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강구도의 정치와 정치 일반을 향한 냉소적인 야유에 대한 원인 파악 보다는 감정적인 싫음 좋음이란 태도의 이분은 또다른 냉소로 보인다. 상대적으로 민주당이 한나라보다 쌓아온 공적은 인정하더라도, DJ가 떠난 대충통합당의 당색은 반한나라 외에 없다. 김어준이 말한 바처럼 보수는 이익을 중심으로 조직되는데, 내가 보기에 민주당은 노골적으로 이익을 내세우지 않을 뿐 이익의 판도에서 자유롭지 않다. 민주당의 이름으로 강원도지사에 앉은 최문순을 보라. 선거전엔 갖은 입발림으로 골프장 반대 농성장에 공감하는 척을 하다가 당선 뒤엔 철저히 무시한다. 정책의 측면에서 볼 때도, 이젠 한나라와의 뚜렷한 정책적 차이도 점점 더 좁아지고 있다. 민주당의 반독재 운운은 족보를 거들먹거리는 퇴보적 행태에 가깝다. 오히려 한나라에서 민주보다 앞선 진보적 정책을 내세울 때도 있고, 일단 제시된 정책은 실현하려는 노력도 보인다.(아 장물을 팔아서라도 반값등록금 재원을 마련하려는 한나라에 비해 민주당은 반값 플랭카드나 붙이고 다닌다.)
비판적 지지라는 말은 분명 모순된 형용어법이다. 차라리 비관적 지지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정당의 사명이 정권 쟁취라고 한다면, 정당은 가능한 수단을 발동해서 이 목적을 실현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총선이 정당의 권력창출을 위한 현실적 무대라면 대선은 상징적 무대다. 엄연한 대통령 선거제도에서 정당이 대선 후보를 내지 못한다면 그건 정당으로서의 사명에 어긋난다. 반독재를 위해 한번 내어준 지지를 언제까지 빌려 주어야 할까? 대선이라는 상징적 무대에서 자신 색깔을 지키지 못한 당은 계속 무력해 지기만 할 뿐이다.(아쉽게도 이번 대선에 진보신당은 후보를 내지 않기로 했단다..) 그런 의미에서 어려운 사정 속에서도 후보를 낸 정당에게 다소의 관심을 가지는 것을 패배주의적 정치관으로 치부하는 것은 너무도 근시안적이다.
난 당원은 아니고 앞으로도 어느 당에도 가입하지 않을 생각인데, 이런 말을 하다보면 난 다른 사람들보다 상당히 민주당 우호적이다. 많은 문제에도 불구하고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이 한국사회의 민주화에 끼친 공로가 없을까? 한국 민주주의의 역사를 좀 공정하게 보는 사람이라면 그들의 큰 공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들의 공이 있다면, 그들이 이끌었던, 그들을 지원했던 당의 공로는 없는가? (여기서 김영삼은 자신들의 무리를 이끌고 당나라당에 들어감으로써 자신이 이끌던 야당의 전통이 사멸하고 만다.) 민주당 국회의원들은 한국의 다른 잘 나가는 직업군에 속하는 사람들보다 더 부패하고 더 무능하고, 자신들의 할 일에 더 태만할까? 그렇다는 증거가 있나? Hans님이 정의한 의미에서 "비판적" 민주당 지지는 극좌 냉소주의보다 훨씬 균형있고, 훨씬 건강하다. (난 냉소주의가 싫다. 냉소주의의 본질은 다른 사람을,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을 비웃고 경멸하는 것이다. )
그럼 위에서 민주당 및 소속 국회의원들에 대한 비판적 옹호는 새누리당에도 적용될 수 있을까? 없다. 그들은 한국민주주의 역사에서 민주주의를 말살했고 억압했고, 그럴 수 없을 때는 항상 민주주의의 신장에 반대하고 딴지를 걸었다. 반민주주의적 수구정당. 존재가치가 없는 당. 그 안에서 개혁이다 말한 하는 사람도 다 마찬가지.
