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역된 그리스로마 원전의 목록을 살펴 보다 소크라테스의 제자 크세노폰의 역사서(Kyrou anabasis 천병희 역, 2011년 1판 1쇄)를 보고 있다. 신화와 역사적 허구가 시적 형식으로 융화된 호메로스의 서사시 이후, 헤로드토스와 투키디데스와 더불어 아직까지는 신화적 배경이 작용하고 있는 고대 역사서의 효시로서, 페르시아 전쟁(기원전 492~448)과 펠로폰네소스 전쟁(기원전 431~404년) 이후 페르시아의 내전에 동원된 헬라스 용병대에 관한 회고록이다. 이 전쟁기 동안 강력한 용맹과 전술을 갖춘 군대로 각인된 그리스군은 용병으로 귀한 쓰임을 받는 가운데, 페르시아 제국의 대왕 아르타크세르세스 2세의 동생 퀴로스 2세(펠로폰네소스 전쟁기 스파르테를 적극 지원해 아테나이의 패배를 재촉)는 대왕을 치기 위해 비헬라스 부대와 함께 헬라스 부대 1만 1천명을 그리스 장군들을 통해 용병으로 은밀히 고용하여 뤼디아 지방의 사르데이스로부터 바빌로니아의 쿠낙사까지 진격해 가지만, 퀴로스가 대왕과의 전투 중 전사하자 헬라스 용병대는 대왕의 추격대 및 적대적 부족과 싸우면서 후퇴하는 험난한 퇴각길에 오른다. 퀴로스 전사 후 대왕은 반란의 주모자를 잃은 헬라스 용병대를 거짓 회유로 항복시키려 했으나 이들은 이에 맞선 것이다. 쿠낙사로의 진격 행군로가 약 2000 km, 고령과 바다를 헤치는 퇴각로가 약 4100 km에 달하는 15개월 간의 원정과 귀향의 기록이다(기원전 401년~399년). 서술 방식은 단조롭지만, 몰락해 가는 그리스의 운명을 고대 서사시의 기법인 정치적 수사(크세노폰을 필두로 한 장군들의 연설)로 재건하려는 의지가 행간 안밖에 보인다.
이들의 무력 앞에 순응하는 부족으로부터 증여와 시장을 통해 행군 중 필요한 물자를 조달하고 저항하는 부족으로부터 전투로 이들의 재산을 약탈하는 과정의 결과 퀴로스 용병대는 헬라스의 식민시인 뷔잔틴에 도착하나, 동족에게 애물단지 취급을 받고, 명예를 잃은 부대로 해산될 위기에 놓이지만 크세노폰의 주선을 통해 새로운 용병대로 조직된다. 여정상 역동적이지만 극히 단조로운 서술의 필자는 특히 급료문제로 갈등이 들끊는 용병대를 바르게 이끌어가는 지도자로 스스로를 그리면서 군대를 떠난다. 하지만 이후,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전쟁에서 스파르타를 도운 전력이 있던 퀴로스가 모집한 용병대에 가담한 혐의로 크세노폰은 아테네에서 추방되는 신세가 되고 만다. 정치적 문제로 고향에서 추방당하는 운명은 단테와 유사하지만 역사에 자신을 우뚝 세우려는 점은 단테에 비해 다소 과장스럽고 노골적이다. 호메로스의 서사시에 지배당한 시대의 한계이면서 사실로 보이려는 기록의 방식으로 이 시대를 넘어서려는 시도이긴 하지만.
*헬라어 아나바시스는 언덕으로 오른다는 뜻이라고 한다. 퀴로스 용병대의 공격 행군로가 페르시아의 내륙 고원으로 올라가는 형세를 타는 데서 나온 의미인데, 이런 제목을 본떠서 이후 로마시대에 <알렉산드로 아나바시스>(알렉산더의 동방 원정기, 알리아누스 혹은 자칭 小크세노폰 저)라는 역사서도 나오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