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들5 : 스피노자의 신학정치 논고

책들 Bücher 2024. 6. 25. 01:03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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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inoza, Opera•Werke : Tractatus Theologico-Politicus•Theologische-Politischer Traktat, erster band, h.von G.Gawlick und F.Niewöhner(Wissenschaftliche Buchgesellschaft Darmstadt, 1979)

참조 영역본
The collected works of Spinoza, ed.&tran. by Edwin Curley(Princeton Univ. Press, 2016)


서문

인간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미신(superstitioni, Aberglaube)에 빠지는 것은 목표를 상실하고 불행에 빠졌을 때, 즉 공포와 희망 사이에서 흔들릴 때. s5  인간은 그들의 환상과 꿈, 그리고 유아적 몽상의 유산을 신의 응답으로 고수. 마치 신이 자신의 결의를 정신이 아닌 동물의 내장에 새긴 것인마냥. 미신이 일어나고 유지 및 부양되는 이유는 공포. 예를 들어 다리우스와의 승전 후에는 점술가를 부르지 않지만 스키타이와의 전쟁처럼 불리한 상황에서는 달리 행동한 알렉산더 대왕. s7. 따라서 예언가가 지배하는 것은 국가적 위기가 커졌을 때. s7-9

미신을 떠 받치는 것은 증오와 분노, 기만으로서 이것은 이성이 아닌 격정(affectu)에서 일어난 것. 미신만큼 대중을 효과적으로 지배할 수 있는 것은 없음(Curtius). 곤궁에 처한 민족을 현혹시키는 미신적 불안정성은 수많은 동요와 끔찍한 전쟁의 원인. S9

군주정의 비밀 : 종교의 이름으로 숨겨진 족쇄에 갇히도록 사람들을 기만과 공포로 유지하기. 그럼으로써 노예적 삶이 정당화됨. s9-11

이 논고에서 증명하려는 것 : 각자에게 판단하고 자신의 본위로 신을 찬배할 수 있도록 충분한 자유가 보장된 국가에서 살아갈 흔치 않은 행복이 있다는 것. 그리고 이 자유가 국가에서 경건과 평화에 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 s11

온갖 광신과 증오라는 인간적 착안으로 점철된 성서 해석과 적용으로부터 그것의 자연의 빛을 드러내기 위해 편견없이 자유로운 정신으로 성서를 해석하고 충분한 명증성이 없는 것은 어떠한 것도 받이들이지 않기. s15-17 이러한 성서해석을 위한 방법론적 질문 : 선지자란 무엇인가? 선지자의 권위는 관습과 참된 덕의 문제에 무게를 둘 뿐, 그들의 의견은 별 주목을 받지 못함. 히브리인이 신에게 선택받았다는 근거는 신이 그들에게 편히 거주할 영토를 주었다는 것이고, 모세의 율법이란 히브리인들에게만 적용되는 히브리 왕국의 법적 질서에 다름 아님. 이는 자연의 빛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과 상이함. 기적은 자연의 질서에 반해서 일어나는 것인가? 그것은 제일 원인으로부터 이해하려는 것 보다 더 명확히 신의 현존과 섭리를 증명하는가? 성서가 명확히 알려주는 것은 이성과 조화(Einklang)되지 않은 것은 없다는 것. 그런데 선지자들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단순한 일들만 알려 주고 s17 이를 통해 대중이 신을 경배하도록 함. s19

성서는 이성을 전혀 침해하지 않고 철학과 공동의 기반도 없지만 각자의 기반에 근거함. 이를 증명하기 위한 스피노자의 작업은 성서해석이 어떤 방식으로 수행되었는지 보여 주는 것이고, 성서에 대한 우리의 온전한 인식은 오직 성서 자체로부터지 자연의 빛으로부터 끌어올 수 없음을 보여 주는 것. 편견의 발생은 신의 말씀 자체 보다 성서에 관한 책들을 더 숭배한 것에 비롯됨. 계시된 신의 말씀은 특정한 책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신적인 정신의 단순한 개념에 있는 것인데 이는 선지자에게 계시된 것. 예를 들어 신께 온 마음으로 순종하여 정의와 사랑을 실천하라…인간의 지성은 지극히 다양하여 선호하는 의견도 각양각색이라 누군가에게 신성한 것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웃음거리임. s19 따라서 경건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모든 사람에게는 자신의 지성에 따라 자신의 믿음의 토대를 해석할 판단의 자유가 허용되어야 함 s19-21 각자의 자유를 어느 누구에게도 양도없이 스스로 수호하는 개별적인 자연권 vs 이런 자연권을 박탈한 절대 주권자. 그러나 후자의 경우처럼 인간이기를 포기하는 개별적인 자기방어권의 절대적 박탈은 국가에 큰 해를 끼치지 않고서는 일어날 수 없음 s21

