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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에서 강치무, 강천동, 강재필로 이어지는 3대는 한반도 100년의 역사를 관통한다. 조부는 일제 강점기에 밀양에서 연해주로 넘어가 광복군 활동을 펼치다 '자유시 참변'이라는, 러시아측에 의한 대한독립군의 몰락으로 일본군에 검거됐다가 해삼위(블라디보스토크)의 생체실험 731 부대 초병 보조원으로 일하게 된다. 여기서 알게된 조모 김덕순과 연을 이뤄 강천동을 낳고, 해방 후 조모의 처가인 두만강변 도시 회령에 정착하려 하지만, 일본군 부역에 대한 눈총으로 밀양으로 낙향한다. 해방 후 영남일대에도 거세게 일어난 좌우 갈등의 과정에서 강치무는 좌익활동에 가담해 빨치산 활동에 전력함으로써 자신에게 드리워진 일제 부역의 그림자를 지우려 하지만, 한국전쟁이 일어나 영남 일대의 좌익에 대한 검거 열풍(보도연맹 사건)이 거세게 일자 결국 경찰서에 있는 친가의 도움으로  거제도의 중공군 포로수용소 통역관으로 일신을 건사하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낚시질 등으로 세월을 보내다 생을 마감한다.  이 소설은 또한 일제 하의 특정시기 오점을 간직한 이 독립군 전사의 후예들을 통해 현대사의 이면을 비추는데,  강천동을 통해서는 박정희 시대 경제 발전 계획에 따라 건설된 산업도시 울산의 형성과정을 밀양과 같은 농촌에서 유입된 빈곤층의 관점에서 보여주며, 강재필은 시대의 변화에 몸을 맡겨 격렬히 부침을 거듭하던 부친의 학대에 몰려 어두운 학창시절을 지나 범법자의 길로 들어선다. 소설은 이 삼대의 이야기를 기본적인 뼈대로 놓고, 막 출감한 강재필의 이동 경로에 따라 이야기를 시간적 연속에 구애받지 않고 전개된다. 

한국전쟁에 관한 소설을 많이 남긴 작가답게 이 소설은 역시 한국전쟁, 그러니까 이 전쟁의 원인과 결과로 지목된 한반도 현실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아무래도 실화를 바탕으로 한 특정인, 그러니까 이 소설의 나래이터이자 주인공인 강재필의 이야기를 작가가 대필한 것이 아닐까 할 정도의 착각을 일으킨다. 그러나 강재필이 실제 인물이 아니더라도, 소설의 창작은 얼마든지 사실의 자료를 통해 이야기로 가공할 수 있는 것이며, 작가는 이런 점에서 탁월한 이야기 솜씨를 보여준다.  

전쟁이 일어나면 성인 남자들은 아군이든 적군이든 전선으로 몰려 가고 부녀자와 아이들, 노약층은 고향에 남거나 피난을 간다. 전쟁이라는 거대한 원심분리기가 가족을 갈갈히 찢어 놓을 뿐만 아니라 삶을 위한 굴육감을 안겨준다. 종전 후에는 살아가기 위한 생활 전선이 세대를 아울러 걸쳐진다. 생체실험부대의 끔찍한 고문을 운좋게 피하고 살기 위해 부역을 했다가 목숨을 건사한 조부에 이어, 아비는 산업화의 밑바닥 일꾼으로 나섰다가 장애를 입고, 자신이 받은 장애에 대한 보상심리와 범죄적 욕망이 결합해 또 다른 가족을 이룬다. 여기서 자라난 재필은 건강히 성장할 수 없었으며, 조울증을 평생 겪게 된다. 재필은 두번째 수감 생활에서 자신을 괴롭히는  조울증의 뿌리를 캐기로 결심한다. 이 뿌리에 바로 한반도민의 보편적 경험이라고 해야할 시대의 격동과 고통이 펼쳐져 있다. 일제강점과 반쪼가리 해방, 좌우대립,전쟁, 30년 이상 지속된 독재권력, 그리고 이명박. 숨가뿐 이 현대사의 고비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어느 라디오 광고처럼 기적같은 일인지도 모른다.    

