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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2.09.06 평택 반도체 현장 단상

평택 반도체 현장 단상

단상 Vorstelltung 2022. 9. 6. 18:50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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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사태가 발발하기 전 겨울부터 평택의 S사 반도체 현장에서 일하고 있다. 원래 이렇게 오래 할 줄은 생각도 못했는데 달리 여기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전국의 어떤 곳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이곳만큼 안정적인 공수가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하지만 오늘 태풍은 이 현장을 잠시 올스톱시켰다). 주 52시간 적용으로 이곳에서 50~60공수가 나오던 시절은 이제 전설이 되버렸지만 여전히 수장(칸막이)과 배관에서는 50공수 이상으로 구인광고를 내곤한다. 40공수만 나와도 사실 많은 것이며, 이 정도 공수면 기공이라면 월 700~800 , 조공이라면 월 500~600 정도를 번다. 40공수 이상이 나오려면 철야 8시간이나, 조출에 연장까지 혹은 주간에 야간까지 해서 중간 휴게시간 2시간을 빼고 하루 14시간의 노동을 일주일에 5일은 해야 한다(하루 2공수). 심지어 배관에서는 16시간으로 2.5공수를 광고하기도 한다. 일과 현장에 익숙해지면 적응할 수도 있지만, 20~30대 연령층이라면 모를까 40~50대 이상으로 건설현장에 처음 오는 분들이나 이 현장에 오래된 분들에게도 40공수는 쉬운 일이 아니다. 작업의 종류에 따라 노동강도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이곳에서 하루 2공수를 위해 14시간을 일한다는 것은 잠자는 시간 빼고는 온전히 하루의 모든 시간을 수만명이 우글거리는 이 현장에 투여하는 것이다.

얼마 전에 이천 현장에서 알게 된 한 지인과 서정리에서 술을 마시며 이런 대화를 했다. 유럽의 전쟁 여파로 반도체 수요도 예전같지 않은데 여전히 평택 현장에서 공수가 많이 나오는 것이 현장 인력들에게 꼭 좋은 일이 아닌 것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장시간 노동에 투입시켜서 공기를 단축시킬 수록, 그만큼 이곳의 일자리도 줄어들 것이라는 나의 주장에 그는 현재 공사가 시작된 P4에 이어 앞으로 P5, P6도 바로 이어질 것이라고 단언했다. 아직 P3는 1년 정도 남았고 P4는 앞으로 짧게는 2년 정도로 봤을 때, P5의 착공 여부에 따라 평택이 지금처럼 향후 5~6년까지 건설노동의 블랙홀로 일용노동자들의 메카자리를 유지할지 여부가 판가름날 것이다.

물론 공사가 끝난다고 해도 개보수 공사는 이어진다. 아직까지도 기흥과 화성의 S사 현장에서 꾸준히 구인이 일어날 정도로 건설인력을 투입시키는 협력업체들이 그곳에 상주해 있다. 예를 들어 전기의 경우, 펩이나 154에서 전기를 많이 소모하는 새로운 장비가 들어오면 전선을 새로 까는 식의 일들이 즐비해 있다. 하지만 이런 개보수는 평택의 신축현장만큼 많은 공수가 나오지 않는 점에서 일반공사 현장과 다를 바 없다. 단, 작업승인서류 대기 때문에 일반 현장 보다 실제 노동시간이 적긴 하다.

평택은 체불걱정이 없는데다 잔업 때문에 온다고 하지만 이 잔업이 얼마나 갈 것인가? 물 들어올 때 배 띄운다고는 하지만 이보다 중요한 것은 꾸준히 일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닐까? 마음이 조급해질수록 좀더 멀리 보는 시각도 필요해 보인다. 물론 꾸준히 더 많은 일이 필요한 분들의 절실함을 외면할 수 없지만, 주 4일 근무와 워라밸을 노래하는 시대에 밤에서 밤으로 이어지는 긴 일과는 동시대의 어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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