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7월 주영 북한대사관에서 태 공사가 망명을 나서기 전, 이미 각종 뉴스를 통해 나는 그의 공사시절 인터뷰(특히 2015년 런던에서의 에릭 크랩튼 공연 때 김정철을 수행한 보도)를 관심있게 보아온 터라서, 그가 자식들을 위해 탈북했다고 했을 때 조금 놀라긴 했어도 응당 탈북자들, 그 중에서도 비중있는 인물도 어쩔 수 없이 핵완성과 철권통치로 치닫는 김정은 정권에 돌아서고 마는 정도로 생각했다. 하지만 이 책을 보면서, 물론 이런 회고록 성격의 글 자체가 자기 합리화의 기제로 활용되기 쉽기는 하지만, 솔직히 마지막 부분에서 눈물까지 글썽거렸다. 자식을 위하는 마음과 북한에 남아있어 이들의 탈북으로 일정한 피해를 볼 친지들의 고통과 충돌하는 지점은 30년 이상 지속된 북한 정권의 궤도이탈 현상을 반영하고 있다. 정상적인 국가라면 왜 이런 외교 엘리트 가족이 동족 국가로 망명을 하며, 이들이 망명을 했다고 남아 있는 친지들에게 고통을 가하는 것은 북한이 아직도 전근대적 국가 체제 아래서 인민을 폭압하고 있다는 손쉬운 반증일 뿐이다.
태 전공사는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60~70년대를 북한 정권의 황금기로 그린다. 경제도 정치도 최소한 이때에는 사회주의의 모델에서 크게 이탈하지 않았으며, 인민의 생활은 사회주의적 복지체계와 사람간의 정이 결합한 우애의 사회였다. 하지만 모택동 사후 중국이 개방경제로 전환하면서 진행된 모택동 비판을 보며 위기를 감지한 김부자는 김정일의 정권세습을 오랜 시간(20년 이상)을 걸쳐 준비했는데, 발단은 하향식이지만 상향식으로 정권이 김정일에게 흘러가는 것으로 인민이 느낄 정도로 안정적으로 이루어졌다. 이 책에서 흥미로운 점은, 이미 80년대 초반부터 전권이 김정일에게 넘어갔고 오히려 김일성이 허수아비에 불과했다는 지적이다. 김일성에게 올라가는 모든 보고가 암묵적으로 김정일의 보고를 거치도록 했기 때문이다. 그만큼 김정일은 준비된 인물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김정은은 김정일의 정권이양 방식과 매우 다르다. 유교적 방식의 계통을 여전히 중시하는 북한의 사회상으로 볼 때도 김정은에겐 아킬레스 건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것은 그렇다하더라도, 자신의 불안한 정권 세습을 안정화시키기 위해 자신과 자신의 형제들에게 적대적이었던 고모부와 그 관련 인물 다수를 숙청시키고 배다른 이복형제를 암살했으며, 잦은 핵실험으로 핵보유극 등극을 선언한, 성격은 포악스럽지만 예민한 지략을 갖춘 그가 개혁개방에 얼마나 나설 수 있으며, 이에 따라 광범위한 정보를 수용하게 되고 이미 20년 넘게 무너져온 배급체계 대신으로 암시장으로 삶을 이어가는 북한인민의 체제변혁 요구를 감당할 수 있을지 저자는 회의적으로 본다. 왜냐하면 그가 하인처럼 김씨가문을 위해 봉직한 세월이 보여주는 것은, 북한체제는 이미 이들 백두혈통이라는 가족들을 위한, 그리고 그 가족과 연계된 공로 귀족들을 위한 국가로 변질된지 오래됐기 떄문이다.
이 책의 제목에 나오는 '3층 서기실'은 노동당 중앙청사 3층 전체를 통칭하는 것으로 남한의 청와대 정도에 해당되며, 이 청사에서 남한의 안기부장과 외교안보수석이 화려한 영접을 받았다. 북한주민의 삶을 외면한 채 체제 연명에 골몰하는 컨트럴 타워에서 평화의 다리를 만들기 위한 시도가 이루어졌다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평창올림픽을 통한 북미회담 연계는 분명 문재인 정권의 성과이지만, 이것은 벽에 다다른 북한, 아니 북한의 정권 핵심이 너무도 노렸던 것이기도 하다. 누가 미끼이고 누가 낚아 챌지 두고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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