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의 전염성 : 크로이체르 소나타

문학 Literatur 2011. 1. 16. 15:48 Posted by 산사람
반응형

드디어 집의 수도관까지 얼려버린 냉혹한 한파의 주말 동안 톨스토이의 『크로이체르 소나타』를 다 읽었다. 교훈적 소설가답게, 이 책은 걷잡을 수 없는 욕망에 굴복한 인간의 한계를 보여 주고 있다. 육체적 사랑과 정신적 사랑은 <가정의 행복>에서 정신에 복속되는 것으로 화합할 수 있었지만 나머지 세 작품에서 타협불가능한 파국으로 몰리고 만다. 뒤의 세 편은 모두 톨스토이 만년의 작품이라고 하니, 결국 육체적 욕망은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해갈되지 않는 것이며, 그 완벽한 해소는 오직 죽음으로써만 가능하다는 쇼펜하우어의 염세적 사랑관을 톨스토이가 따르는 것으로 보인다. 마직막 작품인 <신부 세르게이>는 성욕 뿐만 아니라 명예욕과도 일전을 벌이고, 결국 방랑자가 된 사람의 이야기다. 한 때 스테판 카사츠키라는 촉망받던 장교였다가 수도사가 된 후 명성을 날린 세르게이는 보잘것 없는 평범한 인생이지만 마음착한 파센카를 만나면서 깨달음을 얻는다. 그것은 일상의 소박한 삶에 충실한 농군과 같은 삶이 가치있다는 것이다. 무시무시한 도덕가로서 욕망을 바라보는 톨스토이의 몇 몇 구절.

"평생을 한 여자 또는 한 남자만 사랑한다는 것은 양초 하나가 평생 탄다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크로이체르 소나타』, <크로이체르 소나타>, 포즈드니세프의 말, 183.

"아편 중독자나 알코올 중독자 또는 흡연자가 이미 정상적인 사람이 아니듯이, 자신의 쾌락을 위해 여자들과 관계를 맺은 사람은 정상인이 아니라 영원히 타락한 인간, 바로 호색한이 되는 겁니다."
상동, 193.

"그[예브게니]는 그녀[스테파니다]를 만질 수만 있다면, 그리고 자신의 감정을 그녀에게 전할 수만 있다면, 어디든 가까이에서 어둠 속에서라도 그녀와 마주치기만을 바랐다. 단지 사람들과 그녀에 대한,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한 수치심이 스스로를 억제하고 있음을 그는 알고 있었다. 그러한 수치심이 드러나지 않을 수 있는 조건들, 가령 어둠 속이나 동물적인 욕정이 수치심을 압도해 버릴 수 있는 만남의 조건들을 자신이 찾고 있음을 또한 알고 있었다."
<악마>, 368.

매우 아름다운 베토벤의 소나타 9번 Kreutzer를 잔혹스러운 결말을 향한 치정의 동력으로 삼는 것은 아무래도 가혹한 도덕심이다. 참고로 Kreutzer은 이 곡의 헌정을 받은 인물로 곡의 내용과 상관없지만, Kreuz는 독일어로 십자가, 교차점을 뜻한다. 평행하다가 어긋나듯 만나는 두 악기의 곡예가 포즈드니셰프에게는 간통으로 보였던 것이다. 

*소나타 9번은 다음 링크 참조 : http://blog.daum.net/okbon/509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