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라는 것
내가 지금 여기에 있다는 것에는 많은 계기들이 있다. 지금의 내가 어제의 나와 다르다는 것은 그 사이에 많은 사건들이 있어 왔다는 것이다. 즉 그 사이에는 많은 일들의 경험이 축적되어 있다는 것이고 그것이 인생이라고 할 것이다. 그 사이에는 성취도 있었고 좌절도 있었고 기쁨도 있었고 슬픔도 있었다. 이렇게 보면 사람 하나 하나가 자신만의 이야기를 갖고 있는 것이고, 더러는 그것이 모여서 나눌 수 있는 하나의 큰 이야기가 되기도 하고 전혀 알 수 없는 이야기로 그 사람과 함께 떠나기도 한다. 글과 같은 확산매체가 없었을 때는 구두로 전해들은 바가 없으면 '나'만의 이야기로 잊혀질 수도 있었지만 지금처럼 전자화된 확산매체의 세상에서는 사실 너무 많은 이야기들이 있어서 선별이 필요하기도 하지만 왜곡과 과장 때문에 더욱 이런 선별이 요구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은 여전히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느낌상으로 보면, 지금이 여전히 어느 때와 비슷한 지금 같고 여기도 어느 곳과 다를 바 없는 여기라는 인상을 피할 수 없다. 분명히 이 순간의 지금과 여기에 있는 것은 다른 순간의 그것들과는 분명 다르고, 그 사이엔 과정이 있는데도 말이다. 하나의 예를 들어 보자. 전선을 결선하는 기술자에게 어느 초보자가 묻는다. 이 초보자는 기술자가 하는 작업을 보고 결선의 원리를 간단히 파악할 수 방식이 바로 색깔에 있다고 보고 같은 색깔의 피복으로 된 전선끼리 묶어 주면 되는 것인지 묻는다. 물론 이런 물음이 아주 틀린 것은 아니지만, 기술자는 이런 식의 이해를 묻는 물음에 답변을 거부한다. 그의 거부엔, 이런 기술은 단지 말로 전해줘서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경험을 필요로 한다는 의미가 있다. 하지만 경험이란 단지 시간이 흐른다고 생기는 것은 아니다. 굳이 말한다면, 이런 식의 경험은 경험의 내용이 빈약한 경험일 것이다. 이에 대한 극단적인 예를 든다면 시간여행을 위해 장기간의 저온수면에 들어간 우주인을 들 수 있다.
지금, 여기의 내가 다른 나인 것은 나는 또 다른 나를 위해 경험을 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