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이 유민의 이탈리아 상륙 후 예언에 따라 아이네아스는 라티니 왕의 공주 뤼비아와 결혼을 해서 로마 건국의 초석을 다지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건국신화라해도 남의 땅에 무단으로 들어가 평화적으로 기반을 다진다는 것은 이상적인 일이다. 이미 여러 신들과 앙키세스가 경고한 바 대로, 신들의 예언은 피로 얼룩진 전쟁을 치룬 후에야 실현될 수 있었다. 이런 점에서 예언은 아무리 정확할지라도 그 대가를 치뤄야 한다는 전례를 보여준다.
이미 사전에 신들의 예언을 받고 아이네아스의 사절단을 만난 라티니 왕은 '여성교환'을 통해 평화협정을 맺고자 한다. 그러나 그의 딸을 오래 전부터 구혼해 오던 정착 왕족들, 그 중에 투르누스는 강한 반감을 갖게 되고, 신들의 사주에 협정을 강탈로 몰고간 라티니 왕의 왕비 아마타가 트로이 유민과의 전쟁을 부추긴다. 후반부인 3부의 전쟁 장면은 그 표현에서 전쟁의 잔혹함과 부질없음을 보여주고(11권 53~54 : "이것이 우리가 고대하던 개선이고 귀향이란 말인가?"), 특히 일리아드의 트로이 전쟁 장면을 일부 옮겨 놓은 듯한 인상을 주지만 전반적으로 아이네이스 초반부의 긴장도에 비하면 떨어진다. 그도 그럴것이 아이네이스는 미완성작이기도 해서, 12권의 말미에서 쓰러진 투르누스의 호소에 흔들리면서도 그가 찬 팔라스의 멜빵을 보자 아이네이스가 돌연 칼로 내리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은 마치 영화 중반부에서 필름을 잘라 버리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일리움 진영에서 헥토르에 버금가는 영웅으로 그려지던 아이네아스가 로마건국의 신화적 존재로 그려지는 것은 베르길리우스만의 영감은 아닐지라도 한줌의 사실 내지 소문으로 견고한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것은 작가의 힘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