이 소설에서 다소 특이한 점은, 현대사의 굴곡에 뒤얽힌 가족사라는 점에서 볼 때, 조폭과 연루된 강재필 주변의 신상 이야기는 만만치 않은 이 소설의 주요 서사를 이끌어가는 예인선 역할을 할 뿐, 이 소설의 주도적 흐름과는 무관한 이야기로 비춰지는데, 결말 부분  나회장과의 면담에서 이 두 사람의 엇갈린 가족사가 드러나면서 소설은 유기적 구조를 갖추게 된다.        

등장인물 : 강재필, 나상길 회장, 안나, 명희 누나, 영배, 최주임, 허군, 김부장 외 다수 

텍스트 : 김원일, 『전갈』(실천문학사, 2007, 초판 1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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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일의 『마당깊은 집』을 읽었다. 전쟁통에 피난 내려온 이북민과 전쟁의 상흔을 입고 온 외지인, 분단의 이념갈등으로 가장을 떠나 보내고 온 네 가구가 대구의 장관동 골목길에 있는 고택의 바깥 채 '마당깊은 집'에서 전쟁으로 황폐해진 삶을 이겨 나간다.  홀로 가족과 동떨어져 진영 고향의 선술집에서 불목하니를 하며 국민학교를 건성으로 졸업한 주인공 길남은 중학교 입학 시점에서 대구 어머니의 호출을 받고 가족과 합류하면서 대처 생활을 하는 데서 소설은 시작한다. 가장을 잃은 가족에게 장남은 가족의 역할을 대신해야 한다고 어머니는 길남에게 중압감을 준다. 추위를 막을 집과 끼니 때우기가 삶의 가장 우선적인 욕구로 점철되는 피난생활에서 교육의 중요성을 알지만 삶의 모진 현장을 헤쳐나가는 것이 급선무로 판단한 어미는 장남에게 신문팔이를 시킨다. 이것은 가사를 위한 결정이기도 하지만, 가장의 역할을 할 장남이 마냥 책상머리만 붙들고 있어서는 안된다는, 그래서 매일 도시락을 싸들고 행상으로 도회지를 떠돌아 다니는 상이군인 출신의 준호 아버지처럼, 가장은 아침 밥 숟갈을 놓자마자 밖으로 튀어나가야 한다는 책임의식을 어머니는 길남에게 신문팔이를 통해 훈련시키는 것이다.     

벌써 발발한지 62년이나 된 한국전쟁은 아직도 한반도의 인민에게 보편적 아픔의 기억으로 새겨져 있다. 분단현실, 갈수록 첩첩산중처럼 깊어져 가는 분단의 늪은 아직도 한국전쟁을 현재진행형으로 하고 있다. 전쟁은 인간을 비참하게 만들지만 그 전쟁의 참화 속에서도 꿋꿋하게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에서 희망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은 역설이다. 모두에게 어려운 그 시절이 인간의 소중함을 일깨운다는 점에서 전쟁은 적어도 소설의 소재로는 여전히 유효하고 중요한 동기이다.   

널리 알려졌지만 읽어보지 못한 작가의 글을 읽는 것은 또 하나의 신선한 재미를 준다. 장작에 쓰는 통나무 중에서 속이 단단히 응어리져 도끼날이 파고 들어갈 수 없는 지점을 말하는 '깡어리' 같은 용어는, 작가의 자전적 유년시절의 회고에서 온 기억의 산물이기도 하겠지만,  외국어처럼 새로우면서도 반갑다. 대구 사투리와 이북 사투리가 혼재된 마당 깊은 집의 풍경은 이 사회의 단면이면서 애절한 옛시절의 추억을 되새겨 주는 공동의 장소이기도 하다.  

출판이력 :  1988.1. 문학과 지성사 초판 1쇄,  1997.9. 초판 29쇄,   1998.8. 재판 1쇄, 2002.11. 보급판 1쇄, 2006.5.보급판 14쇄, 2008.10. 재판 10쇄. 

등장인물 : 길남, 선례누나, 어머니, 길중, 길수, 준호 아버지, 준호 엄마, 준호, 평양댁, 순화누나, 정태씨, 민이형, 경기댁, 미선누나, 홍규씨, 김천댁, 위채 주인 내외, 위채 노마님,  위채 성준 형제와 사촌, 위채 살림꾼 안씨, 황해도 수안군 삼정면 출신 장정 주씨, 한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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