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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 이율배반에서 인과성과 자유

칸트 Kant 2009. 11. 24. 17:58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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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가 전개한 이성의 체계적 비판작업은 도덕철학으로 귀결된다. 비록 이론이성에 대한 비판이 주를 이루는 『순수이성비판』(1781)에서 선험적 자유로 시발하는 도덕론의 윤곽이 드러나지만, 그의 도덕철학이 본격적인 궤도에 오르는 것은 『도덕형이상학정초』(1785)와 『실천이성비판』(1788)에서 부터이며, 그의 최종 저술인 『법이론의 형이상학적 단초들』(1797, 이것은『도덕형이상학』에 포함된다)에서 그의 도덕철학은 법철학으로 종지부를 찍는다(주1). 이미 57이라는 늦은 나이에 제 1 비판서를 내놓은 칸트가 고령이 될 때까지 도덕의 문제에 고심했다는 것은 그의 제 1 비판서가 도덕철학을 위한 예비작업의 성격도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 물론 『순수이성비판』은 단지 이런 식으로만 한정할 수 없을 정도의 인식론적 중요성과 아울러, 학의 보편성과 필연성을 담보하기 위한 문제의식도 지닌 저서다. 이 저서에 한정시켜 칸트의 도덕론에 관한 유력한 주제를 든다면, 이율배반의 대립쌍처럼 ‘자연과 자유의 문제’로 풀어갈 수 있다. 여기서 자연은 인간 주관의 두 형식인 감성과 오성의 작용에 의해 이해된 자연이며, 자유는 인간 주관의 경험을 벗어나 있는 개념으로서 이성에 의해 다뤄지는 자유이다. 그렇다면 왜 자연과 자유의 문제가 아니라 인과율과 자유의 문제가 논제가 되는가? 자연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선험적 분석론의 제 2 유추에서 드러나는 인과율 뿐만 아니라 실체성과 상호성 등 다른 범주들도 필요하지 않는가?  

칸트가 수학과 자연과학의 명제에 관한 판단에 새롭게 도입한 선험적 종합판단(주2)이란 개념은 형이상학(주3)의 명제에서도 사용된다. 따라서 제 1 비판서에서 다루는 선험적 종합판단에 관한 논구는 곧 수학과 자연과학 뿐만 아니라 도덕 일반에 관한 논구로 확장된 것이다. 비록 칸트의 철학에서 현상계인 자연의 세계와 가상계인 도덕의 세계는 엄격히 구분되는 관계이지만 두 세계의 이해에는 선험적 종합판단의 형식이 사용되는 공통점이 있다. 즉 동일률적인 분석판단의 방식으로 이해되지 않고 발생론적인 선험적 종합판단의 방식으로 이해된 자연에서, ‘선험적’(transzendental)이란 논리적으로 경험에 앞서 경험을 가능케 하는 조건을 말한다. 이 조건은 주어진 질료를 시간과 공간이라는 형식으로 질서지우는 감성의 작용, 감성에서 직관에 의해 주어진 질료를 12 범주의 형식으로 질서지우는 오성의 작용을 말한다. 여기서 오성은, 감성의 직관으로부터 주어진 현상을 인식하기 위해서 범주를 사용해 판단하는 능력이다. 그런데 이렇게 오성에 사용되는 범주는 단지 자연의 대상을 인식하는 데만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도덕철학에도 그대로 사용된다. 이들 범주 중 인과율은 흄의 인식론적 회의주의에 대적하기위해 중시되는 범주일 뿐만 아니라, 또한 전혀 상이한 자연과 자유를 매개하는 고리의 역할을 하기 때문에 특히 주목된다. 여기서는 제 3 이율배반을 통해 드러나는 인과율과 자유의 문제를 보자.  

제 1 비판서의 선험적 변증론에서 칸트는 우주론과 관련된 선험적 이념(주4)의 4가지 이율배반을 다룬다. 선험적 변증론은 이성이 경험에 제한된 인식을 벗어난 문제를 다룰 때 빠지게 되는 모순을 보여주는 논의인데, 이런 모순은 4가지 이율배반의 형태로 제시된다. 제 1의 이율배반은 공간적 시초의 있음 또는 없음에 관해, 제 2의 이율배반은 세계 내에서 합성물을 구성하는 단순체의 있음 또는 없음에 관해, 제 4의 이율배반은 세계 내의 모든 것에 있어 궁극적 원인으로서의 최고 존재(신)의 있음 또는 없음에 관해 다룬다. 그리고 제 3의 이율배반은 세계에서 자유의 있음 또는 없음에 관해 다루는데, 여기서 자유의 대립항으로 자연이 설정되며, 이 문제를 다루면서 칸트가 제시하는 범주는 인과성(Kausalität)이다. 우주론의 선험적 원칙의 문제, 즉 주어진 피제약자에서 제약의 총체, 곧 무제약자에 이르는 계열을 다룸에 있어 인과성은 이성이 답할 수 있는 유력한 범주로 규정된다(B441). 그렇다며 제 3 이율배반에서 인과성은 어떻게 다뤄지는 알아보기 위해 제 3 이율배반의 정립과 반정립의 명제와 이에 대한 해석을 살펴 보자.  

정립
자연의 법칙에 따른 인과성은, 세계 전체의 현상을 도출시킬 수 있는 유일한 것이 아니다. 그러한 현상의 설명을 위해서는 자유에 의한 인과성이 요구된다.

