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람
2013. 11. 18. 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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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내내 잠만 잤다. 가끔 방향감각을 상실해 아무 것도 하기 싫고 할 수 있는 건 잠 밖에 자는 일 밖에 없을 때가 있다. 마치 감기처럼 이런 증상이 이례적으로 나타나, 어제는 아이의 방에 누워서 창 밖을 바라보는데, 창 밖 두 빌라 사이의 벽돌계단이 단풍과 구름이 뒤섞인 하늘길을 열어 주고 있었다. 이 칙칙한 동네에 이런 풍경이 무척 고급스럽다는 느낌이 새삼 들어서 일부러 거기까지 올라가 담배를 피워 물었다. 이런 방향상실감에 따른 뒤척임은 대학원 마지막 학기말에도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한 형이 생각났다. 멀리 대구에서 신학을 전공하다가 기독교 윤리학으로 저명했던 교수에게 배우기 위해 춘천까지 온 형이었는데, 대학원 내내 지도교수가 바뀌는 등 숱한 방황을 겪었다. 가끔 학교에서 이 형이 몇 달에 걸쳐 안보이는 경우가 있었는데, 이때 이미 서른 중반을 향해 가던 이 형도 나름의 고민으로 전전긍긍하며 앓아 누워 두문불출한 때가 있었다. 다른 학교에서 노장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것으로 들었는데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지. 자신이 관심을 기울여 하고 있는 일이 돈과 명예, 지위의 그물망에 걸리지 않더라도 묵묵히 수행할 수 있는 정진의 자세 자체만으로도 그 삶은 귀한 것일까? 20시간 넘게 잠에 취해버려서 이 새벽이 한결 가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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