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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1.16 범인(犯人) 의식, 다자이 오사무(1909-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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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間失格』을 어제 오늘에 걸쳐 읽었다. 책 뒤의 역자 해설이 뭔가 어설프지만, 수험생에게는 도움이 되나 보다. 분위기는 제롬 데이빗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을 연상시키지만, 호밀밭의  주인공만큼 당당하기는 커녕, 주늑들어 있고, 이를 감추기 위해 익살로 분장한다.  5번의 자살 시도 끝에 세상과 결별한 다자이는 전후 일본 문학의 존경받는 작가로 평가되는데, 이것은 자신의 작품세계를 그대로 따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데서 오는, 무사도적 행위에 대한 사람들의 외경도 한 몫을 한다. 이 점에서 가라타니 고진도 마찬가지다. 이 책의 부록으로 실린 『直訴』는, 교회에 다니지 않았지만 기독교에, 그 중에서도 공관복음에 심취했던 다자이 오사무의 면모를 살짝  보여준다. 예수가 더 망가지기 전에 예수를 처단하도록 유다가 고발했다는 창안은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에서도 보이는 모티브다. 다자이가 일말의 신앙이라도 있었다면, 젊은 시절 역시 퇴폐적 문학으로 이름을 날린 김승옥처럼 열렬 신자는 되지 않았더라도, 자살은 접지 않았을까. 다음 책을 봐야겠다. 

"마르크스 경제학에 대한 강의를 들었습니다. 저한테는 그 얘기가 빤한 얘기로 느껴졌습니다. 그야 그렇겠지만 인간의 마음에는 속을 알 수 없는 보다 더 끔직한 것이 있다. 욕심이라는 말로도 부족하고, 허영이라는 말로도 부족하고, 색(色)과 욕(慾), 이렇게 두 개를 나란히 늘어놓고 보아도 부족한 그 무엇. 저로서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지만 인간 세상의 밑바닥에는 경제만이 아닌 묘한 괴담 비슷한 것이 있는 것같이 느껴졌습니다. 그 괴담에 잔뜩 겁먹은 저는 소위 유물론이라는 것에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수긍하면서도 그것을 통해 인간에 대한 공포에서 해방되고 새싹을 보고 희망의 기쁨을 느끼거나 할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거의 초등 수학 비슷한 이론 연구에 몰두하고 있는 것이 우스꽝서러워서 제 익살로 [공산주의 독서] 모임의 긴장감을 풀어주려고 노력했습니다...좋아했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들이 맘에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반드시 마르크스로 맺어진 친근감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비합법, 저는 그것을 어렴풋하게나마 즐겼던 것입니다. 오히려 편했던 것입니다. 이 세상의 합법이라는 것이 오히려 두려웠고(그것에서는 한없는 강인함이 느껴졌습니다.) 그 구조가 불가해해서, 도저히 창문도 없고 뼛속까지 냉기가 스며드는 그 방에 앉아 있을 수가 없어서 바깥이 비합법의 바다라 해도 거기에 뛰어들어 헤험치다 죽음에 이르는 편이 저한테는 오히려 마음이 편했던 것입니다."

『人間失格』, 김춘미 역(민음사, 2008), 50-51.

호리키가 시즈코에게 빌붙어 사는 요조에게 찾아와 스승처럼 거들먹거리며 하는 말.

""그나저나 네 난봉도 이쯤에서 끝내야지. 더 이상은 세ㅣ상이 용납하지 않을 테니까."
세상이란 게 도대체 뭘까요. 인간의 복수(複數)일까요. 그 세상이란 것의 실체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무조건 강하고 준엄하고 무서운 것이라고만 생각하면서 여태껏 살아왔습니다만, 호리키가 그렇게 말하자 불현듯 "세상이라는 게 사실은 자네 아니야?"라는 말이 혀끝까지 나왔지만 호리키를 화나게 하는 게 싫어서 도로 삼켰습니다."

상동, 92-93.

"저는 교바시 근처에 있는 스탠드바 2층에서 또다시 정부같은 처지로 지내게 되었습니다
세상. 저도 그럭저럭 그것을 희미하게 알게 된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세상이란 개인과 개인 간의 투쟁이고, 일시적인 투쟁이며 그때만 이기면 된다. 노예조차도 노예다운 비굴한 보복을 하는 법이다. 그러니까 인간은 오로지 그 자리에서의 한판 승부에 모든 것을 걸지 않는다면 살아남을 방법이 없는 것이다. 그럴싸한 대의명분 비슷한 것을 늘어놓지만, 노력의 목표는 언제나 개인. 개인을 넘어 또다시 개인. 세상의 난해함은 개인의 난해함. 대양(大洋)은 세상이 아니라 개인이다, 라며 세상이라는 넓은 바다의 환경을 겁먹는 데서 다소 해방되어 예전만큼 이것저것 한도 끝도 없이 신경 쓰는 일은 그만두고, 말하자면 필요에 따라 얼마간은 뻔뻔하게 행동할 줄 알게 된 것입니다."

상동 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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