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그때까지 나는 양선생님에 관해 아무런 정보도 없는 상태였고 함께 수업을 듣는 학생들도 비슷했을 것이다. 이 수업에는 30명 정도가 들어왔고 이 중에는 다른 과 학생들도 꽤 있었는데, 아무래도 당시로서는 사회철학이 운동권 학생들의 관심과목이었던 사정도 있었다. 비록 3시간 통강으로 묶여진 첫 수업 후 빠져나간 학생들도 있었으나 대부분의 학생들이 양선생님의 엄청난 학식과 명료한 강의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음은 분명하다. 이 수업에서도 평가를 위해 중간, 기말고사 시험 따위는 없었고 여러가지 텍스트를 놓고 공동과제물 1건과 개인과제물 2건을 제출하는 것이 전부였다. 대학원 시절부터 서로 알고 지냈다는 두 분의 성향은 이런 점에서 일치하는 면모도 있었던 것이다.
이후 몇 년이 지나는 사이에 나는 장선생님의 수업으로 역사철학과 주제중심철학을 듣고 학부 졸업논문 지도를 장선생님한테 받았다. 이때 나의 졸업논문 내용의 절반에 해당하는 분량의 근거 텍스트는 당시 장선생님의 철학과 대학원 수업에서 다뤄진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의 <계몽의 변증법>이었다. 학부생인 내가 직접 대학원 수업을 들은 것은 아니고 이 수업을 듣는 대학원 형들로부터 관련 정보를 듣게 된 터였다. 이때 대학원에서는 한창 하버마스의 텍스트가 다뤄지고 있었고, 이에 관한 논문들이 생산되고 있는 시기였다. <계몽의 변증법>은 하버마스가 <의사소통행위론>이라는 저서에서 자신의 이론적 단초로 삼기 위해 비판적으로 다룬 텍스트다. 당시 양운덕 선생을 통해 이성 비판적인 프랑스 현대 철학에 관심이 있었던 나는 <계몽의 변증법>을 읽으면서 이미 총체적 이성에 대한 비판이 비판이론 1세대에서 나오고 있다는 점에 충격을 받은 동시에 우군을 만난 느낌이었다. 그래서 나의 졸업논문의 주요 구도는 이 비판이론 1시대의 아포리한 저작물을 푸코의 저작과 접목시키려는 시도였다.
나는 논문을 준비하면서, <계몽의 변증법>을 온전히 원서로 읽겠다는 헛된 야망을 품고 논문 준비를 위해 장선생님의 연구실을 수 차례 찾아가야 했다. 갈 때 마다 나의 계획은 변경되었다. 글 자체도 쉽지 않은 상황에서 원문에 달려드는 것은 정말 암호문 해독과 다름 없었다. 원서로 읽으려던 계획은 결국 번역본으로 대체되었고, 나의 계획변경에 장선생님은 걱정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결국 어떻게 논문은 작성해서 제출했고 이 논문에 관한 장선생님의 평가는 논문 자체의 설득력 없는 연결구조와 한정된 근거문헌에도 불구하고, 서문과 논문의 구도에는 긍정적 이었다.
학부 졸업 시점을 전후로 나는 이 논문을 들고 양운덕 선생의 세미나 팀에 참여하기 시작했고, 다른 학교의 철학과 대학원에 가기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