대중(Vulgus)에게서는 공포와 마찬가지로 미신을 떨쳐낼 수 없음. 편견은 정신에 거머리처럼 달라붙어 있음. 이렇듯 완고한 대중은 이성의 인도를 받는 것이 아니라 칭찬이나 비난으로 몰고 갈 맹목적 질투심으로 끌림. 이런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음. 왜냐하면 이는 이성을 신학의 시녀로 만드는 일, 즉 자유로운 사유를 방해하기 때문. s23


1장 예언에 관하여

자연적 인식을 예언이라 할 수 있는데, 자연의 빛으로 인식하는 것은 신에 대한 인식과 그의 영원한 결의에 의존하기 때문. s31-33 하지만 이런 자연적 인식은 모든 사람들에게 공통된 것이기 때문에 본성상 희소하고 이질적인 것을 열망하는 대중은 이런 인식을 과소평가함. 그러나 확실성과 원천성에서 볼 때 자연적 인식은 예언적 인식에 뒤쳐지지 않음. 인간의 신체를 타고 났지만 인간을 넘어서는 정신을 지닌 예언가 s33

하지만 여기서 스피노자의 주된 관심은 자연의 빛이 아닌 성서에 관한 것. 자연적 인식의 한계를 넘어설 정도로, 신이 인간에게 계시하는 여타의 원인과 수단에 대한 검토. 왜냐하면 우리의 인식을 넘어서는 일에 관해 선지자가 구두나 문서로 전해준 것 외에 어디서도 알 수 없고 이 시대에 더이상 선지자는 없으므로 성서만이 유일한 단서. s35 여기서 예언이나 계시(초자연적 인식)는 성서에서 신이 한 모든 말씀이 아니라 명확히 선지자로부터 분명히 표현된 것이거나 그런 상황으로부터 나온 것에만 한정해야 함 s35-37

성서에서 신이 선지자에게 계시하는 방식은 말씀과 환상. 이것은 실제적이면서도 듣고 보는 선지자의 상상력 밖에 있는 것이거나, 깨어 있을 때에도 분명 그런 일을 겪었다는 상황에 선지자의 상상력이 놓일 수 있는 점에서 상상적인 것임. 예를 들어 야훼가 모세에게 율법을 선포하는 계시(출애굽 25:22)에 나오는 신의 음성은 유일하게 실제적인 음성. 따라서 모세의 예언은 선지자들의 예언과 구별됨. s37 사무엘이 들었다는 신의 음성은 상상적인 것으로, 그를 어린 시절 내내 가르쳤던 제사장 엘리의 음성으로부터 상상화된 것 s37-39

몇몇 유대인의 의견에 따르면 십계명은 신의 말씀으로 쓰여진 것이 아님. 출애굽기의 십계명과 신명기의 그것은 다름. 신은 단 한번 [모세에게 계시로서] 말씀하셨지만, 십계명이 바로 신의 말씀이 아니라 이스라엘인들이 그것으로 전하고자 했던 것. s39

이미지를 통한 신의 계시(역대상21장의 다윗, 요셉의 꿈), 이미지와 말씀을 통한 계시(여호수아, 이사야)는 성서에 수없이 많음 s43. 하지만 모세처럼 신의 음성을 실제로 함께 마주보고 얘기하듯이(출애굽33:11, 신명기34:10) 직접 들었다는 선지자에 대한 기록은 성서에 없음. 하지만 모세도 신의 얼굴은 보지 못함. 신은 인간의 감관이라는 수단에 의지하지 않고서도 직접 그 임재(Wesen)를 알릴 수 있으나[이미지, 말씀, 음성에 의하지 않는 것] 이와 같이 그런 [신적인] 정신의 상태에 도달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없음. 예수에게 말씀과 형상이 없이 구원을 위한  신의 계시가 임함. 그리고 마치 음성으로 모세에게 계시하듯이 예수를 통해 신은 사도들에게 계시됨. 따라서 예수의 음성은 모세가 들은 신의 그것과 동일하다고 볼 수 있음. s45

