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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변호란 것이 원래 법률상으로는 허용되고 있지 않고 다만 묵인되고 있는데, 적어도 묵인으로 해당 법조문을 해석해야 한다는 것에조차 논쟁이 있는 형편이지요...제일 중요한 것은 변호사의 개인적인 연줄이며, 거기에 변호의 주요한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어떤 점에서 보면 그들은[재판소 사람들] 오히려 변호사에 의존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비밀 재판을 고집하고 있는 재판 조직의 단점이 드러나고 있는 거지요. 이들 관리들은 주민들과의 관계가 없어요. 보통의 중간급 소송에 대해선 그들은 준비가 잘 되어 있습니다. 그런 소송은 거의 자동적으로 진행되며 가끔 한 번씩 떼밀어주기만 하면 됩니다. 그렇지만 극히 간단한 사건에 대해서도 그들은 극히 힘든 사건에 처한 것만큼이나 당황합니다. 그들은 밤낮으로 계속 법에 얽매여 있어서 인간관계에 대해서는 올바른 인식을 갖고 있지 못합니다. 그러한 사건엔 그런 인식이 꼭 필요한데도 말입니다. 그럴 때면 그들은 조언을 구하기 위해서 변호사에게 오는데 그들 뒤에는 사환이 평소에는 어디까지나 비밀로 해두었던 서류를 들고 따라옵니다...재판사건이란 어디서 왔는지 알지도 못한 채 그들 시야에 나타났다가 어디로 가는지 알지도 못한 채 계속 진행되어 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개별적인 소송 단계, 마지막 판결 그리고 그 판결 이유 등을 연구해서 알아낼 수 있는 교훈 따위는 이들 관리들에게 주어질 수 없습니다. 그들은 법으로 자기네에게 한정되어 있는 소송 부분만 취급할 뿐이고, 그 이상의 일, 그러니까 자기네 일의 결과에 대해서는 거의 소송이 끝날 때까지 대개 피고와 연결되어 있는 변호사보다도 적게 알고 있습니다...아주 단순한 사람까지도 소송에 발을 들여놓기가 무섭게 개선책을 생각하기 시작하고 다른 데다 쓰면 훨씬 낫게 쓸 수 있는 시간과 정력을 소송에 낭비해버리기가 일쑤입니다...비록 개별적인 일들을 개선할 수 있다고 해도-그렇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미친 짓입니다-그런 것은 기껏해야 나중에 다른 피고인들에게 약간 도움은 될지언정 당사자는 항상 복수만 생각하고 있는 관리들의 특별한 주의를 끌게 되어 너무나 큰 피해를 입게 되는 것입니다...이 거대한 법원 조직은 어느 정도는 항상 떠 있는 상태라는 것...한편 그 커다란 조직 자체는 그런 사소한 장애에 대해서는 다른 곳에서-전체가 연결되어 있습니다-보완을 하고, 더 잘 결속되든가 더 사악하게 되는 일은 없다 하더라도 본래대로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방해하지 말고 변호사에게 일을 맡겨 두십시오. 

카프카, <소송>, 이주동 역(솔, 2006), 123-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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