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 일이 있어 프랑크푸르트에 갔다가 일박을 하는 김에 시내를 좀 돌아다녔다. 두 달 전 프랑크푸르트에 왔을 때 마인츠 강 일대만 가봤을 뿐 푸랑크프르트 대학은 못가봐서 이번에 꼭 가보고자 했다. 중앙역에서 멀지 않은 곳이라 걷다가 숙소에서 받은 일일 교통권으로 버스를 타고 몇 정거장 더 갔다. 대학에 들어가는 남문 안내판에 아도르느 기념공간 표시가 바로 나와 있었다. Denkmal 이라 해서 상당히 큰 구조물로 생각했는데 막상 가보니 3평 정도 되는 공간에 아도르노가 쓰던 의자와 책상, 그리고 이 위에 놓인 노트, 저서(부정의 변증법?), 메트로놈을 에워싼 유리박스로 된 소박한 공간이었는데, 계속 쳐다보고 있으니 마치 아도르노가 천상에서 내려와 앉아 있는 듯한 묘한 기분도 들었다.
대학을 나와 숙소로 걸어가면서 한 작은 공원을 지났는데, 공원화 사업중 우연히 발견된 작은 망루와 범상치 않은 원형 동상이 인상적인 이곳은 로스차일드 가문이 19세기 처음으로 독일에 대저택을 마련한 부지였다. 현대적인 고층 빌딩이 마치 서울같은 기분을 들게하는 거리를 지나 중앙역 근처 숙소로 가는 길 모퉁이에 있는 펍에 들어갔다.
바에는 주로 나이든 남성들이 혼자서 술을 마시고 있었고 주변 테이블에는 일행과 함께 온 손님들이 있었다. 맥주를 시키고 마땅한 자리가 없어서 일단 서서 기다리는데 바에 앉아 있던 한 50대 남성이 옆에 앉으라고 자리를 정리해 줬다. 시가를 피우며 쿠바 음악에 맞춰 흥얼거리는 이 남성과 음악에 관해 영어로 몇마디 얘기하다가 이런 저런 대화를 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52년째 살고 있으며 디자이너로 일하는, 율 부르너를 닮은 이 분과 헤어질 때 따로 연락처를 교환하지 않았지만 이 술집에 또 오게 된다면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다음날 일정을 마치고 돌아갈 때 전날의 ICE 고속철이 아닌, 일종의 완행열차인 IC를 타고 가는데 열차 시간이 지연되고 난방이 제대로 되지 않는 불편을 보니 승객이 텅텅 빌 만 하다. 얼마전 기사에서 잠깐 봤는데, DB에서 정부에 상당한 재정지원을 요구한 것으로 기억난다. 거의 다 도착할 때 쯤 독일 온지 며칠 안된 한 베트남 대학생이 마치 나도 독일에 온지 얼만 안된 사람으로 보였는지 친절하게 나에게 뭔가 설명해 주려고 애썼다. 늦은 밤, 플랫폼에 내려 걸어가면서 이 친구에게 숙소는 있는지 물어 봤더니 이곳에 친구가 있다고 한다. 해맑은 희망이 퐁퐁 솟아나는 발걸음으로 캐리어를 끌고 간다. 역시 연락처를 교환하지 않았지만 같은 도시에 계속 있다면 마주칠 날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