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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2.09.18 반도체와 노가다 : 건설노동의 미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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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일단 남성 중 연령층으로 40~50대가 직장이나 자영업에 몸담고 있지 않거나 적정한 소득원이 없는 상태에서 최소한 3인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면 근로소득으로 가장 눈에 띄는 일 중 하나는 건설일일 것이다. 일당 용역으로만 쳐도 주 6일 월 26일 만근으로 오로지 일 15만원으로 계산하면 390만원, 세후로 원천징수 3.3% 떼면 377만원이다. 해당 업무에 아무 경력이 없더라도 최소한 이 정도의 벌이를 할 수 있는 일은 아마도 건설노동 외에는 없을 것이다. 그만큼 힘이 드는 것도 있지만, 사회적으로 건설일은 '노가다'로 천시되는 풍조도 있기 때문에 이 일에 뛰어드는 것이 용이한 것은 아니다. 젊은 시절 세계일주 여행을 위해서나 학자금을 위해, 또는 시험준비나 기타 등등의 이유로 잠시 힘든 노동으로 목돈을 마련하기에 적합한 일자리로 비춰질 뿐, 건설일에 계속 몸담고 있는 것은 직업적으로 뭔가 불안정해 보이는 면이 없지 않다. 아니, 그렇게 보이도록 되어 있다. 더군다나, 웬만한 일반 건설 현장, 특히 아파트 현장 일은 거의 20년 전부터 조선족이나 중국계가 현장을 '장악'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내국인의 입지가 좁아져 있다. 내 생각으로 이런 틀을 깨는 계기를 제공한 것이 반도체 현장이라고 본다. 물론 반도체 현장이 의도적으로 그렇게 한 것은 아니고, 반도체와 관련한 대내외적 시장상황과 한국 특유의 노동구조적 상황의 기묘한 결합이 그러한 결과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우선 한국의 노동구조 상황을 보자.

한국에서 대개의 성인이 공직이든 일반 기업이든 정년에 근접하기 전에 퇴직을 하면 거의 갈 곳이 없다. 코로나 시절처럼 저금리에 풍부한 유동성으로 부동산과 주식, 코인으로 돈을 버는 일은 경제적 자유를 꿈꾸는 직장인은 물론 퇴직자들에게 자본소득을 위한 유력한 경제수단으로 그려졌지만 현재는 그야말로 '쪽박'의 수단으로 전락했다. 이런 사람들을 겨냥한 갖가지 마케팅이 SNS에서 횡행하지만, 거의 교육 마케팅에 휘말리는 소비일 뿐 실질적으로 소득으로 이어지는 일은 여의치 않다. 장기간의 저금리 정책기조와 유럽의 전쟁으로 촉발된 인플레이션에 강공대응하는 미국의 고금리 정책은 신용이나 자본으로 소득을 창출하려는 일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사실 상식적으로 보면 이것이 맞는 것처럼 보인다. 어떻게 신용이 실물을 초과할 수 있는가? 분양원가 상으로 2억도 안되는 아파트가 어떻게 10억 이상일 수 있는가?

이렇듯 투자로 제 2의 인생을 위한 수단을 마련하기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정년 전 퇴직자는 물론 정년 후 퇴직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극히 희박하다. 아무리 인구소멸로 젊은 세대가 갈수록 줄어든다고는 하나, 취업시장은 청년층에 비해 퇴직자들에겐 매우 '좁은 문'이고, 그들에게 그나마 접근가능한 일들은 대개 경비와 같은 열악한 노동조건의 일이 대부분이다. 소득과 직결된 전문적 소양을 갖춘 정도에 따라 상황은 달라질 수 있지만, 나이가 들수록 이런 경향은 희박해지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점에서, 한국의 반도체 현장이 민간 차원에서 공공근로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도 보인다. 물론 원청이 이것을 의도한 것은 아니고, 기술유출을 염두한 내국인 고용과 한국적 노동상황이 이런 현상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건설노동에 아무런 경험이 없더라도, 한국에서 그나마 상대적으로 더 안전하다고 할 만한 대기업이라는 1군 건설 현장에서 50대에서 50대 후반까지도 결코 적지 않은 급여를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된다는 것은 분명 고무적인 일이다. 이것은 더이상 '노가다'가 아니다. 삶의 절실한 수단을 제공하는 일이 어떻게 하찮게 들리는 '노가다'일 수 있는가?

향후 반도체 시장상황에 따라 현재의 노동상황이 바뀔 여지는 얼마든지 있겠고, 보조자의 역할로 요식업에 파고들고 있는 AI 기술이 건설노동으로 확대될 날도 멀지 않아 보이지만, 이런 일이 비단 건설노동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의사나 판사도 필요없는 시대에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일이 아닐지도 모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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