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와서 이리저리 일자리를 찾고 있으나 여의치 않은 가운데, 그냥 놀기만 할 수는 없어서 서울 외곽에 있는 복합물류센터의 야간 택배 상하차 일당일을 나가곤 했다. 처음에 이 일을 할 때는 뭐 이런 무지막지한 노동이 다 있나 싶어서 다시는 나가지 않으려 했으나 어떻게 하다 보니 현재까지 8일 정도 일을 나갔다. 이곳 현장의 살벌함과 입을 열고 숨쉬기 힘든 거친 현장의 먼지 속에서도 담배와 마찬가지로 한가지 위안이 있다면, 이곳의 말로 두명이서 온갖 물품을 까는(혹은 따는) 컨테이너 속에서 만난 사람 하나 하나와 주고받은 말들이다. 힘들다 보니 사실 말을 꺼내는 것조차 주저스럽지만, 그래도 잠깐 식이라도 말을 건네다 보면 별의별 사람들이 다 있다는 걸 알게 되고, 대부분은 전국, 아니 전세계 방방곡곡에서 사정이 그리 좋지 않은 상황에 놓인 사람들이다. 무역을 하다 통관에 걸려 발이 묶인 상황에 놓인 50대, 학원사업을 하다 일이 잘못된 50대, 사악한 사장 밑에서 처참한 방직일을 하다 온 20대 청년, 뉴질랜드에서 타일일을 비롯해 여러가지 일을 하다 온 신학생, 전산원에서 일을 하다 잠시 돈벌러 온 50대, 홍콩에서 대학이 임시 휴교를 당해 일시적으로 한국에 온 학생, 식당사업을 하다 자본금을 날린 동년배, 운동을 하다 그만둔 20대 등. 컨테이너 속이 카메라로 감시를 당하는 현장이라 관리자가 지시를 했는지 조장이 간격을 띄고 나오는 박스를 보고 짐작을 했는지 얘기하는 것 조차 통제당하는데 질린다면, 이런 곳에서 일을 하지 않아야 한다. 일당으로 일하는 사람들 간에 시차를 두고 세워진 위계의 폭언은 때로는 경찰이 출동하는 폭행사태도 일으키는 현장이지만, 하청에 하청을 주는 작업환경은 그런 일들은 사소한 에피소드로 치부할 뿐 하루 하루 쏟아지는 물건들을 받고 내보내는데 정신이 없다. 편리하게 주문은 하지만 주문한 물품이 오기까지의 과정은 결코 편리하지 않다. 정신없이 까서 보내진 것들은 또한 마치 가속이 붙는 낙하물처럼 택배차량에 태워져 거리와 골목길을 질주한다. 보호받지 못하는 인간 노동이 포장에 가려 짓눌러진 한국사회의 단면 그대로다.
이와 관련해 한 가지 고발할 일이 있다. 어느 세계적 기업의 기내식 유통을 인천공항에서 단독도급한 업체에 면접을 보러 갈 일이 있었다. 실무자의 문자로는 어느날 13시에 이 업체가 있는 공항 보안구역의 초소 앞에서 전화하라고 되어 있었다. 이에 맞춰 전화를 했더니 내가 13시 20분 전에 미리 면접장소에 오지 않아서 면접관이 가버렸다고 했다. 나와 통화를 할 때 그렇게 말했다고 하는데, 이건 또 무슨 면접 갑질일까? 정말 그렇다면 13시 전에 연락은 또 왜 주지 않았을까? 결국 회사도 아닌 초소 귀퉁이에서 담당 실무자와만 면접을 보는 황당한 일을 겪었고, 시간에 맞추려고 택시까지 타고 어렵게 거기까지 간 면접비는 커녕 연락도 없다. 실무자 위에 있는 자들의 오만함과 뻔뻔함 앞에 헛웃음만 나올 뿐이다. 이에 비해 쿠팡은 다른 건 몰라도 업무와 관련된 사람 하나 하나도 철저히 서비스의 대상으로 보고 기회비용을 치뤄준다. 그래도 몰염치하지 않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