반정립
자유란 것은 없으며, 세계내의 모든 것은 자연법칙에 따라서만 발생한다.

정립의 명제는 인과율만으로 자연법칙을 성립시킬 수 없음을 말한다. 왜냐하면 배진적으로 전제된 계열을 추적해 가는 추리가 무한히 진행된다면 원인상의 계열은 완료될 수 없기 때문이다(B472). 이에 반해 반정립의 명제는 이러한 자연법칙의 개시로서의 자유를 자연법칙으로부터의 해방으로(B475), 인과법칙에 대한 위반으로 규정한다(B474). 앞서 밝혔듯이, 칸트는 초험적인 문제를 다루는데 있어 이성이 빠질 수 밖에 없는 오류를 순수이성의 이율배반이라는 형태로 보여주려는 것인데, 이런 모순점이 그의 자유에 근거한 도덕철학을 정립하기 위한 초석으로 사용되고 있다. 즉 칸트는 이율배반을 통해, 본성상 경험 세계 밖으로 문제를 확장하려는 이성을 한계지우려는 계획을 회의적 방식으로 진행한 것이지만, 오히려 이런 방식으로 인해 초험적 이성의 본성에 활로를 열어 주는 여지도 남긴 셈이다. 왜냐하면 이미 반정립의 해석에서 칸트가 자유를 자연법칙으로부터의 해방(Befreiung)이라고 말한 점은 도덕의 문제가 자연법칙에 구속될 수 없다는 점을 예고하기 때문이다. 분명 우주론적 문제와 관련해 자연법칙의 인과계열의 시초에 자유가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은 결코 결정될 수 없는 문제이며, 어느 쪽으로 결정된다면 그것은 독단에 불과하다. 우주론에서 대두되는 자유의 문제와 마찬가지로 대표적인 순수이성의 선험적 이념인 영혼의 불멸성, 신의 존재 문제도 순수이성이 피할 수 없으나 증명불가능한 문제다. 그러나 도덕의 세계에서 영혼의 불멸성과 신의 존재와 같은 선험적 이념은 도덕적 행위의 촉진을 위해 요청되며, 자유라는 이념도 요청되기는 하지만 도덕을 위한 근거로도 주장된다.  

각주
1) 『순수이성비판』의 재판(1787년) 머리말에서 칸트가 실천은 경험의 한계를 넘어서려고 하면서도(B XXII) 자유의 무모순성(증명불가능하나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자연적 기계성과 양립 가능하다고(B XXIX) 서술한 점에서 칸트는 도덕론에 적극 가담하고 있음을 보인다. 또한 칸트는 『도덕형이상학』을 발표하기 30년 전인 1767년에 법철학 강의를 하였으므로 전비판기에 이미 도덕과 법철학에 대한 고민이 형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2)선험적 종합판단이란 종래의 분석판단과 종합판단을 아우르는 칸트의 독창적 개념이다. 수학적 명제의 경우(대표적으로는 ‘삼각형의 내각의 합은 두 직각의 합이다’) 종래에는 주어에 이미 객어의 의미가 함축된 분석명제로 인식되었지만, 칸트는 수학에서도 선험적 종합판단이 작용하고 있다고 봤다. 예를 들어 18세기 중반에 이미 알려진 비유클리드 기하학에서는 “삼각형의 내각의 합이 두 직각보다 작다”는 공리로도 모순없는 정리의 체계를 세울 수 있었다. 또한 ‘두 점 사이의 직선은 두 점 사이에서 가장 짧은 거리다’라는 명제의 경우 주어부에 해당하는 ‘두 점 사이의 직선’에서 술어부의 ‘두 점 사이의 가장 짧은 거리’라는 의미를 포함하지 않으며, 이 경우 직관의 도움을 받아야 비로서 술어부의 의미를 끌어낼 수 있다. 따라서 경험과 상관없이 보편타당하며(선험적), 술어부의 의미가 주어부에 포함된다고 볼 수 없으므로 (종합적) 선험적 종합판단의 명제가 된다. 이에 비해 형이상학적 명제(예를 들어 ‘인간의 본질은 자유다’)는 마찬가지로 선험적 종합판단의 명제이나 직관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이상 선험적 종합(synthetic a priori)에 관해서는 S.E.Stumpf, Philosophy : History and Problem(McGraw-Hill, 1989), p.304-306, 비유클리드 기하학에 관해서는 가라타니 고진, 『트랜스크리틱』, p.104 참조.

3)칸트에게서 형이상학의 의미는 경험가능한 대상의 세계 너머에 있는 것(영혼의 불멸, 자유, 신적 존재 등)에 관한 학을 의미하므로(A VII 참조), 아리스토텔레스가 원래 자연학 너머에 있는 학으로 규정했던 metaphysic의 의미와 크게 다르지 않다.

4)오성의 개념에서 발생하는 선험적 이념(transzendentale Ideen)이란 경험할 수 없는 것으로서(B377), 오성의 개념에서 오성의 순수한 개념이 범주이듯이 이성의 순수한 개념이다(B368). 그러나 선험적 이념은 범주와 달리 객관적 연역이 불가능하며, 이념에 합치되는 객관에 관한 관계를 가질 수도 없으며 다만 이성의 본성에서 도출된다(B3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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