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식이 된다는 건설현장으로 처음 간 곳은 평택의 반도체공장 건설현장의 수장업체였다. 수장이란 칸막이 공사를 말하는데, 일반 현장의 칸막이 공사와 반도체 공장 건설현장의 칸막이 공사는 상당히 다른듯 하다. 일단 나는 당장 일을 해야했고, 숙식도 필요했기에 어느 토요일 오후 알바몬에서 나온 소개업체의 구인광고를 보고 업체 직원과 연락을 하고 담당소장, 팀장과 차례로 통화를 한 후 바로 그 다음주에 내려가기로 했는데, 통화의 주요 내용은 먼저 건설기초안전보건교육을 이수해야 한다는 것과 10일 미만 근무시 소개비를 떼인다는 것이었다. 보통 겨울철에는 건설현장 일이 드문 편인데, 반도체 현장은 이와 상관이 없었고, 또한 초보자가 처음 이런 일을 하기엔 반도체 현장이 보다 수월한 편이다. 이 현장에서는 사실 하는 일이 없이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근태만 좋으면 환영받는다는 말이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이날 편의점에서 이런 통화를 하는 나를 보고 한 동문은 나에게 겁박을 줬다. 하루도 못버티고 도망쳐 올 것이라고. 그도 겨울에 이른바 노가다 라는 것, 얼어버린 땅에 볼트를 박는 힘겨운 경험을 한 적이 있어서 걱정을 해준 것인지도 모르나, 사실 더 신경 쓰이는 것은 숙소생활이었다. 군대도 아니고, 생판 모르는 사람들과 먹고 자며 지내는 것은 막연한 일이다.
주말을 넘기고 바로 다음주 월요일에 중랑구에 있는 직업학교에서 기초안전교육을 받고 수요일에 평택으로 내려갔다. 기초안전교육은 오전 4시간 진행됐는데, 여기서 남는 것은 몸조심하라는 당부였다. 세계적으로 알아주는 산업재해 국가인 한국에서 수치상 연간 매일 한 명 이상이 죽어나가는데, 그 주범 장소는 건설과 물류 현장이고, 주요 사건 유형은 추락과 끼임 사고다. 내가 7개월간 있던 평택 P2 현장에서 1명이 추락사했고, 3개월간 있던 이천 M16 현장에서 1명이 낙하물로 다리를 절단당했다. 대기업이 까다롭게 안전을 중시하는 1군 사업장에서도 이런 일이 벌어지는데 다른 현장은 더 말할것도 없을 것이다. 그날 안전교육에서 마지막 강사는 가급적 큰 현장에 가서 일하는 것이 안전상 초보자에게 좋을 것이라고 권했는데, 이 말은 일리가 있으면서도 또한 맹점이 있다. 큰 현장에서는 상시 안전감시단이 작동하고, 모든 공사는 사전 서류 허가에 따라 진행되지만 이것이 정말 안전을 위한 조치라기 보다는 안전해 보이기 위한 관료적 절차와 형식으로 끝나고 만다는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사고를 방지한다는 명분으로 일용노동자들에게 규정위반에 대한 경고나 퇴출의 위협방식을 쓰는 것은 이율배반이다. 정말 안전을 위해서라면 안전한 환경과 조건을 만들어 줘야 하고, 이것이 되지 않는다면 인력을 당장 투입시키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일이 먼저가 아니라 위험 차단이 먼저다. 물론 옛날에 비해, 그리고 대기업 원청의 현장이 다른 현장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나은 안전 조치와 복지 조건을 마련하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지만, 위험발생의 책임에서 면피하려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것으로 보이는 계도 방식 보다는 실질적으로 위험을 차단하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일하는 사람들에게도 일을 주는 사람들에게도 맞는 일이다.
평택에서 업체의 안내 직원을 만나 숙소로 이동했다. 아주 오래된 빌라였는데 여기서 2명의 동기생들을 만났다. 한 명은 나보다 연상으로 식당을 경영하다 온 분이었고, 다른 한 명은 나보다 한두살 적은 친구였다. 인상들이 다들 좋았다. 업체 직원이 사주는 저녁을 먹고 숙소로 들어와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고 각자 방으로 들어갔다. 방 3개 짜리 빌라였는데, 각방을 쓰라는 배려는 아니었고, 다만 우리가 먼저 온 경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