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표영삼의 <동학2: 해월의 고난 역정>(통나무, 2005)을 읽고 있다. 이필제가 주도한 변란에 연루되어 와해 위기에 놓인 동학 일당은 관군의 포위망을 피해 영서 일대의 산골짜기로 도망쳐 다니던 해월과 강수에 의해 재건된다. 이 재건의 구체적 방식은 각종 제례의 형식을 정하는 것이었다. 이는 유학의 제례를 준거로 하면서 이것의 의미와 형식을 개조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각종 명목으로 제례를 치루면서 동학의 도인들은 자연스럽게 모이고 앞날을 모의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 것이다. 즉 유학에서와 마찬가지로 동학에서도 제례는 정신적이자 물리적인 집결의 수단인 셈이다. 예배도 이와 크게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자신 안에 모셔진 한울님이란 거룩한 의식 전환이 너무도 거룩하게 집전이 되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천지 만고에 편재해 있는 신이 내 안에 있다는 것은, 무속신앙과도 관련이 있어 보인다. 동학혁명의 정신적 이념으로서 인간존중의 선언이란 면에서 동학의 의의가 있지만, 제례와 결합된 무속화된 양식은 곤혹스럽다. 샤머니즘의 주체화 내지 내재화가 인류 보편의 시원적 문화에 산재해 있다는 점에서 동학은 원시 종교로 회귀하려는 면도 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