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리학 강독 :
텍스트 : G.W.F. Hegel, Wissenschaf der Logik, erster teil, h.v. Georg Lasson(Hamburg : Felix Meiner, 1963)
Erstes Buch : Die Lehre vom Sein
Womit muss der Anfang der Wissenschaft gemacht werden?
In neuern Zeiten erst das Bewusstsein entstanden, dass es eine Schwierigkeit sei, einen Anfang in der Philosophie zu finden, und der Grund dieser Schwierigkeit, so wie die Möglichkeit, sie zu lösen, ist vielfältig besprochen worden. Der Anfang der Philosophie muss entweder ein Vermitteltes oder Unmittelbares sein, und es ist leicht zu zeigen, dass er weder das Eine noch das Andere sein könne ; somit findet die eine oder die andere Weise des Anfangens ihre Widerlegung.
근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철학에서 시작을 찾는 것이 어려운 일이라는 의식이 생겨났으며, 이 어려움의 근거와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가능성은 다양하게 논의되었다. 철학의 시작은 매개된 것이든지 혹은 직접적인 것이든지 작동해야 하는데, 그 시작이 어느 쪽도 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는 어렵지 않다. 따라서 이 두 방식은 모두 반박된다[직접적인 시작은 아무런 근거 없이 ‘그냥 시작하는 것’인데, 철학은 그렇게 자의적으로 출발할 수 없음. 매개된 시작은 이미 무언가를 전제로 삼는 것이며, 그렇다면 시작이 아닌 중간일 뿐임. 따라서 철학의 시작은 이 양자 중 어느 것도 될 수 없다. 그래서 진정한 철학적 시작은 변증법적 사유에 의해 자기 자신을 정초하는 방식이어야 함. 즉 철학의 시작은 그 자체로 아무것도 전제하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스스로 자신을 정초할 수 있는 기초가 되어야 함. 이것이 바로 "순수한 사유의 시작", 즉 헤겔이 『논리학』에서 "순수 존재(Sein)”로부터 시작하는 이유임].
상동 51
Das Prinzip einer Philosophie drückt wohl auch einen Anfang aus, aber nicht sowohl einen einen subjektiven als objektiven, den Anfang aller Dinge. Das Prinzip ist ein irgendwie bestimmter Inhalt, -das Wasser, das Eine, Nus, Idee, -Substanz, Monade usf. ;oder wenn es sich auf die Natur des Erkennens bezieht und damit mehr nur ein Kriterium als eine objektive Bestimmung sein soll, -Denken, Anschauen, Empfinden, Ich, die Subjektivität selbst, - so ist es hier gleichfalls die Inhaltsbestimmung, auf welche das Interesse geht. Das Anfangen als solches dagegen bleibt als ein Subjektives in dem Sinne einer zufälligen Art und Weise, den Vortrag einzuleiten, unbeachtet und gleichgültig, somit auch das Bedürfnis des Frage, womit anzufangen sei, unbedeutend gegen das Bedürfnis des Prinzips, als in welchem allein das Interesse der Sache zu liegen scheint, was das Wahre, was der absolute Grund von allem sei.
철학의 원리는 어떤 의미에서 시작을 표현하긴 하지만,
그 시작은 주관적인 것이기보다는 객관적으로 모든 것의 객관적인 시작이다. 원리는 어떤 식으로든 규정된 내용이며, 예를 들어 물, 하나(일자), 정신(Nus), 이데아, 또는 실체, 단자(Monade) 등이다. 또는 만약 그것이 인식의 본성에 관련되어 있고, 그에 따라 객관적 규정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일종의 기준으로 여겨진다면,
예를 들어 사유, 직관, 감각, 자아, 혹은 주관성 자체,
그렇더라도 이 경우에도 흥미의 대상은 바로 그 ‘내용 규정’이다[철학에서 말하는 원리는 단순한 시간적 시작이나 순서상의 출발점이 아니라 모든 존재나 사유의 객관적 기초, 즉 모든 것의 객관적 시작임]. 이에 반해 시작이라는 것 자체는, 이야기에 진입하는 어떤 우연적인 방식이라는 의미에서 주관적인 것으로서 무시되어도 좋고 무관한 것으로 남아 있으며, 따라서 ‘무엇으로 시작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의 필요도 '원리에 대한 필요’에 비하면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오직 원리에서만 사물의 진정한 관심사, 곧 무엇이 진리인가, 무엇이 모든 것의 절대적 근거인가라는 관심이 놓여 있기 때문이다[예를 들어 여행에 비유하면 "어디서 출발할까? 비행기를 먼저 탈까, 기차를 먼저 탈까?" 이런 질문은 시작에 관한 것이고, 실질적인 여행의 의미와는 관계가 없을 수 있음지만 "왜 여행하는가? 어디를 향하는가?”라는 질문은 여행의 의미와 목적, 즉 철학적 원리에 해당. 철학에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출발선이 아니라,
전체 여정의 의미, 그리고 그것을 정당화하는 궁극적 근거임].