예수 외에는 누구도 상상력의 도움, 즉 말씀이나 이미지의 도움없이 신의 계시를 받을 수 없음. 따라서 예언을 위해서는 완벽한 정신(Geist)이 아니라 생생한 상상력이 필요

성서에서 선지자들이 신의 정신으로 충만해 있다고 할 때, 정신으로 번역되는 히브리어 rauch의 의미 : 원래 '바람'이라는 뜻인데, 이로부터 유래되어 다른 많은 의미로 사용됨 1.숨(시편135:17) 2.정기(Geist, air) 혹은 호흡(사무엘상30:12) 3.전항으로부터 유래되어 의지력 혹은 강함(여호수아2:11,에스겔2:2) 4.전항으로부터 유래되어 탁월함과 유용함(욥기32:8) s47 5.마음(민수기14:24,잠언1:23). 이런 의미에서 의지나 결의, 충동이나 자극의 뜻으로 사용(에스겔1:12,이사야30:1,29:10,사사기8:30,잠언16:32,25:28,이사야33:11)  rauch가 마음(Seele)을 의미한다면, 이는 마음의 모든 격정(Leidenschaften, passions)으로 사용됨. 오만에는 고양된 정신, 겸손에는 겸허한 정신, 증오와 우울에는 사악한 정신 등등 6.정신이나 마음 자체(전도서3:19) 7.바람을 일으키는 세계의 특정권역(에스겔37:9,42:16-19)

신과 관련되거나 신의 것으로 불리는 것에 관해 1.본성상 신에 속하고 신의 일부를 이루는 것. 신의 전능, 신의 전지(Augen) 2.신의 권능과 명령으로 다뤄지는 것. s49-51 궁창은 신의 전차이자 거주지. 아시리아는 신의 채찍..3..4..5..6..7

이상의 의미에서 유대인의 이해력을 넘어서고 당시 그 자연적 원인을 알 수 없는 모든 것이 신과 관련된 것. 예를 들어 폭풍은 신의 책망, 천둥과 번개는 신의 화살. 신은 바람을 가둬둘 수 있음. 따라서 기적은 신의 작품.  신이 그렇게 운행한 것으로 믿어짐. 모든 자연적인 것은 신의 작품이자 신적 권능으로 존립하고 작용함. 시편기자는 이런 의미에서 출애굽의 기적을 신의 권능의 작업이라 부름 s51

이로써 신의 정신이 언급되는 성서의 대목을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음. 신 혹은 야훼의 정신은 믾은 대목에서 맹렬하고 파괴적인 바람을 의미. "하나님의 바람이 수면 위에 운행했다."(창세기1:2) 고귀한 용기, 예외적 덕성…등등 s53

이로부터의 귀결 : "선지자가 신의 정신에 사로잡히다, 신이 그의 정신을 인간에게 불어 넣었다, 인간이 신의 정신으로 충만했다."의 의미는, 선지자란 특수하고 예외적인 특성을 가지며, 예외적인 심성의 강렬함으로 신심을 단련한다는 것. 더 나아가 그들은 신의 뜻, 사유를 지각 s59 신의 뜻을 지각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다른 민족들보다 스스로 더 고귀하고 생각하는 우리 히브리인들에게는 누구에게나 공통적인 자연적 인식은 낮게 평가됨. s59-s61 예언자들이 신의 정신에 사로잡혔다고 보는 것은 예언적 인식의 원인을 모르고 거기에 놀라 있기 때문. 모든 기적과 마찬가지로 예언적 인식은 신으로, 신의 인식으로 돌려짐

결론 : 예언자들은 상상력의 조력으로만, 즉 실제적이든 상상적이든 간에 말이나 이미지라는 중개를 통해 신의 계시를 받았음. 성서에서 이외의 다른 중개는 찾을 수 없음. 여기에 어떠한 자연법칙이 있는지 알 수 없어 단지 신의 권능으로만 보려는 것은 자연적 원인을 무지의 영역에 남겨 두는 것. 하지만 예언적 인식의 원인에 대해 알려고 할 필요가 없는 것은 성서를 통해서만 확증을 끌어내려고 하기 때문. 마치 자연에서 주어진 사실처럼. s61 우리의 모든 자연적 인식이 기반으로 삼는 원리와 개념으로부터 보다는, 인간의 이해력의 한계를 넘어서는 말과 이미지로부터 더 많은 이념(Ideen)이 형성됨 s61-63 예언자들이 거의 모든 것을 비유와 수수께끼로 지각하고 가르쳤으며 모든 정신적인 것을 육감적인 것으로 표현했던 이유가 이제 명확해짐. 이것은 상상력의 본성에 일치.

