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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탕달'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0.02.23 『파르마의 수도원』 1
  2. 2010.02.04 『파르마의 수도원』1권을 읽고 2
  3. 2010.02.01 우둔함 대 상상력

『파르마의 수도원』

책들 Bücher 2010. 2. 23. 09:03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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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스탕달(본명은 앙리 벨)이 59세의 나이로 파리의 한 거리에서 뇌졸증으로 쓰러지기 4년 전인 1838년, 52일간의 구술로 완성된 작품이다. 승승장구하던 나폴레옹의 혁명군에 참가해 출세가도를 달리던 스탕달은 나폴레옹의 몰락으로 국외를 떠돈다. 이후 그는 1830년 프랑스의 7월 혁명으로 관직에 복귀해 이탈리아의 교황령 치비타 베키아 주재 영사로 근무하던 중 파리에 휴가차 왔다가 집필한 것이 이 소설이다.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시대에 있었던 파르네제 가문의 실화를 바탕으로 시대에 맞춰 각색된 이 소설의 제목이 드러내듯, 이 소설의 중반부와 후반부의 주무대는 이탈리아 북부 오스트리아령의 파르마이지만, 왜 '수도원'이 들어가는지는, 이 소설의 급격한 결말에 가서야 알 수 있다.  파브리스가 클렐리아를 만나기 위해 설교소동을 벌이던 끝에 두 사람이 은밀한 밤, 크레센치 저택의 오렌지나무 온실에서 극적으로 만난 이후 벌어지는 3년간의 일들을 작가는 단호히 생략했는데, 이 부분만 다뤘어도 국역본으로 2권의 분량으로 된 이 소설은 3권이 됐을 것이다. 그러나 기존의 도덕을 모두 가볍게 무시해 버리는 정략과 정열로 넘치는 이 소설의 통속성은 이 결말에 이르러서 극적인 반전을 이룬다. 시종일관 희극으로 치닫던 소설이 몇페이지를 남겨두고 급격히 비극으로 깍아 내려지는 급벼랑을 만난 듯한 형국이다. 이런 소설의 분위기는, 마치 한 시대를 뒤흔든 혁명의 시대에 가담해 역사의 전장을 밟고, 열정적인 로맨스를 벌였으며, 시대의 고난과 반전을 겪다가 객사한 스탕달의 인생과 흡사하다.

이 소설은 나폴레옹의 이탈리아 원정 때 이탈리아를 방문한 적이 있던 작중 화자가 다시 이탈리아로 돌아와 밀라노 공국 델 동고 가문의 일화를 듣는데서 시작하는데, 이 동기는 스탕달이 베키아 주재 영사로 이탈리아에 돌아와 16세기 파르네제 가문을 역사를 접한데서 온 것임을 알 수 있다. 밤을 세워가며 이 이야기를 즐겨 들었던 화자는 이 이야기를 소설로 만들어 볼 것을 생각한다. 이것은 스탕달이 [파르네제 가문의 위대함의 기원]이란 기록물의 복사본을 모두 읽고 사본 여백에 이 이야기로 작은 소설을 만들어 볼 것이라고 적은데서 연유할 것이다. 소설의 시작은  작은 일화 정도의 실마리를 보이지만, 책의 분량이 말해 주듯 파브리스와 고모인 산세베리나 공작부인, 모스카 백작, 클렐리아,  궁중인사들을 중심으로 굵직한 모험들과 정략들이 이 소설에서 펼쳐진다. 다시 언급하지만, 연정을 위해 마키아벨리적인 권모술수와  활기로 넘치던 이 소설은 마치 셰익스피어의 비극과 흡사한 결말에 급작스럽게 당도한다. 삶의 활력이 치닫는 길은 결국 종교라는 종점에 이른다는 것인가? 소설에서 바로 그 종점은 '파르마의 수도원'인 것이다.   

