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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PD수첩은 이 사회가 38살 노숙인 홍씨의 삶을 어떻게 뭉개버리는지 보여줬다. 빈농의 홍씨 가족이 화전에서 밀려나 도시로 뿔뿔히 흩어져 어떻게든 살아보려 애를 쓰는 과정에서, 초등학교 졸업 후 가난으로 중학교 진학을 포기해야 한 홍씨는 청소년기를 갖은 노동으로 혹사하다가 청년기에 도시의 공장에서 어느정도 자리를 잡지만, 공장이 부도나고 사장이 홍씨의 명의를 도용해 카드빚 2천만원을 물리게 하자 홍씨의 삶은 벼랑끝으로 몰린다. 서민에게도 부담되겠지만, 삶의 기반이 극도로 취약한 사람에게 카드빚 2천만원은 극복할 수 없는 수렁이었다. 장기간 노숙으로 병을 짊어진 홍씨가, 고향 인근의 도시에서 기초생활수급권자로 월 30만원의 수입과 폐지수집으로 근근히 혼자서 생활을 이어나가는 아버지를 찾아 갔을 때, 이 부자의 만남은 오래 가지 못했다. 미혼의 부양 의무자가 있는 것으로 확인되면 아버지가 기초수급권자에서 제외되기 때문이다. 죽어가는 아들을 보면서 아무 것도 해줄 수 없는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아들에게 해준 것은 치킨 주문이었다. 서울에서 홍씨는 기초생활수급자가 되려고 했으나 근로능력이 없음을 증명할 수 없었다. 이것은 사회가 공모해 한 사람을 죽인 것이 아닐까? 젊은 시절 갖은 유랑으로 떠돌아 다니다가 폐병으로 죽어가는 크눌프는 그래도 고향으로 가서 죽을 수 있었으나, 이 노숙인을 맞이한 마지막 안식처는 차디찬 서울 도심의 공중 화장실 맨바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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