대표적으로 원희룡. 얘는 의정활동 중 한국민주주의에 무슨 기여를 했나? 전두환에게 가서 세배하는 것 외에. 미친 놈. 이놈은 이게 본질. 자신에게 유리할 것 같다 하면 전두환에게 가서 절할 수 있고. 그게 불리하게 될 것 같으면 당장 사과하고. 줏대 없는 비열한 기회주의자. 물론 나는 이런 놈은 경멸하지.
-양강구도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별로 없어 잘 모르겠슴. 그러나 거대한 양강구도의 물결 속에서, 여러 군소적인 이야기들이.. 부당하게 (그것도 너무 과도하게) 파묻힌다는 점에는 캐동감. 아마 겨울산 이야기는 이거인거 같다.
-야바위정도는 아니지만, 캠프의 권력다툼에 관해서도 70% 공감.
-비판적 지지에 대해서 다른 견해 말씀 올리자면, (이에 대해 대다수와 내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비판적 지지 모든 지지는 99.9% 비판적 지지이다. 군소정당 후보에 대한 지지 역시, 비판적 지지 아니던가? 100% 똑같은 생각을 가진 후보라면 모를까.. (이 역시 참 이상한 일일거다.) 내 경우, 한나라, 민주, 진보정당 모두 내 생각과 다른데.. 비판적 지지를 하지 말라면 나는 투표를 하지 않아야 한다. 아마도 영원히.
-전략적 지지 비판적 지지에 대한 논쟁은 아마도 전략적 지지, 그러니까.. 자신의 지지후보가 있슴에도 다른 후보를 선택하는 것을 말할 텐데, 이 역시 정치적 입장차라고 봐야한다고 여겨진다.
당선과 관련없는 지지정당의 득표율 up보다, 한나라당의 비집권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 한나라 민주당 공히 도진개진이므로, 당선과 무관하게 지지정당에 투표하는게 낫다고 보는 경우. 민주당이 되는게 자신의 지지정당의 미래에 유리하다고 보는 경우. 그 반대인 경우. 투표는 유불리로 따질 수 없는 문제로 보는 경우. 반대로 실리적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우. 등 모두 다 정치적인 입장에 속한다고 본다. 물론 이에 대한 논쟁은 상호가능. (대부분 소모적이고 감정적이었지만..)
-또 하나, 비판적(전략적) 지지를 하지 말라는 건 현실적으로는 거의 불가능한 주문이다. 사람을 대하거나 일을 할 때, 아무런 계산없이, 네 이상대로 행동하라는 말과 동급수준. 일부 예술가, 성인, 위인에게만 해당될 수 있는 말이며.. 모든 이에게 이걸 주문하는 것은 불가능(심지어 부당)하지 않을까?
정치적 입장(이상)과, 그게 사회에 실현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다. 이상이 같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지지되어야 하는 건 아니란 말. 하나의 선택은 자신의 이상, 그것이 실현될 가능성, 실현방식은 물론... 그 이상이 충족되지 않는 거의 모든 경우에서, 그 차선책에 대한 입장.. 무엇을 어디까지 타협 양보할 수 있고 없는지. 무엇이 유불리한지. 현실과 미래 등. 많은 것을 포괄하고 있으므로, 일부가 맞아떨어진다고 지지되는게 아니다.
또한 최종목적을 이룰 수 없을 경우, 차선, 차차선을 취하는 영업가 또는 실용적 기질과, 이게 아니면 타협할 수 없는 고집스러운 (또는 의지의) 스타일, 완전이 아니면 무라고 느끼는 예술가 기질, 1등이 아니면 다 꼴등과 같다고 보는 1등주의 기질, 그 밖에 현실감없는 스타일, 이상 외엔 별로 관심없는 기질 등. 등에 따라서도 다 달라진다.
-그러나, 그러한 다양한 중생들의 생각이 모아지고 반영되고 논의되고 아젠다가 정해지는.. 대한민국, 아니 현존 모든 국가의 의사유통구조에 관련해서, 지대하고 본질적인 문제가 있다는 점을 깊이 공감한다. 다만, "일이 점점 커지네!"일 뿐...
-비판적 지지에 대한 논쟁은 그게 옳으냐 그르냐에서, 어떤 것을 어디까지 타협하고 양보할 수 있는지 없는지, 무엇이 무엇보다 더 중요하다고 보는지 등으로 대체하면, 더 정확한 맥락에서 더 생산적인 이야기가 될 거 같다.