상동
Aber die moderne Verlegenheit um den Anfang geht aus einem weitern Bedürfnisse hervor, welches diejenigen noch nicht kennen, denen es dogmatisch um das Erweisen des Prinzips zu tun ist oder skeptisch um das Finden eines subjektiven Kriteriums gegen dogmatisches Philosophieren, und welches diejenigen ganz verleugnen, die wie aus der Pistole, aus ihrer innern Offenbarung, aus Glauben, intellektueller Anschauung ㅣ usw. anfangen und der Methode und Logik überhoben sein wollten.
그러나 [철학의] 시작을 둘러싼 근대적 당혹감은 더 깊은 필요성에서 기인한다. 이 필요는, 원리를 독단적으로 논증하는 데만 관심이 있는 자들이나 [이런] 독단적 철학에 맞서 주관적 기준을 회의적으로 찾으려는 자들은 아직 알지 못하며, 내적 계시, 신앙, 인지적 직관 등에서 마치 권총에서 총알이 나가듯 시작하고 방법과 논리를 초월했다고 여기는 자들을 그러한 필요는 아예 부정한다[근대 철학이 시작 문제에서 겪는 당혹감은, 단순한 논증이나 회의, 또는 직관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더 깊은 요구에서 비롯됨].
상동 51-52
Wenn das früher abstrakte Denken zunächst nur für das Prinzip als Inhalt sich interessiert, aber im Fortgange der Bildung auf die andere Seite, auf das Benehmen des Erkennens zu achten getrieben ist, so wird auch subjektive Tun als wesentliches Moment der objektiven Wahrheit erfasst, und das Bedürfnis führt sich herbei, dass die Methode mit dem Inhalt, die Form mit dem Prinzip vereint sei. So soll das Prinzip auch Anfang und das, was Prius für das Denken ist, auch das Erste im Gange des Denkens sein.
이전의 추상적 사고가 처음에는 단지 ‘원리’라는 내용에만 관심을 두었다면, 그러나 교양의 발전 속에서 점차 다른 측면, 즉 인식의 행태에 주의를 기울이게 되면서, 주관적인 행위 역시 객관적 진리의 본질적인 계기로 파악되게 된다. 그에 따라 한 가지 필요가 생겨나는데, 그것은 바로 방법이 내용과, 형식이 원리와 통일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원리는 동시에 시작이어야 하고, 사유에게 선행하는 것(Prius)이 또한 사유 진행에서 첫 번째가 되어야 한다[1)고대나 초기 형이상학은 원리(Principium), 즉 "모든 것의 본질"을 찾는 데만 집중. 예: 탈레스의 '물', 아낙시만드로스의 '무한자', 데카르트의 '생각하는 나'. 2) 그러나 이제는 ‘인식 행위’ 자체도 주목해야 함. 시간이 흐르면서 철학은 단순히 '무엇이 진리인가'를 묻는 것을 넘어서, "어떻게 진리에 도달하는가", 즉 우리의 인식 활동도 문제 삼게 됨.
이것은 칸트의 비판철학에서 결정적으로 등장. 3) 형식(Form)과 내용(Inhalt), 방법(Methode)과 원리(Prinzip)의 통일 필요. 철학은 더 이상 내용(진리)만을 추상적으로 다룰 수 없음. 그것을 어떻게 사유할 것인가, 즉 방법과 형식이 내용 자체와 일치해야 함.
→ 이것이 바로 변증법적 사유의 핵심 전제. 4) 원리는 '시작'이 되어야 함. 원리가 단지 내용으로서 있을 뿐 아니라, 사유 과정 전체를 이끌어가는 출발점, 즉 논리 전개의 시작점이어야 함].
상동 52
Es ist nur zu betrachten, wie der logische Anfang erscheint ; die beiden Seiten, nach denen er genommen werden kann, sind schon genannt, entweder als Resultat auf vermittelte, oder als eigentlicher Anfang auf unmittelbare Weise. Die in der Bildung der Zeit so wichtig erscheinende Frage, ob das Wissen der Wahrheit ein unmittelbares, schlechthin anfangendes Wissen, ein Glauben, oder aber ein vermitteltes Wissen sei, ist an diesem Orte nicht zu erörtern. Insofern solche Betrachtung vorläufig angestellt werden kann, ist dies anderwärts(in m. Enzyklop. der philo. Wissensch. 3. Ausg. im Vorbegr. 61ff) geschehen. Hier mag daraus nur dies angeführt werden, dass es nichts gibt, nichts im Himmel oder in der Natur oder im Geiste oder wo es sei, was nicht ebenso die Unmittelbarkeit enthält als die Vermittlung, so dass sich diese Bestimmungen als ungetrennt und untrennbar und jener Gegensatz sich als ein Nichtiges zeigt.
