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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 오닐'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1.06.16 한류 열병 2
  2. 2010.03.22 가족사의 파토스 : Long Day's Journey into Night(1941) 1
  3. 2010.03.22 토요일 밤의 긴 여로

한류 열병

문학 Literatur 2011. 6. 16. 18:28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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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은 한반도가 세계의 하수구라고 했다. 세계의 온갖 모순과 부조리의 찌꺼기들이 집약된 곳이라는 말이다. 십대를 상품화시켜 화려한 눈요기로 세계의 무대에 진출시키는 열광에 일말의 부끄러움은 없다. 무기를 수출하는 나라답게 문화를 수출한다고 자부한다. 열정 보다는 열병의 수출이다.  

어제는 휴가를 내서 집에서 쉬다가 도서관에 갔다. 편안한 소파에 앉아 오웰의 『1984년』앞부분을 다시 보았다. 역시 이 책의 서두 부분은 암울하다. 마치 숙취를 안고 기능이 마비된 미래의 도시에 떨어진 느낌을 들게 한다. 아서 밀러의 『세일즈맨의 죽음』(1949)을 빌려 나왔다. 유진 오닐의 『밤의로의 긴 여로』이후 희곡의 매력에 다시 빠져들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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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트 :  유진 오닐, 『밤으로의 긴 여로』 민승남 역(민음사, 2008, 1판 18쇄)


유진 오닐은 <몬테크리스토 백작>이라는 통속극으로 25년간 전미를 돌며 돈을 갈고리로 쓸어 담는데 주력했던 주연배우 제임스 오닐의 삼남이었다.  아일랜드 출신으로서 불우한 어린시절을 겪으면서도 셰익스피어 전문배우의 꿈을 가졌었지만, <몬테그리스토 백작>의 장기간 흥행으로 돈방석에 앉으면서 오로지 돈만 생기면 땅만 살 궁리를 하고 정작 가족에게는 인색했던 아버지를 경멸했던 유진 오닐은 찰리 채플린과 결혼한 딸과 의절했다. 채플린을 통속 배우 쯤으로 본 것일까?    

자전적 이야기에 허구를 이음새 없는 옷처럼 잘 기우는 교묘한 작품들과 달리, 이 소설이 당기는 흡입력은 처참한 진실, 가장 내밀한 가족사의 속내를 비수같은 말들로 속속들이 파헤친다는 점이다. 말보다 잔혹한 도구가 있을까? 폭력은 말의 연장이다. 공포도 말의 연장이다. 단 하루 동안 한 가족에 일어난 일의 단면 만을 들춰내는 것으로도 겹겹히 굴곡을 이뤄 소용돌이치는 가족사의 전모가 드러난다. 이런 전개에서 희곡은 가장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속도감을 갖춘 형식이다. 쏟아지는 대사의 곡사포를 영화가 따라갈 수 있을까?   

역자는 이 자전적 희곡이 아픔의 가족사를 보편적 진실로 승화시킨 작품이라고 하는데, 이러한 분열된 가족상은 현대극의 빼놓을 수 없는 단골메뉴다. 막장 드라마에 사람들은 얼마나 열광하는가? 막장 드라마도 가족간의 피할 수 없는 연민과 동정을 유발하지 않는가? 그러나 이 자전적 작품이 막장과 다른 것은, 이들 가족이 서로를 너무도 사랑하면서도 분열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한때 성모의 계시를 받고 수녀를 꿈꾸던 메리는 잘 생긴 늠름한 배우 티론에 흠뻑 빠져 결혼을 했고, 쉰살이 넘어서도 그에게서 받은 드레스를 보며 황홀해 하지만, 남편에 대한 사랑만으로는 부족해 자꾸 과거로 거슬로 올라간다. 티론 역시 요조 숙녀였던 메리를 사랑했지만 집 보다는 바에서 친구들과 노닥거리고 든든한 자산인 부동산에 여유 돈을 투자할 생각에 골몰하면서도 폐병에 걸린 자식은 값싼 요양원에 보낼 궁리를 한다. 가족의 기대를 받던 맏아들 제이미는 병을 앓고 있는 동생 에드먼드를 보호해 주고 싶어 하지만 자신의 실패로 인해 동생을 질투한다. 에드먼드는 독립을 꿈꾸며 대학을 자퇴하고 선원생활을 하는 등 방랑하지만 폐병을 안고 귀가한다. 1910년 대에 대단한 부자는 아니더라도 여름 별장에 하인과 운전수를 둘 수 있을 정도의 집안에서 흔히 있을 수 있는 가족간의 가벼운 불화 정도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알콜 중독 보다 무서운 중독이 가족에게서 발생한다는 것은 크나큰 충격과 아픔일 수 밖에 없다.

그 아픔의 각인이 이런 작품을 낳게 했다면, 고통은 정말 창작의 밑거름이다. 그 동기에서나 과정에서도 잔혹한 진실이다.   

                 "내 묵은 슬픔을 눈물로, 피로 쓴 이 극의 원고를 당신에게"
                                                                        (칼로타에게 바치는 헌정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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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밤의 긴 여로

단상 Vorstelltung 2010. 3. 22. 18:14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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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에 사무실 확장 공사로 자리 정리를 위해 나와야 했다. 장충동 거리는 그래도 어느 정도 사무실이 모여있는 곳이라서 직장인들이 빠져나간 주말에는 산속의 절간 같다. 낮에는 결혼식 때문에 대구에 가는 가족을 서울역까지 바래다 주었다가 장을 보고, 집에 들렀다 바로 사무실로 나갔다. 북부간선을 타고 광화문을 거쳐 서울역, 옥수동, 구리, 남양주, 그리고 장충동까지. 모처럼 홀가분한 주말이라 일을 끝내고 선배를 만나려고 했는데, 약속이 취소되어 동네 친구들과 약속을 잡았다. 오후 5시부터 사무실 정리에 들어 갔는데 주도하는 몇몇 사람은 8시가 넘도록 집에 갈 생각을 안한다. 내가 나서서 서둘러 종료하는 분위기를 만들고 나서 빠져 나왔다. 용마산 역 쪽으로 이사를 한 친구의 가게 앞 유황오리 집에서 오랜만에 만난 이들과 단맛의 소주를 마셨다. 유진 오닐의 『밤으로의 긴 여로』에서 메리는 남편 티론에게 집에 있기 보다는 밖에서 친구들과 술마시는 걸 좋아한다고 불평한다. 불평할 사람이 없는 밤에 마시는 술은 마치 밀주같다. 자정으로 넘어가는 시간에 버스를 타고 도심 밖으로 넘어갔다.   

이날 만난 친구 중 하나는 중학교, 고등학교 동기인데, 한창 술마시더니 나 때문에 내신등급이 깍였다고 얘기했다. 같은 반이었던 고 3 때 나는 출석체크 담당이었는데, 농땡이 치기를 즐기던 이 녀석의 출석을 칼같이 체크했기 때문이란다. 그때 이 친구 보다 더 심하게 학교에 나오지 않던, 막나가던  동급생이 있었는데,  차마 이 친구에게는 출석 체크를 엄격하게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졸업을 못할 수도 있어서. 놀려면 이렇게 놀아야지, 드문 드문 학교를 빼먹어서는 육질의 평가마냥 등급의 줄세우기로 아직까지 술안주를 삼는다. 그래도 미안한 생각이 들어서인지 술값은 내가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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