내가 아는 한, 대개 우리들의 차이는, 무엇에 대한 옳고 그름이 아니다. (박정희 지지자들도 독재, 친일이 옳다고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무엇을 어느 수준에서 타협하고 양보할 수 있는지에 대한 차이이다.
네, 저는 저 양강구도에 큰 기대를 걸지 않습니다. 명박이도 견뎠는데 근혜언니 치하라고 못살까요. 어차피 정권의 탄생기 부터 혼돈과 혼란이 한국정치의 운명이니까요. 선거 때마다 단일화로 반격을 노리는 꼼수들이 지긋지긋하네요. 나름의 역동성이 흥미유발의 소재는 되겠지만요. 안테나가 끊겨 뉴스나마 보던 TV를 아예 안보다 보니 정치가 제 관념에는 아주 미미한 현상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가 봅니다. 물론 정치는 중요한 것이지만, 대선이라는 빅이벤트가 정치의 전부를 잡아 삼키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구요. 정치가 생활과 유리된 곳에서 오히려 정치는 중계됨으로써 생활의 소재를 점령했다고 할까요.
대선 때마다 비판적 지지로 군소정당을 압살하는 양강구도의 선거판을 깨기 위해서는 비판적 지지 따위의 자살책을 버리는 생존전력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제 생각에 안철수 신드롬의 주요 동기에는 민주당에 대한 혐오감도 있고요.
겨울산님은 한국정치를 너무 냉소적으로 바라보고 계시네요. 그리고 단일화는 "야바위"라는, 결국 새누리당식 논리에 빠지시는군요. 둘이 지향이 상당히 비슷한 두 후보가 모두 나가면, 둘다 역사를 거꾸러 돌린다고 생각하는 세력이 집권을 하게 될 것 같고, 합치면 이길 수 있을 것 같은데, 이때 힘을 합치는 것을 고려하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단일화과정이 자리나눠먹기식으로 되지는 말아야겠지요. 그리고 지금보면 그렇게 되지 않을 것 같고. 이거 "야바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3자 대결에서는 지지도가 제일 높게 나오고, 정당 중에서는 새누리당이 지지도 높다고 새누리당후보가 대통령이 되는 것이 순리일까요? 그렇다면 대통령 선거를 왜 할까요, 그냥 여론조사로 하면 되지.양자대결하면 근혜언니가 지거나 비슷한 것으로 나타나고, 새누리당이 집권해야 하느냐 정권이 교체되어야 하냐, 물으면 정권교체쪽이 훨씬 높은 것은 고려되지 않아야 할까요?
나는 박근혜 대세론이 흔들리는 것을 한국사회의 역동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역동성은 물론 안정적이진 않죠. 그래도 죽은듯 한 것보다는 낫죠.
정당지지도와 대선 후보 지지도의 정상적 궤도에서 이번 대선의 승자는 박근혜다. 대중의 과대열망 속에 출현한 안철수라는 신드롬이 이 정상 궤도에 이탈 조짐을 일으키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이것이 모두 문재인을 위한 쇼라면 그야말로 엄청난 자기헌신이지만, 강은 이미 건넜다고 한다. 극적인 단일화로 밖에는 대선에 승리할 수 없는 민주당...극적인 단일화의 꿈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는 문안 캠프의 동정에는 야바위같은 노림수가 보인다. 결국 대선은 과반수를 차지하기 위한 의회정치의 귀결인 양강구도의 연장선이자 대리전이면서 승자 캠프를 위한 일자리 창출로 보인다...그리고 의원수를 200명으로 줄이자는 안은 테크노크라시의 전조같다.
안철수의 정치개혁구상에 대해서 비판이 많다. 무엇보다 없어질 수 없다면 가능한 한 정치가 적었으면 좋겠다는 수준에서 사고 있다는 것이 많이 드러난 것 같다. 기술관료적 행정을 이상적 정치 형태로 생각하고 있지 않은지 걱정이다. 주변 사람도 거의 다 대학교수들, 아니면 무슨 연구소 소장. 이게 대동령 후보의 선거기구인맥인지 무슨 연구소를 세우려는 것인지. 이에 대해서는 좋은 비판이 많은 고로 특별히 첨부할 것이 없다.