상상력은 무한정적이고 동요하기 때문에 예언은 예언자에게 오래 머물 수 없고 더우기 이것은 매우 극소수의 사람들에게만 아주 드물게 일어남. 이로부터 제기되어야할 질문 : 예언자들은 정신의 확증된 원리로부터가 아닌, 상상력의 조력으로만 파악한 것을 어떻게 확신하게 되었는가? 성서에서 예언자들의 확신에 관해서 무엇을 말하는지에 관한 문제 s63


2장 예언자들에 관하여

전장에서 알 수 있듯이 예언가들은 어떤 완벽한 정신이 아니라 생동적인 상상력만을 부여받음. 지혜가 출중한 솔로몬이나 기타 현자들(Heman, Darda, Kalchol)은 예언가들이 아닌 반면 아브라함의 여종 하갈은 예언의 재능을 받음. 대체로 상상력이 지배적인 사람은 순수한 오성인식에 적합하지 않음. 반대로 오성이 우세하고 잘 교육받은 사람의 상상력(Vorstellungskraft)은 더욱 세련되고 억제, 통제됨으로써 오성과 뒤섞이지 않음. 따라서 자연적이고 정신적인 것에 관한 지혜와 인식을 예언가들의 책에서 찾는 것은 잘못된 방법. 미신은 참된 학문과 참된 삶을 원하는 이들을 증오 s65

예언이 빗나가는 이유는 상상력과 개별 예언가의 기질 때문만이 아니라, 그들을 지배하는 직관 때문이기도 하기에 예언은 예언가륻 더 능숙하게 하지 못함 s65-67

예언의 확실성에 관해 : 단순한 상상력은 본성상 명석하고 판명한 이념과 달리 확실성을 띄지 못하며, 놓여진 사태(Ding)에  확실성을 부여하기 위해서 상상력에는 필연적인 어떤 것, 즉 이성에 부합한 사유가 부가되어야 한다. 그래서 예언가들은 신적 계시의 확실성을 계시 자체를 통해서가 아니라 [상상력에 의존하는, 따라서 확실성을 담보할 수 없는] 이런저런 표적을 통해 증거한다. 예를 들어 신의 언약을 듣고 표적을 요구하는 아브라함(창세기15:8) 등등의 여러 사례에서 볼 때 예언가들은 그들이 예언적으로 제시한 일들에 확실성을 부여하기 위해 항상 하나의 표적을 가지는데, 이런 점에서 예언은 어떤 표적도 필요로 하지 않는 자연적 인식에 비해 뒤처진 것. 후자는 확실성을 내재함. 더우기 예언적 확실성은 수학적인 것이 아니라 도덕적인 것. s67 모세 그리고 예수도 표적과 기적으로 이교를 가르치려는 예언가들을 경계(민수기13장, 마태복음24:24) s67-69 에스겔은 신이 때때로 잘못된 계시로 인간을 속인다고 말함(에스겔14:9)

예언과 계시는 의심스러운 것이지만 그래도 상당한 확실성이 부여됨. 왜냐하면 신은 믿는 자와 선택받은 자를 현혹시키지 않기 때문. 그들은 신의 은총의 도구이며 악인은 신의 분노의 수단이자 집행자로 사용됨. 그럼에도 예언가들의 확실성은 도덕적인 것에 불과. 왜냐하면 아무도 신 앞에서 정당하다고, 그의 은총의 도구라고 자부할 수 없기 때문. 모든 예언적 확실성의 세 가지 기초 1.예언가들은 계시된 사태를 생동감있는 것으로 제시 2.표적 3.가장 중요한 것으로서, 그들의 일념은 정의와 선함으로 향함 s69. 예언가들이 표적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경우는 모세의 율법에 포함된 것과 같이 이미 새로울 것이 없는 것을 말할 때임. 왜냐하면 율법으로 확증되기 때문에. 또한 예루살레의 멸망에 관한 예레미아의 예언은 다른 예언가들의 예언과 율법의 경고로 확인됨으로 표적이 필요없음.  s71

