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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 바쁜 일들이 몰아치는 가운데 <신곡> 지옥편을 읽고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를 펼쳤다. 후자는 왜 이제야 이 책을 읽었을까 싶을 정도로 빠져들게 한다. 자신의 정적과 역사적 인물들, 위대한 철학자들을 지옥에 배치시키는 단테는 세계상에 대한 총체적 비평을 중세 말기라는 시대적 정황 속에서 서사시의 형식으로 하는 반면, 디킨스는 프랑스 혁명기의 구체적 역사 속으로 들어간다. 알리기에리 가문의 숙명을 받은 단테는 마치 현대의 마피아 조직과 다를 바 없이 잔혹한 복수극을 펼치는 피렌체 귀족들의 정쟁으로부터 눈을 돌려 천상으로 가고자 했는지 모른다. 몇 해 전에 <신곡>을 읽다가 지루해서 중간에 그만둔 적이 있는데,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조르바를 처음 만나기 전, 카잔차키스가 암송까지 할 정도로 애독한 <신곡>이라 기대를 했지만, 아무래도 번역본 상으로 이 작품의 진미를 맛보기는 어려울듯 하다. <신곡>은 라틴어가 아닌 순수한 이탈리아어로 저술된 최초의 작품으로, 단테가 라틴어에 대해 지방어(이탈리아어)의 우수성을 논한 <속어론>의 응용판인 셈이다. 혹시 세종은 자신보다 200 여년 앞선 단테를 알고 있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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