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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만의 사상자를 낸 한국전쟁을 대리전으로 봤다는 한강 작가의 식견은 국외적 관점에서 상당한 설득력이 있다. 어느 소설에서 황석영도 비슷한 시각을 보였다. 1940년대 초반 미영소 삼국의 불안한 동맹은 나치 독일을 무너뜨리는데 단결했지만 동아시아를 집어 삼킨 일본의 문제에서는 균열을 드러냈다. 스탈린은 이미 미국이 일본의 목줄을 쥐고 숨통을 끊으려 하기 전부터 숟가락을, 그것도 150만이라는 병력을 투입하면서 만주와 사할린, 쿠릴열도, 그리고 조선에 대한 야욕을 뻗치기 시작했다. 사할린과 쿠릴열도는 제정 러시아 때 일본에 빼앗겼었던 것이라 탈환의 기회이기도 했다. 당시의 재래전으로 일본을 완전 패망시키려면 1949년 까지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이는 상황에다, 소련이 극동아시아에 깊히 개입하는 것에 미국은 당황하고 다급할 수 있었다. 한국전쟁은 이런 스탈린의 극동 전략의 일환으로 시작됐고 스탈린의 죽음으로 끝났다. 손안대고 코를 풀려고 했던 건 소련이고 여기에 휘말린 것이 한국과 중국, 연합국이다. 한국전쟁 발발 전 남북의 관계가 긴장국면에 있었다해도 결국 전쟁으로까지 폭팔하는 데에는, 김일성의 결단에 영향을 미친 소련의 그림자가 너무도 짙다.
반제국주의를 표방했지만 사회제국주의로 나간 소련의 이 우상은 푸틴에게 깊은 영감을 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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