한 예언가에게 그의 예언에 관해 확신을 주는 [도덕적일 수 밖에 없는]표적은 다른 직관의 지배를 받는 다른 예언가들을 납득시킬 수 없기 때문에 예언가들의 표적들은 다양성을 지니며, 계시 자체도 예언가들이 부여받은 기질과 상상력, 직관에 따라 상이함. 기질과 관련해서 밝은 심성의 예언가는 승리와 평화, 기쁨의 계시를 보이지만 비애적 심성의 예언가에게는 전쟁, 심판, 모든 재앙이 계시됨. S.71 상상력과 관련해서 예언가의 심미안과 직업에 따라 예언이 상이. S.71-73 마지막으로 예언가들의 상이한 직관에 따라 예언이 상이함. 점성가에게 예수의 탄생은 동쪽에서 떠오르는 별로, Nebukadnezar에게는 예루살렘의 파괴가 희생제물의 내장으로 예언됨(에스겔21:26). 인간의 자유의지와 자기결정권을 믿는 예언가들에게 신은 인간의 행위에 어떤 간섭도 하지 않고 인간의 미래를 무지로 남겨 두는 것으로 계시됨. 다음은 성서에서 이를 증명. S.73

기질과 직업에 따른 예언가들에 대한 성서상 교차비교 : 궁정신하 이사야와 농부 아모스(이사야1:11-20 vs 아모스5:21-24, 이사야40:19-20,44:8이하 vs 호세아8:6,13:2) 신이 특정한 스타일의 언명을 한 것이 아니라 예언가의 교육수준과 능력에 상응하여 세련되거나 간결하게, 엄밀하거나 무지막지하게, 장황하거나 알 수 없게 언명한 것. 동일한 것을 의미하는 현상과 표적도 예언가에 따라 상이. 예를들어 성전에서 사라지는 신의 영광이 이사야와 에스겔에게 각기 다르게 나타남 S.75 이들은 의심의 여지없이 신을 그들의 상상에 익숙한 방식으로 보았던 것.

[계시의]현상은 그 종류에서 뿐만 아니라 그 명료성에서도 차이를 보임. 자하랴에게 나타난 현상보다 다니엘에게 나타난 것을 더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계시의 어려움에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이해력을 넘어서는 것과 관련된 인간의 한계 때문. 다니엘의 상상력은 각성시 보다는 수면중에 예언을 하기에 더 적합. S.77 [상상력의 강도와 정확성과 같은] 이런 문제들은 특정한 예언가에게 예언의 재능을 더 부여했다는 것 외에 성서에서 명확히 해명되지 않기 때문에 더 나아가는 것은 불필요함 S.77-79

예언이나 그 현상은 예언가를 지배하는 직관과 선입견에 따라 상이함. 심성적인 정직성의 의미에서가 아닌 순수히 사변적인 의미에서 그들을 신뢰할 수 없음. 하지만 인간의 지성이 근접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예언가들이 알고 있다고 보는 경향이 있고 이런 방식으로 성서를 억지해석하려는 시도도 있음. 예를 들어 여호수아와 그의 역사가들이 보았던 정지된 태양의 기적에 관해 S79 스피노자가 보기에 여호수아는 이때의 전쟁 중 낮이 길어진 참된 이유를 알지 못함(여호수아10:11[이하]) 이사야의 경우[이사야38:7-8]와 마찬가지로 실제로 그런 표적[이적]이 일어난 것을 인정하더라도 예언가가 그 원인을 안다고 할 수 없음. S.81 솔로몬, 이사야, 여호수아 등은 예언가이지만 인간이기에, 인간적인 것[정확한 인식에 도달할 수 없는 것]이 그들에게 낯선 것이 아님.

선지자들은 신의 본성에 관해 특별히 가르쳐 준 것이 없었고 신에 관해 [그들의 이해력에 상응하는]익숙한 직관을 가졌을 것이고 이것이 그들의 계시에 적합했던 것. 예언가들이 칭송받고 높이 평가받은 것은 그들의 장엄하고 월등한 정신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신념에 대한 신실함과 확고함 때문. 신을 제대로 알지 못한 것은 아담부터 비롯됨. 그는 신이 전재하고 전지하다는 것을 몰랐기 때문에 선악과를 먹은 후 숨으려고 함 S.83 소돔의 진상에 대해 아브라함이 신에 비해 더 몰랐던 사실을 알면서도 신은 그의 이해력에 맞춰 계시함(창세기18:24). 그가 칭송받는 것은 오직 믿음때문. 이는 모세도 마찬가지. 그는 인간의 모든 행위가 신의 결의에 따라 운행된다는 것을 충분히 인식못함. 모세가 신에게 이스라엘 백성의 믿음을 의심한다고 말할 때(출애굽4:1) 신은 그에게 계시한 것은 마치 신이 인간의 행위에 어떠한 개입도 하지 않고 그들의 미래를 알지 못한다는 식으로 하면서 이적의 징표를 제시함 S.85

