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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263년 중국 익주(쓰촨성 광위안)에서 있었던 삼국시대의 최후 전투는 현재 세계의 시위 진압작전을 연상시킨다. 유비가 두 형제의 복수를 위해 오의 손권을 치러 나섰다가 형주를 잃어버린 후 촉한의 삼협에서 제갈량이 북벌의 기점으로 세운 검문관은 촉의 공격 시발점이자 방어의 최후 요새였다. 갈라진 두 산 사이에 칼이 하늘 방향으로 꽂힌 듯한 형세에 놓인 검문관은 소수의 군사로도 방비를 하기에 최적인 마지노선이었다. 유비 사후 제갈량 주도의 남만 평정과 군비 축적으로 6차례에 걸쳐 실행된 북벌이 실패하고 제갈량 사후 종회가 이끄는 위나라의 군사 10만이 촉을 치기 위해 촉의 공격루트였던 잔도를 따라 내려와 협곡의 대평원에 도달했을 때 검문관을 사수하던 장군은 강유였다. 촉의 군사가 2만에 불과했지만 제갈량의 예측대로 협곡에 막힌 위의 군사들은 검문관을 뚫을 수 없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위의 장수 등연은 병사들이 700 리를 돌아 길을 뚫고 다리와 밧줄을 이용해 협곡으로 올라가도록 하는 우회술을 강행했고, 후방을 교란당한 촉은 결국 몰락했다. 자연지형을 이용한 천애의 요새라 할지라도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집요한 집념과 대규모 물리력 앞에 무너지는 결과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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