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술 Beschreibung

주말 이야기 : 숙취와 등산, 시베리아 농사

산사람 2010. 6. 21. 11:32
반응형
금요일 저녁에 생각치 않게 술을 많이 마셔 토요일 오전 내내 몸이 찌뿌등했다. 같이 술을 마신 친구는 괴산에 자리잡은 한 대안적 문화기획공간에 내려간다고 한다. 아예 내려가는 건 아니고, 장기간 머물며 다큐작업을 한다고 하는데, 당분간 만나기가 더 힘들어질 것이다. 종로의 골목에서 갈매기살로 시작해 서울역으로 옮겨 선지 해장국으로 3차까지 술을 마셨다. 전철을 타고 집에 오며 졸다가 세 정거장을 지나쳐 운길산역에서 자정이 훨 넘은 시간에 나서야 했다. 되돌아가는 전철은 없고, 버스도 끊겼으며, 히치 하이킹도 통할리 없다. 경찰에 전화해 양수리에 있는 택시를 소개받았다. 기사는 예순 가까이 되어 보이는 아주머니인데, 팔당의 4대강 사업에 대해 물어보니, 너무 반대만 하는건 문제가 아니냐고 했다. 4대강 정비에 결사 반대하는 팔당대책위와 인근 주민의 온도 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 운길산역에서 덕소까지 가는데 10분 채 안걸렸는데, 거리 때문에 요금은 2만원 가까이 들었다.

다음날 오전에 천호동으로 인형극을 보러가는 가족과 이웃을 차로 태워다 주고, 돌아오는 길에 구리의 한살림 매장에서 장을 본 후 오랜만에 예봉산에 올라갔다. 남아 있는 알콜 기운을 달구어진 땀으로 기화시켜 버리고 싶은 욕구가 일었다. 전철을 타고 팔당역으로 가서 산에 오르기 시작했다. 이따금 소나기와 가랑비가 와서 산에는 평소 주말과 달리 인파가 적었다. 가파른 코스의 산길 4부 능선에 오르자 거친 숨에 헉헉 거렸다. 중간에 힘이 들어 3번 정도 쉬다가 7부 능선 정도에 오르니 더이상 힘들지 않아서 한번에 올라갔다. 거친 맥박에 헐떡이며 갈증이 일던 몸이 안정을 찾아가는 느낌 때문에 산에 오르거나 축구를 하는 맛이 있다. 언제가 내가 농사를 짓고 살고 싶은 것도 이런 욕구와 관련이 있다. 물론 농사에도 머리를 써야하는 일이 있지만, 농사의 기본은 몸으로 땅을 일구는 몸의 노동이다. 그러나 농사를 이런 욕구 때문에 하고 싶은 거라면 동기가 너무 취약하다. 귀촌, 귀농은 세계관의 변화와 아울러  이제까지 삶의 전면적 전환이기 때문이다.

산을 내려오면서 신발을 개울에 빨고 버스를 타고 집에 갔다. 도서관에 들러 책을 반납하고 새 책을 대출하려고 책 두 권을 가방에 넣었는데 피로와 허기 때문에 그냥 집으로 가고 만 것이다. 저녁과 다음날에 에드먼드 윌슨의 『핀란드 역으로』의 레닌 부분과 트로츠키 부분을 읽었다. 이들은 모두 망명 전에 시베리아로 유형을 갔다 왔는데, 차르 치하의 유형수 관리가 허술해서 이 혁명가들이 시베리아에서 공부하고 여행하면서 재충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시베리아 벌판의 거리, 사람이 사는 동네에서 1,600km나 떨어진 엄청난 거리가, 그곳에서 빠져나오기 힘든 창살 역할을 한 것이만, 혁명가들의 호연지기만 키워준 셈이다. 반면, 스탈린 치하의 시베리아 유형은 차르 치하의 유형과 전혀 다른듯 하다.

일요일 오후엔 아이와 함께 도서관에 갔다. 또다른 농사 관련 서적을  빌리고, 못다 읽은 토마스 만의 『브덴브로크 가의 사람들』2권을 다시 빌렸다. 농사 관련 서적은 유기 텃밭 농사에 관한 것인데,  인간의 똥이 가장 좋은 거름인 것은, 인간의 장기가 거름 제조기의 역할을 한다는데 있다. 다종 다양한 음식을 이로 잘게 부수고 위에서 반죽을 만들고 영양분의 30%와 수분을 흡수한 후 배출한 똥을 밭에 뿌리고 풀과 건초를 뿌리면 저절로 땅이 떼알구조의 유기 토양으로 된다고 한다. 물론 음식은 인스턴트나 방부제, 고기류 등의 도시 음식을 주로 먹어서는 양질의 거름이 되지 않는다. 썩지 않기 때문이다. 떼알 구조의 토양이란,  물과 공기가 들어갈 수 있는 빈 공간이 50%가 되는 토양을 말한다. 이런 공간이 있어야 미생물과 각종 벌레가 살아갈 수 있는데, 이런 흙에 로타리를 치면 땅이 망간진다고 한다. 

책을 빌리고 2층의 어린이 도서관에서 아이에게 책을 읽어 주면서 내 책도 읽었다. 책상머리에 앉아서 책도 읽어주고 내 책도 보는게, 집보다 괜찮았다. 늦은 밤에는 EBS에서 윤정희가 나오는 영화『만무방』(1994)를 봤는데, 그냥 진부한 반공 전쟁영화인줄 알았는데, 의외로 재미있고 의미심장한 영화였다. 해방 후 한반도에 대한 지독한 메타포라고 할까.  함석헌은 한국이 세계의 쓰레기가 집결된 곳이며, 바로 이런 세계의 하수구에서 새로운 세계가 도래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하는데, 반도 전국 각지에 펼쳐진 농촌이 20세기 초의 시베리아처럼 혁명가들의 산실이 되지 말라는 법도 없겠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