이집트의 미신에 젖어있던 이스라엘인들은 비참한 노예상태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해 신에 관한 올바른 인식에 가졌다고 볼 수 없음. 모세는 철학자로서 그들이 자유의지에 따라 잘 살 수 있도록 한 것이 아니라 입법가로서 그들이 법의 지배로 강제되도록 한 것. 따라서 신에 대한 경배와 사랑과 같은 올바른 삶의 방식은 그들에게 참된 자유와 신의 은총이 아니라 예속[을 통해 가능해짐] S.91 이에 비해 자연의 빛, 곧 신에 관한 이성적 인식에서 누구보다 월등했던 솔로몬은 법 위에 있을 만한 자격이 있었으나 그는 철학자답지 않게 법을 무시하고 세속의 극도의 향락에 빠짐으로써 전도서에서 처럼 세상사를 비관[스피노자는 솔로몬이 지혜 외에는 모든 것이 헛되다고 말한 것으로 보지만 솔로몬은 전도서에서 지혜마져도 그런 것으로 보는 구절이 있음. 예를 들어 죽음 앞에서 지혜도 소용없다는 식의]. S.93

예언자들의 엇갈린 의견에 관해 : 사무엘은 사울의 경우처럼 신이 자신이 말힐 결의를 거두어 들이지 않는다고 보지만 예레미아는 신이 한 민족에게 내리는 고행과 축복은 그들의 개심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봄. 요엘은 이에 비해 고행만이 철회될 수 있다고 봄. S93-95
카인이 죄를 범하기 전 신은 인간이 죄의 유혹을 극복할 수 있다고 했지만(창세기4:7) 바울은 신이 부여한 특별한 소명과 은총이 아니면 육신의 시험을 이겨낼 힘이 인간에게 없다고 봄(로마서9:10이하) S.95

따라서 사랑과 삶의 실천 방식을 제외한 자연적이고 정신적인 일에 관한 인식에서 예언가들의 직관은 엇갈리고 신뢰할 수 없음. 계시의 목적과 핵심을 이루는 것 외에 예언가들을 신뢰할 수 없기 때문에, 그런 일들[정신적 활동]에서 [자신의 이성에 따른] 자기본위의 믿음이 모두에게 가능함. S95 예를 들어 카인에게 내린 계시는 신이 그에게 올바른 삶을 살도록 훈계하는 것으로서 S.95-97 이는 계시의 의도와 핵심에 부합할 뿐이지 의지의 자유나 철학적 문제를 가르치는 것이 아님. 의지의 자유에 관해 언어와 사변으로 [카인을 포함한 예언가들에게] 계시되었다고 해도, 카인의 이해력의 한계[각자에게 특수하게 한계지워진 이해력] 때문에 의지의 자유에 반대하는 [식의 엇갈린] 의견이 나올 수 밖에 없음. 신이 자신의 전능함을 욥에게 계시한 것도 그나 욥기의 기자의 이해력에 맞춘 것이지 모두에게 설득력을 지닌 것이 아님. 바리새인에게 행한 예수의 비판은 훈계이지 사탄이나 천사가 실재한다는 식의 어떤 환상을 말하는 것이 아님(마태12:26,18:10) S.97

예언과 예언자에 관한 이상의 전개는 철학을 신학과 분리시키는 것에 부합. 다음의 논의는 예언의 소여가 히브리인게만 주어진 것인지 다른 민족들에게도 그러한 것잇지에 관한 것 S.99