다만 자신에 대한 비판을 국민에 대한 비판으로 등치시키는 오만함에 대해서는 또 한번 놀랐다. 인기가 상당기간 좋다고 이제 자신의 생각을 비판하면 국민을 무시하는 것이고, 국민이 무시당해 마음이 아프다? 거의 이명박 수준.
안철수가 이 못난 땅의 꼴동 기득권층은 아니었다. 나름대로 법과 상식에 맞게 행동해왔다. 그것만도 상당히 어렵고 후륭한 것이다. 맞다. 그러나 그 이상도 아니었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이 사회의 특권층에 속했으며 그 안에서 합법적 형태로 누릴 수 있는 특권 다 누렸다. 실례로 포스코사회이사하며 수 억씩 받지 않았나? 하는 일도 없이.
그래 대통령후보로 출마할 자격있다. 그러나 자신이야말로 이 사회의 부당한 특권구조를 개혁할 도덕적 정당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래서 자신만이 구호가 아니로 실제로 국민의 후보라고 생각한다면 벌써 오만과 착각 속에 있는 것.
경제를 좀 운영할 줄 알아야겠지. 그러나 나는 그과 더불어 이 사회에 민주주의를 진척시킬 수 있는, 특별히 표현과 사상의 자유를 증진시킬 수 있는, 그리고 검찰개혁을 통해 공권력을 민주적 통제 아래 둘 수 있는 그런 식견과 능력을 갖춘 사람이 대통렬이 되길 바란다. 안찰수로는 뭔가 부족해.
어제 쉬면서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크 나이트』(2008)를 봤고, 앤서니 버지스의 『시계태엽오렌지』(1962)를 일독했으며, 스타니스와프 렘의 『솔라리스』(1961)를 읽기 시작했다. 영화는 도서관 멀티미디어실에서 봤는데, 나는 최근에 개봉된 배트맨 최종편인줄 알고 골랐는데, 이미 몇 년 묵은 두번째 시리즈였다. 예전에 보기는 했지만, 술마시고 졸면서 본 터라 다시 봐도 새로운 느낌이 들었다. 무엇보다도 조커의 범죄심리가. 산더미처럼 쌓인 돈에 별 관심이 없이 계획된 구상을 혼돈으로 몰고 가는데 혈안인 범죄심리가 사회실험용 범죄까지 가는 단계는 경악스럽다(병원과 피난선). 영화는 무장한 경찰이, 범죄자들과 죽음의 게임을 펼치는 일반 시민들보다 더 폭력에 노출되며, 청렴한 검사가 범죄자로 돌변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놀란의 배트멘 시리즈가 우파적 정치성향을 보여준다는 글을 어디선가 얼핏 본 적이 있는데, 이 중간편에서는 법의 집행기구가 조커라는 범죄 상황에서 얼마나 사상누각인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법치사회에 대한 조롱이 역력히 보인다. 이런 점에서 버지스의 『시계태엽오렌지』는 범죄인의 선택능력까지 박탈한 치안당국의 조건반사적 정신요법(루도비코 요법)을 공격한다. 범죄를 뿌리 뽑으려는 선한 의지가 또다른 악을 행사할 수 있다는 시사점을 던져주는 작품들이다. 참고로 작품 발표 후 10년 후에 큐브릭의 영화로 나온 『시계태엽오렌지』에 대해 버지스는 자신의 작품이 영화 보다는 소설로 기억해 주길 바란다고 했다. 사실 이 영화는 원작을 일부 첨삭하고 개작한 장면도 있지만(감독의 성향과 제작 환경상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비교적 충실히 원작을 옮겨 놓았다고 할 수 있다. 반면 예전에 본 타코스프스키의 『솔라리스』는 원작의 주요 배경- 두개의 태양을 공전하는 솔라리스
라는 괴행성의 우주정거장-과 중요 사건-레야를 비롯한 방문자들의 출현-을 옮겨 오기는 했지만 비교적 원작을 상당히 빗겨서 각색한 작품임을 알 수 있다. 그야말로 돌발적인 러시아 혁명처럼 궤도를 이탈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