고 마는 것은 리포트와 다름없다. 그렇다고 무작정 자신의 생각만 주장하는 것은 맹목적이다. 글쓰기는 자신의 생각, 특정 주제에 관한 생각을 어떻게 전개하고 드러내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 과정에서 글쓰는 이의 온갖 지식과 경험이 산발적으로 동원된다. 흔히 술꾼들이 술을 마시며 대화를 즐기는 이유 중 하나가 취기에 안주처럼 떠오른 추억들의 소비이듯이, 글을 쓰면서 잊혔던 기억이나 새로운 발견이 있기도 하다.
티스토리의 글쓰기 챌린저 이벤트는 이러저런 류의 유행성 행사의 하나로 보이기도 하지만 나한테는 글쓰기라는 아주 흔해빠진, 그럼에도 고전적인 행위이기도 한 일을 마라톤처럼 완주해보고 싶은 바램을 일으킨다.
트럼프의 재집권이 민주주의를 퇴락시킬 것이라는 우려는 집권 민주당의 패배라는 결과 이상의 의미가 있을까? 특히나 이런 염려는 유럽에서 크게 일어나는데, 이것은 유럽 곳곳이 이민자를 배척하는 극우 정당들의 급부상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사정을 반영한다. 이민자 반감과 결합된 자국우선주의는 다양성의 포용을 특징으로 하는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에너지 정책에서 다양성의 퇴출은 화석연료와 핵발전으로의 퇴행을 예고한다. 일찍부터 이런 퇴행을 감행한 윤석열 정부는 트럼프의 귀환을 용의주도하게 대비했을리는 없지만 닯은 꼴이기는 하다.
선거결과만 놓고 보면, 트럼프는 전임의 1기에서 실패한 것이고, 그의 재선은 바이든의 실패를 등에 업고 가능했다고 볼 수 있다. 윤석열처럼 더이상 선거에 신경 쓸 필요가 없는, 그래서 어떤 실패라도 개의치않고 전개될 트럼프의 국정운영에 세계가 초긴장의 상태에 빠져 있다. 더군다나 상하원 모두 공화당이 과반 의석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푸틴처럼 트럼프가 자국 내에서 견제없는 권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자유라는 실체도 없는 이념이 굴욕과 억압에서 일어나는 것처럼, 앞으로 트럼프가 몰고 올 거대한 변화는 민주주의를 뼈 아프게 새기게 하는 계기가 될 것인가? 그리 성공적이라고만 볼 수 없는 사업가이었지만 공명심은 투철해 보이는 이 최고 권력자에게 너무 많은 기대도 너무 많은 불안도 기울일 필요없다고 쉽게 말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