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예지의 외계 존재에 관해 과학적 개연성이 없는 상상을 하다가 스스로 놀란 적이 있었다. 이에 반해 아서 C. 클라크의 외계존재에 관한 상상은 보다 단계적이다. 과학은 상상에 이르거나 혹은 이것과는 다른 방향의 출로는 여는 사다리이므로.
"처음 지구를 찾아왔던 탐험가들은 이미 오래 전에 피와 살로 이루어진 육체의 한계에 도달했다. 육체보다 더 나은 기계들이 만들어지자 그들은 움직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뇌가, 그 다음에는 생각만, 금속과 플라스틱으로 이루어진 반짝이는 새 그릇에 옮겨졌다. 그들은 이 새로운 몸을 입고 별들 사이를 방랑했다. 그들은 이제 더 이상 우주선을 만들지 않았다. 그들 자신이 바로 우주선이었다. 그러나 기계 생물의 시대도 금방 과거사가 되었다. 그들은 끊임없는 실험을 통해 우주의 구조 그 자체 속에 지식을 저장하고, 얼어붙은 빛의 격자 속에 자신들의 생각을 영원히 보관하는 법을 터득했다. 그들은 복사선으로 존재하는 생물이 되었다. 마침내 물질의 억압으로부터 자유로워진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곧 스스로를 순수한 에너지로 변화시켰다...이제 그들은 은하계의 주인이었고 시간의 손길에서 벗어나 있었다. 그들은 마음대로 별들 사이를 떠돌다가 공간의 틈새를 통해 희미한 안개처럼 가라앉을 수 있었다. 그러나 신과 같은 능력을 지녔는데도 그들은 이미 사라버져 버린 따스한 진흙 바다에서 자신들이 처음 생겨났다는 사실을 완전히 잊어버리지는 않았다."
<2001년 스페이스 오디세이> 김승욱 역 (황금가지, 2014년 1판 6쇄), 5부 토성의 위성들 中 실험, 27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