끝으로 이 소설의 에필로그는 To the Happy Few("소수의 행복한 사람들에게 바친다")라는 치사로 끝나다. 여기서 소수의 행복한 사람이란 파브리스나 산세베리나 공작부인, 나아가 모스카 백작처럼 사랑을 위해 죽음도 불사하는 열정가들을 가리킨다. 사랑을 위해서란 말은 극히 감정적이지만, 이런 열정 자체는 희귀하다. 그러나 이런 희귀한 한 사람의 열정이 열사람, 아니 그 이상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에 이런 정열의 위대함과 공허함이 있는지 모른다.

*텍스트 : 스탕달,  『파르마의 수도원』 원윤수,임미경 역(민음사,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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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르마의 수도원』1권을 읽고

책들 Bücher 2010. 2. 4. 09:09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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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부 도서관에 반납하고 난 후 2권째를 빌리려 했는데 대출이 안된단다. 열흘 전에 1,2권을 모두 빌렸다가 아무래도 2주내에 1,2권을 읽기에는 속도가  더뎌 2권은 지난 주말에 미리 반납했다가 어제 대출하려던 것이었는데, 반납한 책은 1주일이 경과해야 대출이 된다는 것이다. 이 무슨 사금융도 아니고..

『파르마의 수도원』1권의 전반부는 우쭐대는 귀족 청년 파브리스가 자신의 우상인 나폴레옹을 흠모하며 워털루 전투에 나서는 내용이다. 책 뒷날개에서는 마치 우리의 주인공이 이 대회전의 중심부에 있는 듯한 홍보성 문구를 늘어놓지만, 고작 이 싸움의 주변부에서 돈키호테처럼 허세를 부리는 우스꽝스러운 참전기일 뿐이다. 마치 임권택의 『취화선』에서 조선말기의 평민 화가 장승업이 일제의 침략이나 동학농민전쟁 등 시대의 대사건을 피상적으로 스쳐 지나가듯 파브리스는 워털루 전투의 주변부를 스쳐 지나갈 뿐이다. 이와 비교해, 스탕달(1783~1842)과 동시대인으로서 워털루 전투를 그 중심에서 다룬 작가는 빅토르 위고(1797~1885)다.  스탕달과 달리 위고는 나폴레옹 전쟁에 직접 참여하지 않았지만, 『레 미제라블』에서 백과사전적 지식과 서사시적 표현으로 이 대회전의 전모를 드러내고 있다.   

스탕달은 호평받는 고전 작가로 자리매김해 있는듯 하나, 내가 보기엔 당시엔 통속 작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탈리아 귀족사회의 로맨스와 정쟁으로 얽히고 뒤섞인 이야기는 오늘날의 통속 사극가 뭐가 다를까. 재미는 있지만 『레 미제라블』을 읽었을 때의 감동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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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둔함 대 상상력

문학 Literatur 2010. 2. 1. 08:54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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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바르디아 베네치아 공국의 그리앙타를 빠져나와 숲속에서 모르는 하인에게 말을 빼앗으면서 위험하게 행동한 파브리스를 꾸짓으며 모스카 백작이 하는 말 :

"악마에게 죽임을 당하기보다는 악마를 죽이는 편이 낫다"

스탕달, 원윤수/임미경 역『파르마의 수도원』1(민음사, 2008), 257. 

"다소 우둔한 인간이라 하더라도 주의깊게, 늘 신중하게 행동한다면 상상력이 풍부한 자들을 이겨내는 쾌감을 흔히 맛볼 수 있는 법이지. 나폴레옹이 아메리카로 달아나는 ㅣ 대신 신중한 존 불[전형적인 영국인, 즉 웰링턴 장군]에게 항복했던 것은 그의 풍부한 상상력이 낳은 오류였어. 존 불은 계산대에 앉아 테미스토클레스를 인용한 나폴레옹의 편지를 보고 몹시 웃었지. 어느 시대나 결국 비천한 산초 판사가 숭고한 돈키호테를 이기는 법일세."

상동, 260-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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