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제 : 모세의 유일신교의 정착과정에 대한 반복과 변주
출애굽 당시의 모세의 신과 가나안 정복기의 신(화산신)은 다를 수 있다는 가정. 이 가정에는 출애굽의 모세와 가나안 정복기 직전의 모세가 다른 인물일 수 있다는 의미도 포함(강성 모세와 온화 모세. 전자는 이집트의 실권자, 후자는 시나이 산 혹은 Quades의 미디안 제사장. 한편 아멘호텝기에 가나안땅은 이집트와 아르메니아의 전쟁으로 버려진 곳이었음). 즉 이집트에서 유래한 단일신교가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기를 통해 유일신교화 된 것. 여기서 중요한 역할은 선지자가 담당. 이들은 의례에 집중하던 성직계급과 모세의 계율에 저항하던 백성들 사이에서 가교역할을 하는데, 광야에서의 고난과 은총을 상기하며, 제사와 의례 대신 진리와 정의를 추구하는 삶을 강조한 것(바울의 징후).
유일신교의 정착에 대한 또다른 가정 : 이 새로운 이념의 확정에는 모세 외에도 그 추종자들과 계승자들, 유대 예언가들 등 시대를 달리하는 많은 사람들의 참여가 있었을 것. 그 확정시기는 바빌론 유수기로 보임. 즉 고대 이스라엘 왕국이 바빌론에 의해 붕괴되고 바빌론으로 포로로 잡혀간 시기(기원전 597년부터 60년간). 이 시기에 최고도에 달한 불행의 역사 속에서 희미해져 가는 모세의 경고와 요구가 전설적인 두루마리 발견이라는 형식으로 회귀되고, 선민관을 뚜렷하게 각인하는 유일신교의 확정이 이루어졌을 것(왜곡을 통한 강화)
이스라엘의 역사는 유일신교사 : 기)이집트에서 유래한 모세의 유일신교는 승)출애굽 이후 가나안 정복기에 유일신교의 초기형태로 다듬어 졌다가, 전)야훼에 대해 여전히 순종과 반항의 역사(유대왕국기)를 거친 후 결)아시리아와 특히 바빌론, 페르시아에 이스라엘이 시달리는 과정에서 선민관과 함께 절대화됐을 것.
모세의 종교에서 선민관보다 의미심한 규정 : 신의 형상을 만들지 말라는 것과 볼 수 없는 하나의 신을 숭배하라는 강제. 이는 감각에 대한 정신의 승리, 충동의 포기/유예(Triebverzicht). 티투스 황제에 의해 예루살렘 파괴 후 허락된 엄격한 토라교육, 욕망의 강렬함이 거대이념으로, 내적 근거로 대체충족된 것. 이런 대체충족의 쾌감기제가 Stolz로 작용(타민족에 대한 우월의식).
그리고 이런 정신의 승리는 바울에 의해 최고조에 도달. 원죄와 그 해소로서의 구원으로.
문제점 : 부친살해 후 부계사회에서 모계사회로의 변화에 대한 설명 부족. 어차피 권력은 아들들에게 분산되고 족외혼이 어떻게 모계권을 강화시키는가? 이후 모계사회로부터 부계사회로 돌아가는 것은 억압의 회귀로 설명됨.
https://youtu.be/TDMVtmI34-I?si=556j13bj3IvjSBi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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