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 전의 숙소에서 빼온 짐들 중에서 당장 필요한 것만 2개의 백팩으로 꾸려서 파견업체가 있는 사무실로 약속 시간보다 먼저 갔다. 너무 일찍 도착한 터라 바로 사무실로 들어가기 보다는 빵집에서 커피 한잔을 마시러 들어갔다. 밖에서 기다리기엔 아직 추운 날씨였다. 지금에도 그렇고 그때도 그랬고 시간을 보내기엔 루만의 책을 읽는 것만한 것이 없다. 시간에 얼추 맞춰 사무실에 가니 내가 제일 먼저 왔고, 차례로 세 사람이 더 왔다. 한 친구는 20대 후반으로 경상도 말투를 쓰는데 전기 분야에 상당한 관록이 있을듯한 인상이었지만, 업체 직원에게 어떤 분야의 일을 하게 될지 물었다가 포설일 것이라는 답변을 듣자 상당히 곤혹스러워 했다. 어떤 사람의 첫인상과 이후 겪게될 인상은 쉽게 어긋날 수 있다는 것은 비단 이 친구만은 아닐 것이다. 이와 비슷한 또래의 한 명은 경험도 있고 일을 어느 정도 할 것처럼 보였지만, 이후 나와 함께 혈압측정 때문에 곤욕을 치뤘다. 또다른 사람은 30대 후반으로 체격이 건장했고 경력도 상당히 있을 것으로 보였다. 업체 직원은 아직 한 사람이 안왔다고 하면서 좀더 기다려 달라고 했는데, 이 마지막 인물은 거의 1시간이 지나서야 왔다. 약속 장소를 현장 안에 있는 사무실로 알고 거기로 갔다는 것이었다. 멀리 남해의 전통적 해안도시에서 왔다고 하는데, 말투나 생김새, 옷차림이 정말 막 어촌에서 올라온 20대로 보였지만, 나중에 알고보니 이곳의 현장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청년이었다. 다소 이해하기 힘들면서 웃음을 자아내는 괴팍한 개성을 가진 사람이었는데, 이 인상은 줄곧 유지됐다.
2대의 차로 나눠타서 숙소가 있는 동네로 이동했다. 다세대 주택의 4층에 있었는데, 가족같은 분위기가 연상되는 따뜻한 기운이 풍겼고, 우악스럽게 생긴 거구의 팀장은 책임감있으면서도 거친 인물로 보였다. 잠깐 앉아서 대화를 나눈 후, 숙소에 있던 기존 팀원들과 신참자들은 팀장을 따라 고기집으로 갔다. 다음날 일을 나갈테지만 고기를 굽는데 소주를 빠뜨리지 않는 것이, 확실히 전기팀은 다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을 하다가 이곳에 온 사람들인지 알 수 없는 분위기에서 긴장과 경계의식을 풀어주는 이런 술자리가 필요하기도 하겠지만, 이런 자리를 경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은 나중에 알게된다. 물론 이미 알고 있었다고 해도 쉽게 되는 일은 아니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