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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휴가를 이틀간 내게 되어 오늘 예봉산에 갔다. 버스를 타지 않고 걸어서 도심역 뒤편의 고대농장을 거쳐 새재고개로 올랐다. 10시 30분쯤 출발해 오후 2시에야 내려 왔다. 고대농장은 젖소들이 50마리 정도 우글대는 축사를 제외하고는 그 넓은 농장이 대체로 방치되어 있다. 드넓은 늦여름의 햇살 속에서 쭉 뻗은 길을 걷고 있으니 올레길이 따로 없다. 사람이 지나다니다 보면 길이 되는 것인데 길을 만들고 사람들보고 지나가라고 하는게 올레길 사업의 현장같다. 한창 평탄한 길을 걷고 새재고개로 올라가려다 보니 벌써 지치고 배가 고팠다. 아무래도 혼자 산에 오르면 의지가 약해지기 쉽다. 그래도 몇 차례 주저 앉아 쉬면서 힘을 보강하고 고개 마루턱에 올랐다. 오르다 보니 자신감이 생겨 예봉산 정상까지 가려고 했다. 음식을 따로 싸오지도 않아서 그냥 운길산 역으로 넘어가는 하산길로 가서 역 근처에서 요기나 하고 집에 갈까 했는데, 더 힘든 길을 택한 것이다. 결국 예봉산까지 가지는 않고 그 중간에 있는 560 미터의 적갑산까지 간 후 하산했다. 적갑산에 세워진 이정표에 하산길이 표시되어 있기는 한데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가파른 길이었다. 오늘 산행하면서 그래도 몇몇 아저씨들과 아줌마들을 마주치긴 했는데 이 하산길에서는 아무도 마주칠 수 없었다. 기나긴 비에 산이 많이 상처를 입어서 뿌리까지 파헤쳐져 쓰러진 나무들이 많았다. 물은 바닥났고 배는 더욱 더 고팠다. 거의 비탈길에 가까운 적막한 산에서 벗어나니 도곡리의 연대농장 주변이었다. 처음 와 본 동네였다. 이 마을에서 어룡으로 넘어가는 곳에 산을 파서 만든 길이 있는데, 길을 위해 양편으로 깍인 구릉의 절단면이 시커먼 흙을 드러낸 채 그물망에 갇혀 있었다. 아무래도 비가 더 오면 붕괴될 위험한 길이었다. 목도 타고 배는 고프고 다리도 휘청거리는게 마치 도주하는 빨치산의 신세같다고 할까. 그 때 어룡마을이 끝나는 지점에서 막국수 집이 보였다. 그냥 지나치고 집에 가서 먹을까 하다가 돌아 섰다. 6,000원 짜리 물막국수를 먹었는데, 면을 다 먹고 시원한 국수물을 마시니 마치 내장이 청소되기라도 하는 듯 냉기가 전신에 울렸다. 땀을 흘릴 수 있다는 것, 시원한 막국수를 먹을 수 있다는 것은 일상의 소박한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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