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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일의 『마당깊은 집』을 읽었다. 전쟁통에 피난 내려온 이북민과 전쟁의 상흔을 입고 온 외지인, 분단의 이념갈등으로 가장을 떠나 보내고 온 네 가구가 대구의 장관동 골목길에 있는 고택의 바깥 채 '마당깊은 집'에서 전쟁으로 황폐해진 삶을 이겨 나간다.  홀로 가족과 동떨어져 진영 고향의 선술집에서 불목하니를 하며 국민학교를 건성으로 졸업한 주인공 길남은 중학교 입학 시점에서 대구 어머니의 호출을 받고 가족과 합류하면서 대처 생활을 하는 데서 소설은 시작한다. 가장을 잃은 가족에게 장남은 가족의 역할을 대신해야 한다고 어머니는 길남에게 중압감을 준다. 추위를 막을 집과 끼니 때우기가 삶의 가장 우선적인 욕구로 점철되는 피난생활에서 교육의 중요성을 알지만 삶의 모진 현장을 헤쳐나가는 것이 급선무로 판단한 어미는 장남에게 신문팔이를 시킨다. 이것은 가사를 위한 결정이기도 하지만, 가장의 역할을 할 장남이 마냥 책상머리만 붙들고 있어서는 안된다는, 그래서 매일 도시락을 싸들고 행상으로 도회지를 떠돌아 다니는 상이군인 출신의 준호 아버지처럼, 가장은 아침 밥 숟갈을 놓자마자 밖으로 튀어나가야 한다는 책임의식을 어머니는 길남에게 신문팔이를 통해 훈련시키는 것이다.     

벌써 발발한지 62년이나 된 한국전쟁은 아직도 한반도의 인민에게 보편적 아픔의 기억으로 새겨져 있다. 분단현실, 갈수록 첩첩산중처럼 깊어져 가는 분단의 늪은 아직도 한국전쟁을 현재진행형으로 하고 있다. 전쟁은 인간을 비참하게 만들지만 그 전쟁의 참화 속에서도 꿋꿋하게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에서 희망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은 역설이다. 모두에게 어려운 그 시절이 인간의 소중함을 일깨운다는 점에서 전쟁은 적어도 소설의 소재로는 여전히 유효하고 중요한 동기이다.   

널리 알려졌지만 읽어보지 못한 작가의 글을 읽는 것은 또 하나의 신선한 재미를 준다. 장작에 쓰는 통나무 중에서 속이 단단히 응어리져 도끼날이 파고 들어갈 수 없는 지점을 말하는 '깡어리' 같은 용어는, 작가의 자전적 유년시절의 회고에서 온 기억의 산물이기도 하겠지만,  외국어처럼 새로우면서도 반갑다. 대구 사투리와 이북 사투리가 혼재된 마당 깊은 집의 풍경은 이 사회의 단면이면서 애절한 옛시절의 추억을 되새겨 주는 공동의 장소이기도 하다.  

출판이력 :  1988.1. 문학과 지성사 초판 1쇄,  1997.9. 초판 29쇄,   1998.8. 재판 1쇄, 2002.11. 보급판 1쇄, 2006.5.보급판 14쇄, 2008.10. 재판 10쇄. 

등장인물 : 길남, 선례누나, 어머니, 길중, 길수, 준호 아버지, 준호 엄마, 준호, 평양댁, 순화누나, 정태씨, 민이형, 경기댁, 미선누나, 홍규씨, 김천댁, 위채 주인 내외, 위채 노마님,  위채 성준 형제와 사촌, 위채 살림꾼 안씨, 황해도 수안군 삼정면 출신 장정 주씨, 한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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