3장 히브리인의 소명 그리고 예언의 재능이 히브리인에게만 전유되는 것인지에 관한 문제

각인의 참돤 행복과 참된 지복은 다른 모든 이를 배제시킨 채 단독으로 좋음을 향유하려는 오만이 아니라 좋음을 공유하는 것으로 이루어짐. 이런 오만은 유아기적인 것으로 질투나 악한 심성에서 비롯된 것. 인간의 참된 행복과 참된 지복이 지혜와 진리에 대한 인식으로 가능하다면 이것은 어느 누가 다른 누구보다 현명하다거나 다른 모든 이들은 참된 인식을 가질 수 없다는 방식으로 증대될 수 없음. S.101 신이 히브리인들만을 선택했다거나, 솔로몬왕에게 누구도 따라잡지 못할 지혜를 주었다는 식으로 해석할 수 있게 보는 것은 그들의 편협된 이행방식에 따른 것으로, 그들이 참된 지복을 모르기 때문(신명기9:6-7) [원래 그들은 그런 자격도 없음] S.101-103 솔로몬이 지혜에 출중하다는 것은 상투적 어법이며 다른 누구에게 신이 그와 같은 지혜를 주지 않았다고 단정할 수 없으며, 신이 모두에게 지혜를 나누어주었다고 해서 이 현명한 왕이 신에게 자신의 재능에 대한 감사를 거둘 이유가 없음. 모세가 그들의 유아기적 이해력에 따라 선민관을 말한 것은 그들의 신앙을 견고하게 하기 위한 것이지 그들의 지식이나 신앙이 다른 민족에 비해 월등하기 때문이 아님. 그들이 타민족과 다른 부분은 이제 여기서 다룰 문제. S.103

그 전에 설명할 것은 스피노자가 신의 지도, 신의 내적 외적 개입, 신의 선택, 마지막으로 운명으로 이해하는 것에 관한 설명 S.103-105 신의 지도는 확고하고 변하지 않는 자연의 질서나 자연적인 것의 연쇄. 자연의 예정된 질서, 즉 신의 영원한 지도와 결의가 아니고서는 아무런 일도 인간은 할 수 없음. 이것이 신의 선택. 신이 내린 특별한 소명에 따라 각인의 삶의 방식이 정해짐. 운명은 신의 지도로서 인간적인 일들을 외재적이고 예상못할 원인으로 이끄는 것.

우리의 모든 정당한 욕망은 세 가지와 관련됨. 사물을 이것의 제1 원인으로부터 이해하기, 격정을 지배하고 S.105 덕성의 상태에 다다르기, 마지막으로 안전하고 건강한 신체로 살기. 첫번째와 두번째 목적에 관여하고  이것들에 최근접하고 작용하는 원인으로 간주되는 수단은 인간의 본성 자체에 내재되어 있기 때문에 이에 도달하는 것은 주로 우리의 힘, 인간 본성의 법칙에 달려 있음. 이런 근거로 이러한 유산은 특정 민족에 고유한 것이 아니라 모든 인류에게 공통적으로 전유됨. 이에 반해 삶의 안전과 신체의 보양에 사용되는 수단은 외부의 사태에 있는 것으로서 선물이라고 할 수 있는데, 왜냐하면 이것은 주로 알 수 없는 외부적 사태의 지도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인과 마찬가지로 바보도 행복하기도 하고 불행하기도 하다. 그렇지만 삶의 안전에 그리고 다른 사람이나 짐승으로부터의 피해를 막는데 인간의 지도와 보호가 상당히 기여할 수 있다. 이성과 경험이 알려주는 확고한 수단은 규정된 법으로 사회를 기초하고 특정한 지역을 점유하고(einen bestimmten Landstrich in Besitz zu nehmen) 모든 권력을 각자에게 즉 사회에게 양도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 사회를 세우고 유지하는 것은 적지 않은 정신[현명, 교양된 정신]과 주의가 요구되며, 이런 사회는 안전하고 오래 지속되며 운명에 보다 덜 예속된다. 이런 사회에 반하는 사회는 불안하며 오래 지속될 수 없으나, S.107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속된다면 이것은 외부로부터의 지도[알 수 없는 외부적 원인, 예측할 수 없는 일, 신적인 기적] 덕분이다. S.107-109

한 민족이 다른 민족과 구별된는 것은 오직 사회와 법을 통해서이며, 그들은 이 안에서 살며 지도를 받는다. 따라서 히브리민족은 그들의 지성과 정신의 평온에 의해 신의 선택을 받은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사회와 운명 , 즉 그들이 어떻게 국가를 세우고 오랫동안 이를 유지했는지를 통해서일 뿐이다[스피노자는 이 구절에서 그들의 사회와 운명으로 신의 선택을 받은 것으로 보기 애매한 표현을 쓴다. 문맥상 사회와 운명으로 다른 민족과 구별된다는 뜻으로 보임] 그들의 선민관과 소명의식은 시기적 운과 그들 국가의 호의적 상황에서 나타난 것. S.109 그들에게만 계시된 율법은 사회나 국가의 안전과 안락을 위한 것으로, 율법의 준수는 이런 목적에 부합하지만 그에 대한 위반은 사회나 국가의 몰락을 가져올 것이라는 언약에 다름없음. S.111

