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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유추에서 인과법칙

칸트 Kant 2009. 12. 9. 15:24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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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이성비판』의 <선험적 분석론>은 우리의 모든 선천적 인식이란 순수한 오성자신의 능력, 곧 개념을 이용한 인식으로 이루어짐을 증명하려는 논의이며, 여기서 제시되는 오성의 4가지 원칙은 모든 자연법칙이 예외없이 종속하는 것이다(B198). 이때 원칙이란 종합적 판단의 최상원칙을 말하는데, 이들 원칙은 12범주를 4가지 판단형식으로 묶은 것으로 분량, 성질, 관계, 양상을 지시한다. 이중 분량과 성질에 관한 논의는 각각 ‘직관의 공리’와 ‘지각의 예료’에서 다뤄지며, 관계에 관한 논의는 ‘경험의 유추’에서, 양상에 관한 논의는 ‘경험적 사고 일반의 요청’에서 다뤄진다. 여기서 유추란 힘의 표출로부터 비롯되는 역학적 관계를 다루는 것을 의미하며(주1)
, 이중 제 2의 유추에서 다뤄지는 인과율에 관한 논의는 『순수이성비판』에서 매우 중요한 대목이면서도(주2), 많은 주석가들로부터 다양한 해석을 촉발시키는 논란의 대목이기도 하다. 여기서 나는 제 2 유추의 다양한 해석에 관한 부분은 생략하고(주3), 원전에 기반해 제 2유추에서 논의되는 인과율의 의미에 관해 다루는 것으로 제한한다.

제 2 유추에서 칸트가 제시한 인과의 원칙은 다음과 같다.

초판의 ‘산출의 원칙’ : "발생하는(존재하기 시작한) 모든 것은, 그것이 규칙에 따라 후속하는 것을 전제한다."(A189)

재판의 ‘인과의 법칙에 따른 시간적 후속의 법칙' : "모든 변화는 원인과 결과의 결합법칙에 따라 발생한다."(B232)

 미묘한 의미의 차이가 있는 초판과 재판의 원칙을 간단히 결합시킨다면, 발생하는 모든 것은 시간적 후속에 의한 인과의 법칙에 따른다고 제시할 수 있다. 여기서 시간적 후속이란 시간의 경과를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주의해야 한다. 왜냐하면 원인과 결과가 동일한 시간에 존재할 수 있는 사건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시간의 경과가 아니라 시간의 순서, 곧 역학적 선후로 이해해야 한다(B248-249). 왜냐하면, 칸트가 예를 드는 바처럼, 실내의 온기가 따뜻해지는 것이 난로 때문이라고 해도, 원인으로 간주되는 난로의 등장과 결과로서 간주되는 실내의 온기상승이 동시에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문제는 원인을 일으킨 실체로서의 힘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고, 원인과 결과의 선후관계, 즉 그 필연적 관계를 규정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시간순서의 규정, 곧 필연적 관계의 규정은 지각의 대상인 사건에 있는 것인가, 아니면 지각하는 주관에 있는 것인가? 칸트에 따르면 시간의 순서가 사건에 있냐는 물음은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사건 자체를 알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다만 내감을 거쳐 수용된 현상으로서의 사건만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주관에 있는 것인가? 엄밀히 말하면 이러한 시간의 후속에 대한 결정은 현상들의 개별 위치를 연속적으로 규정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오성의 선천적 조건에 기인한다(B210). 이러한 선천적 조건에 의해 비로서 타당한 경험적 판단이 가능하며, 여기서 타당성이라는 진리검증은 바로 인과관계의 규명에서 완료된 것이다. 그러므로 오성의 중차대한 능력은 바로 대상 일반의 표상을 가능케 하는 것이고, 이러한 표상은 바로 시간순서의 부여에 의한 인과관계의 규정으로 가능한 것이다.

 “모든 경험을 위해 또 경험이 가능하기 위해 오성은 필요한 것이다. 오성이 기여하는 첫째의 일은 그것이 대상의 표상을 판명하게 한다는 것이 아니고, 그것이 대상 일반이라는 표상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기여를 하는 것은, 오성이 현상에 또 그것의 현존에다 시간 순서를 줌에 의해서다. 왜냐하면 오성은 선행현상에 관계해서, 결과로서의 각 현상에 선천적으로 규정된 시간상의 위치를 승인하기 때문이다. 위치 없이는 현상은, 그것의 모든 부분들의 위치를 선천적으로 규정하는 시간 자신과 합치하지 않을 것이다.”(B244-245)(주4)

인과법칙을 주관적 심리의 연상물로 축소시킨 흄의 회의론에 대해 칸트의 인과론은 타당한 반격인가? 인과를 규정하는 오성의 능력도 주관에 있음으로 해서, 역시 주관적 심리로 격하될 위험은 없는가? 그러나 칸트의 주관은 직관의 선천적 형식인 내감, 아직은 순수하지 않은 종합 일반인 구상력, 선험적 통각이라는 삼중의 과정을 거쳐 선험적 종합판단을 수행하는(B197) 논리적 기관이지 심리적 구성물이 아니다. 즉 인과율은 오성이 대상에 부여하는 선험적 능력이다.(주5)


각주
1)유추의 의미에 관해서는 박정하, “칸트의 인과 이론에 대한 연구 : 『순수이성비판』의 ‘제2유추의 원칙’을 중심으로”(서울대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1998), p.27-28참조. 참고로 이 논문은 제 2 유추의 해석과 관련해 칸트의 인과론이 개별인과법칙을 문제삼지 않고 보편인과법칙만을 문제삼고 있다는 관점에서 칸트의 인과이론을 세밀히 다루고 있다.

2)칸트에게서 합리론의 독단이라는 선잠을 깨워『순수이성비판』의 작업에 매진케 한 근본적 동인은 보편적이고 필연적인 인과론을 부정한 흄의 『인간본성론』A Treatise of Human Nature(1739)이었다. 이러한 인과론의 부정은 비단 합리론의 위기를 초래할 뿐만 아니라 과학의 존립 자체를 흔들 수 있다는 점에서 이에 대한 방어가 필요했으며, 이런 점에서 인과론을 제시하는 제 2 유추론의 위상이 드러난다.

3)제 2 유추론의 해석에 관한 선행연구는 박채옥,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에서의 인과성과 자유”(전북대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1990) 3장에서 다뤄진다. 이 논문에 따르면 제 2 유추의 해석에 관한 논쟁은 벡크, 유잉, 클레베, 브로드, 타카르트, 버드, 스트로슨에서부터, 셀라스, 퍼트남에 이르기까지 폭넓다.

4)칸트, 최재희 역 『순수이성비판』(박영사, 1997), p203-204.

5)능력이라는 말은 오성의 타당한 작용과 아울러 오성의 정당한 권리도 지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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