논리적 시작이 어떻게 나타나는지에 대해서만 고찰해야 한다. 그것이 취해질 수 있는 두 측면은 이미 언급되었다. 즉, 그것은 결과로서, 즉 매개된 것으로 여겨지거나, 혹은 진정한 시작으로서, 즉 직접적인 방식으로 여겨질 수 있다. 한편, 지식이 진리를 아는 것이 어떤 직접적인, 무조건적으로 시작하는 지식, 신앙같은 것인지, 아니면 매개된 지식인지를 묻는, 시대적 사유의 형성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는 이 자리에서는 논의되지 않는다[진리를 아는 것이 믿음이냐, 이성적 추론이냐”라는 문제는 현대 인식론에서 핵심 쟁점이나 헤겔은 이 문제를 지금 당장 풀지 않고, 논리학 자체의 진행 속에서 해결할 것을 예고. 즉 논리학은 시작의 조건들을 드러내는 사유의 운동, 시작을 가능하게 하는 사유 구조 자체임]. 이런 종류의 고찰이 잠정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한, 그것은 다른 곳(내 『철학 백과요강』 제3판 서론 61쪽 이하)에서 이루어졌다. 여기서는 그 중 다음의 점만 언급하고자 한다: 하늘에나 자연에나 정신에나 어디에나, 직접성과 매개성을 함께 갖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 두 규정은 분리될 수도 없고, 분리되어서도 안 되며, 이 두 항의 대립 자체는 무(無, Nichtiges)로 드러난다[직접성과 매개성은 서로를 전제로 하며,
서로를 통해서만 존재할 수 있는 변증법적 상보성을 이룸. 예 : 빛은 단순히 ‘있는’ 것이 아님. 빛은 발광체와 수용체, 속도, 파장, 관찰자 위치 등 다양한 요소들이 매개된 구조 속에서 나타나는 것임. 빛은 직접 보이지만, 그것이 직접적인 것만이 아닌 것].
상동
Was aber die wissenschaftliche Erörterung betrifft, so ist es jeder logische Satz, in welchem die Bestimmungen der Unmittelbarkeit und der Vermittlung und also die Erörterung ihres Gegensatzes und ihrer Wahrheit vorkommt. Insofern dieser Gegensatz in Beziehung auf Denken, Wissen, Erkennen die konkretere Gestalt von unmittelbarem oder vermitteltem Wissen erhält, wird die Natur des Erkennens überhaupt sowohl innerhalb der Wissenschaft der Logik betrachtet, als dasselbe in seiner weitern konkreten Form in die Wissenschaft vom Geiste und in die Phänomenologie desselben fällt. Vor der Wissenschaft aber schon über das Erkennen ins reine kommen wollen, heißt verlangen, dass es außerhalb derselben ㅣ erörtert werden sollte ; außerhalb der Wissenschaft lässt sich dies wenigstens nicht auf wissenschaftliche Weise, um die es hier allein zu tun ist, bewerkstelligen.
학문적 논의로 말하자면, 그것은 직접성과 매개의 규정들, 그리고 이 둘의 대립과 진리의 해명이 나타나는 모든 논리적 명제에 해당한다. 이 대립이 사유, 지식, 인식과 관련되어 직접적 혹은 매개된 인식이라는 구체적 형태를 취할 때, 인식의 본성 일반은 논리학 안에서 고찰될 뿐 아니라, 그것의 더 구체적인 형태는 정신의 학 및 정신의 현상학에 속하게 된다[인식의 문제를 철학 밖에서 다루는 것이 아니라, 철학 내부에서, 그것도 체계적 철학의 전개 과정 속에서 해결되어야 함. 인식이 단순히 '직접적인지' 혹은 '매개된 것인지' 하는 문제는 단순한 인식론을 넘어서 존재론적이고 논리적인 문제로 다루어져야 하며, 따라서 이 문제를 먼저 논리학, 그리고 더 구체적으로는 정신철학 및 현상학 안에서 논해야 한다는 것]. 그러나 학문(과학) 이전에 이미 인식에 대해 명확해지고자 한다면, 그것은 인식의 문제를 학문 외부에서 논의하자고 요구하는 것이며, 이 문제는 적어도 학문적인 방식으로는, 즉 여기서 우리가 오직 문제 삼고 있는 방식으로는, 학문 밖에서는 해결될 수 없다[이 문장은 헤겔의 유명한 인식론 비판을 담고 있음. 칸트 이후의 많은 철학자들이 "먼저 인식이 가능한지를 점검하고 나서야 철학을 할 수 있다"고 보았지만 헤겔은 이에 반대. 그는 철학의 출발점에서 인식을 따로 정초하려는 시도 자체가 잘못이라고 하면서 인식은 철학적 체계 속에서 내적으로 전개되며 밝혀져야 하는 대상이지, 철학 바깥에서 전제되거나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 정리하면, 1.직접성과 매개의 대립은 모든 논리적 사유에서 중심적인 문제이며,
이 대립은 특히 인식의 문제, 즉 직접적 인식과 매개된 인식의 문제로 구체화됨 2.인식의 본성은 논리학, 정신철학, 현상학 안에서 다루어져야 함 3.철학(학문) 이전에 인식의 가능성을 명확히 하려는 시도는, 철학 외부에서 철학을 하려는 모순적 요구이며, 이는 철학적으로 불가능].
상동 52-53