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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1.05.10 이 작가
  2. 2011.05.02 몸의 『면도날』외
  3. 2009.12.21 번역의 문제에 대한 한가지 방안

이 작가

문학 Literatur 2011. 5. 10. 09:03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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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하다. 제롬 데이빗 샐린져 이후 이런 작가가 있었다는 사실을 모른게 오히려 무밭에서 금광을 발견한 느낌이랄까.

"[5개월만에 맥그로힐 출판사를 퇴사하는 부편집자 스팅고에게 전 상관이자 편집자이던 파렐이 하는 말] 여기에 오 년만 있으면 회사의 충실한 하인이 되지. 십 년쯤 되면 화석이 되는 거야. 삼십 대에 벌써 돌처럼 굳어져 버려 아 ㅣ 무짝에도 쓸모없는 인간이 된단 말야. 자네가 그만큼 있으면 틀림없이 맥그로힐이 그렇게 만들고 만다고."

윌리엄 스타이런 William Styron, 『소피의 선택』1 Sophie's Choice(1979) 한정아 역(민음사, 2008, 1판 1쇄), 43-44면.

[파렐이 2차 대전에 해병으로 참전해 오키나와에서 숨진 아들 얘기를, 역시 동일한 전선에서 있었던 스팅고에게 들려주며 인용한 시]
"인간이 존중하는 모든 것은
 한순간이나 하루를 견뎌 낸다......
 전령의 외침과 군인의 발걸음이
 그의 영광과 힘을 소진시킨다.
 밤을 밝히는 불빛은 모두
 인간의 붉은 심장이 밝힌 것이다.
 (예이츠의 시집 『탑』에 수록된 시의 일부-옮긴이)

그러더니 그는 몸을 돌려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자네, 자네 안에 있는 모든 것을 글에 담아 봐." 그러고는 비틀거리며 복도를 걸어가, 내 삶에서 영원히 퇴장해 버렸다."

상동, 50-51. 

또하나 말하고 싶은 것은 번역. 원문을 안봐서 섣불리 단정할 수 없지만, 이 책은 이제까지 본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번역서 중에서  도정일의 『동물동장』과 더불어 가장 매끈하고 감각적인 번역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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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면도날』외

문학 Literatur 2011. 5. 2. 15:33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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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서머셋 몸의 『달과 6펜스』와 『인간의 굴레에서』를 흥미롭게 읽었던 기억을 떠올리면서 앞의 두 소설과 함께 그의 삼부작의 완결판이라는 『면도날』을 읽었다. 책 두께는 면도날을 무색해 할 만큼 두텁지만 그 제목은 매우 예리하다. 면도날을 그냥 넘기 힘들듯이 구원의 길이 험난함을 암시하는 제목이다.  이미 소설가로서의 입지와 영예를 획득하여 여유로운 중년을 넘긴 서머셋 몸은 그의 삶의 중반기에 알게된 주변 인물들을 십여년의 세월을 함께 관통하며 소설화시켰다. 래리, 엘리엇, 이사벨, 그레이, 소피, 코스티 등등. 주제나 소재는 앞의 두 작품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작가 스스로 이야기에 등장하면서 1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주변의 특정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서술하는 점에서 다르다. 소설은  작중 인물들을 관찰자 시점에서 다룬다 해도 주관적 관점을 탈피할 수 없으나, 이 작품에서 몸은 비교적 그가 다루는 주변인물들에 대해 애정과 냉정을 유지하면서 자아를 덜어내는 시도를 꾀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성공한 작가의 후일담으로 보일 만큼, 전작들에 비해 흥미와 긴장, 박력은 떨어진다. 시들어가는 작가의 굵직한 장편같다. 이 책과 함께 이청준의 『축제』를 빌렸었는데, 보다가 책을 덮고 싶어 졌다. 『눈길』만으로도 은유적으로 충만한 모정에 대한 형상화를 모친의 장례를 겪으면서 괜스레 이야기를 엿가락처럼 늘려 놓았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 소설은 임권택의 요청으로 동시진행형으로 영화화하기 위해 나온 독특한 태생의 작품이란 점에서, 설혹 이 요청이 작가에게는 덥석 물어재낄 미끼라고 할지라도, 그런 부연스러움이  작고한 저 시대의 명작가에게 누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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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의 문제에 대한 한가지 방안

주장 Behauptung 2009. 12. 21. 17:38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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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제기되는 번역에 대한 볼멘 소리가 여기 저기서 들린다. 오역을 정당화할 생각은 전혀 없지만, 옮겨주는 자의 수고없이 원문을 이해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다만 그 부실을 최소화하려는 열의와 결백을 바랄 뿐이다. 

어제부터 김병익이 번역한 조지 오웰의 『1984년』을 보고 있는데 억지스러운 한자어 번역이 눈에 띈다. Big Brother를 대형(大兄)으로, INGSOC(Englnad Socialism)을 영사(영국 사회주의)로 옮기는 번역엔 창의성은 없지만 사기성은 느껴지지 않는다. 제대로 된 한국말을 창안할 수 없다면 이런 불편한 번역이 오히려 안전한 것이다. 더욱 안전을 기하려고 한다면, 대역문고처럼 역문과 원문을 일일히 대조한 책을 출판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본다. 어느 정도 해당언어에 대한 지식이 있는 사람이 바로 일일히 대조할 수 있도록 한다면, 제멋대로 의역하거나 적당히 무지를 감추는 행태는 억제할 수 있을 것이다. 원문이라는 사실에 기반해 번역이라는 상상이 활개를 치면서도 비약하지 않는 적정선을 지키는 것, 그것은 원문대조 방식의 출판에서 기대할 수 있다. 어려운 일도 아니다. 전자북이 보편화된다면 더욱 손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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