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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고지전>에서 동부전선의 남과 북의 군대는 휴전 발효 10시간을 앞둔 상태에서 애록고지를 놓고 최후 결전을 벌인다. 휴전 소식에 살아 고향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기대에 충만해 있다가 최후 공격 명령으로 낙망한 인민군 부관에게 지휘관은 살아 돌아갈 줄 알았냐고 냉소를 한다.
지난 주말, 서울 도심의 보신각에서는 학생운동을 시작으로 줄곧 진보적 사회운동에 투신하다 심장마비로 돌연사한 알반 연대 대변인 권문석씨의 사십구재 추모식이 있었고, 울산에서는 현대자동차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270 일 넘게 지속되는 철탑농성을 지지하기 위한 희망버스와 이를 저지하기 위한 사측의 격렬한 충돌이 있었다. 죽음을 통해서 한 사회운동가의 헌신적 노고가 드러나고, 죽음을 불사하고 투쟁을 하는 현장은 어딘가 총력전의 양상을 보여준다.
개인적으로든 집단적으로든 자신의 모든 것을 던져야 무언가를 이룰 수 있다는 사회 분위기는 어딘가 병적이다. 지도상의 일진일퇴에 수 많은 생명들을 몰아 넣으면서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냉혈한들은 피눈물도 없는 자본으로 동화된다. 이것이 병의 진원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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