신의 선택은 유대민족의 사회와 국가에 있지 개별 유대인에게 있는 것이 아님. 신은 모든 인간에게 동등하게 은총을 미침. 예언의 기능은 법이 아닌 덕의 권면이며 예언의 능력은 유대인에게만 고유한 것이 아님. S.115 구약에 다른 민족의 예언가에 대한 기록이 없는 것은 유대인들이 자신들만의 역사를 기록했기 때문 S.117

모세가 다른 민족에게서 볼 수 없는 신의 특별하고 예외적인 조력을 히브리인에게 주도록 요청했던 것은 히브리 민족의 완고함 때문(출애굽 34:9). 바울에 와서는  히브리인과 이민족의 구별이 더욱 더 무의미해짐. 왜냐햐면 모두 죄인이기에 율법은 이들 모두에게 부과되는 것(로마서 2:25~, 3:9, 4:15, 욥기 28:28). S.123

유대인들이 나라를 잃고 흩어져 살아도 존속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에 대한 이민족들의 적대가 영향을 미침. 포르투갈에서 개종을 강요당한 유대인을은 스페인의 경우와 달리 개종 후에도 적대적으로 규정되어 격리된
생활을 해야했음. S.129 유대인의 선민관은 그들의 국가와 할례와 같은 신체적 표식으로 타민족과 구별되는 것에 한정될 뿐, 이성과 덕에 해당되지 않음. 이는 신에 의해 차별없이 모든 민족들에게 주어진 것. S.131


4장 신의 법에 관하여

인간의 법은 삶과 국가의 안전을 위한 것이지만 신의 법은 최고의 선, 즉 신에 대한 참된 인식과 사랑을 위한 것. S.137

신은 민족의 이해력과 부족한 사유능력에 맞춰 입법자나 지배자로 묘사되고 정의롭고 자비롭다 불리지만 진리상으로 그는 자신의 본성과 완전성에 따른 필연성으로부터 행위하고 모든 것을 인도함 S.151

성서에서 신이 아담에게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한 것은, 악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 아니라 선 자체를 위해 선을 행하라는 것. 선에 대한 사랑과 참된 인식에서 선을 행하는 사람은 자유롭고 확고한 의미에서 행위하나 악에 대한 두려움으로 행위하는 사람은 악의 강제, 다른 사람의 지배에 따라 노예처럼 사는 것. S.153


5장 제례가 수용된 이유와 역사적 서술에 대한 믿음에 관하여 : 그 근거와 누구에게 이런 것이 필요했는지에 관해

인간을 축복하고 참된 삶을 제시하는 신의 법은 모든 인간에게 공통된 것이지만 구약에서 보이는 제례는 히브리인에게만 수용된 것으로서 그들의 왕국이 존속하는 동안 유용한 한시적인 것으로, 신의 법에 속하지도 않고 행복과 덕에 기여하지도 않음. 제례가 유대왕국의  강화와 족속에 기여한 이유와 방식을 알아보고자 함. S.161

히브리 왕국의 멸망 후 제례의 속박에서 그들이 풀려났음은 예레미야가 보여줌. 신약의 사도들도 이방인들에게 포교할 때 그들 국가의 법에 묶인 그들을 고려해 제례를 버림. S.167-169 이에 반해 바리새인들은 국가의 멸망에도 불구하고, 기독교 배척을 위해 제례를 고수 S.169

제례가 히브리 국가의 유지와 안정화에 기여한 이유 : 사회질서는 인간의 상호부조를 가능하게 함으로써 삶의 부양에 필요한 모든 분야에서 기술집적과 시간절약을 이뤄냄. 참된 이성이 지시하는 것을 갈망하도록 인간의 본성이 되어 있다면 사회는 어떤 법도 필요로 하지 않음. 그러나 대부분의 인간은 앞뒤 고려없는 욕망과 격정에 사로 잡혀 자기 이익을 추구하므로, 정부와 강제력, 법이 없이는 어떠한 사회도 유지않됨 S.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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