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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2.10.10 토마스 카우프만의 <종교개혁의 역사> 루터 편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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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가 생활이었던 독일의 근세 초기의 역사는 종교개혁의 역사다. 로마로부터 재정의 부분 독립을 달성했지만 이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신성로마제국은 영방국가들을 통합할 수 없었으나 이들의 이해관계와 맞아 떨어진 종교개혁 덕분에 프랑스와 같은 종교전쟁을 피할 수 있었는데 그 전제는 출판기술과 사법 장치였다. 이때 당시에 로마/제국/영방을 위한 세수의 작동이 행정 보다 교구에서 더 원활했다는 점은 종교가 삶의 전부였던 시대의 단면이다.



당사자가 예기치 못한 사건이 혁명적 결과를 초래한 대표적 사례는 루터의 95개 논제로 촉발된 종교개혁(기독교의 신구 분열)일 것이다. 루터는 교부와 성서에 근거해 교황의 권위를 비판한 것인데, 처음부터 면죄부 판매의 독일적 상황에는 루터도 모르던 내막이 있었는 바, 그것은 이 판매의 독일내 전권을 위임받은 대주교 자신이 성직을 매수하면서 발생한 엄청난 대출금을 면죄부 수입에서 충당하려는 이해 관계였다. 부패한 로마 교황청은 말할 것 없고.

종교개혁이 촉발되기 2년 전 보헤미아의 얀 후스가 이단으로 화형된 사건을 상기하면서 의도치 않게 일이 커지는 상황을 직감한 루터는 비텐베르크의 지지자들과 더불어 출판활동으로 평신도의 지지를 끌어 모으면서 교황청과 장기적으로 신학적 교회법적 투쟁을 벌일 수 있었다. 어쩌면 종교가 전부였던 시대에 로마와 종교적으로 분리하는데 최초로 성공한 업적은 종교가 별것 아니게 보이는 시대에도 중요한 귀감이다.

루터는 한창 로마교황청과 그 대리인들과 맞서 싸우는 시절 2년간 월 2회 정도로 성서를 통독하며서 일종의 텍스트 무장을 했는데, 이러다 보니 자신의 적수들이 히브리어나 그리스어에 대한 무지는 물론 성서도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을 간파하고 자신감을 가졌다. 이런 성서 이해의 바탕에서 라틴어를 넘어선 최초의 민족어 성서 번역, 루터 독일어 성서본이 탄생했다.

1521년 파문당한 루터에 의해 적그리스도의 온상으로 지목된 로마교황청을 분노한 농부가 도리깨로 치는 상황을 묘사한 팜플렛처럼, 종교개혁 진영 쪽에서 인쇄된 팜플렛이 그 반대진영의 것을 압도했는데, 우선 자비로 먼저 인쇄를 해야하는 인쇄업자로서는 교황지지자들의 팜플렛을 찍으면 손해를 보고 마는 수요상의 격차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루터에 대한 로마의 파문교서를 제후국에 하달하는데 실패한 젊은 황제의 무기력(카를의 보름스 칙령)에 더해 독일 전역의 여론은 종교개혁의 강력한 우군으로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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