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Vorstelltung

새해 첫 출근

산사람 2011. 1. 3.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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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새로 바뀌는 주말, 기분이 예전과 달랐다. 이제 생의 절반에 가까운 지점을 통과해서 그럴진대, 그 이상의 연배들은 어떨까. 십년 단위의 해바뀜에는 묘한 비장미가 서려있다. 한 살 한 살이 모여 서른이 되고 일흔이 된다. 나이는 생물학적 단위이기도 하지만 사회적 단위이기도 하다. 사회적 단위로서 나이에 대한 압박은 점점 가중되고 생물학적 단위로서는 서서히 체감된다.  안치환의 노래처럼, 이제 살아갈 날들이 살아온 날보다 길지는 않을 듯한 미래에 대해 여러 잡념이 지나간다. 해맞이라도 갔어야 했을까. 그래서 해맞이를 가려고 그 고생들을 하는걸까. 새해 아침 첫 출근 후 모니터를 앞에 놓고 천천히 생각을 정리해 본다.

시무식에서 새해의 다짐에 나는 이런 문구를 썼다."개간지가 아닌, 황무지로 가자." 이 다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새해 첫날이 가볍지 않다. 그런데 도대체 황무지가 있을까? 『닥터 지바고』에서는 모스크바에서 기차로만도 몇개월이 걸리는 시베리아 벽촌에서도 끈질긴 인간사의 쟁투가 벌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어느 곳을 가더라도 인간은 인간과 맞서게 되어 있다. 인간이란 어차피 사람 사이에 있을 수 밖에 없다는게 인간의 정의가 아닌가? 20대 초반의 겨울, 인간이란 한자를 풀어가며 애써 이런 깨달음을 얻었었다. 이제 깨달을 것도 없는 인간사의 적나라한 현실 바로 그것으로 다가올 뿐이다. 그래서 황무지는 결국 인간을 넘어서 또다른 인간과 대면하는 상태가 아닐까? 알지 못하는 사람 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낯선 땅에 발을 들여 놓는 것일까?

황무지는 변화를 암시하는 걸까? 익숙함을 버리고 낯선 곳을 가자는 것인가? 해가 바뀌는 것처럼, 세상살이도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것일까? 모험을 하기에는 여기저기 걸리는 일이 있는 상황에서 새해의 다짐으로나마 끄적인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모험을 하려면 그 걸리는 일들을 먼저 해결해야 한다. 아니면 다짐만 새해 벽두에 반복할 뿐이다. 물론 그 다짐은 소소한 일상사에 관한 것으로 한정될 수도 있다. 담배를 끊는다든지. 이것도 어려운 일인데, 더한층 어려운 전환을 흔히 새해 벽두에 생각하게 된다. 이것도 서양력이 낳은 효과다. 태양력은 거창한걸 요구하는데 반해, 달력은 소소한 것을 요구한다. 그래 아직 설이 남아 있다. 새해 벽두, 무거워질 필요가 없다. 오늘도 하루가 저물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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